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페이스 메이커
▲ 달리기 페이스 메이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레슨 코치가 또 바뀌게 되었다. 골프를 시작하고 겨우 여덟 번 레슨을 받았는데 두 번이나 레슨 코치가 바뀌었다. 첫 번째 코치에게는 네 번의 레슨을 받았다. 두 번째 코치와 네 번의 레슨을 했을 뿐이다. 갑자기 또 코치가 바뀌게 되어 당황스러웠다.

"회원님, 아쉽지만 코치가 바뀌게 되었어요."
"네? 무슨 일이 있으세요?"
"지난번 코치가 그만둔 후 제가 임시로 추가 레슨을 진행했는데 이번에 새로운 코치가 오게 되었어요."
"그렇군요. 그래도 계속 코치님께 레슨을 받으면 안 될까요?"
"제가 원래 오전에 근무를 하기 때문에 회원님과 시간이 맞지 않아서 어렵겠어요."
"아쉽네요. 코치님에게 계속 배우고 싶었는데..."
"앞으로 오시는 새로운 코치님이 잘 지도해 주실 거예요."
"코치님, 그동안 레슨 감사했어요."


수강생은 코치가 바뀌면 새로운 레슨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레슨 코치마다 각자 강조하는 부분과 지도 방법이 달라진다. 수강생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지도 방법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새로운 코치의 지도 방식이 맞지 않으면 이전 코치와 새로운 코치를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코치와 만나면 적응 시간과 신뢰가 쌓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골프 입문자에게는 코치의 자상한 관심과 섬세한 지도가 골프에 적응하고 운동을 지속하는 힘이 된다. 골프를 시작하고 나의 운동 습관을 점검해 보니 레슨을 중심으로 연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꾸준히 연습하지 않고 레슨 전날이나 당일이 되어야 마지못해 연습을 했었다.

평소 골프 연습은 충분히 하지 않고 레슨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또한 코치에게 자세의 어색함을 지적받으면 의욕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줄었다. 레슨을 받으면서도 굳이 골프 레슨이 필요한지 의문이 자꾸 들었다. 그런데 골프 연습을 끝내고 몸풀기로 러닝머신을 달리다가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풍선을 달고 마라톤을 뛰던 사람들 

한참 달리기에 빠져 있을 때 춘천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처음 참가한 42.195Km의 풀코스 완주에 대한 부담감으로 잔뜩 긴장했었다. 한 번도 뛰어 보지 않은 풀코스를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경기 전날 잠을 설치고 도착한 경기장에는 많은 인파가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동호인들이 모여서 몸을 풀고 함께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대회에 참가해서 위축되기도 하고 불안했다. 대회 참가 경험이 많은 누군가 옆에서 격려해 주고 조언도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마라톤 출발선에 선 나는 독특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커다란 풍선을 허리에 묶은 사람들이었다. 풍선을 자세히 보니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네 시간, 네 시간 삼십 분, 다섯 시간 등 다양한 완주 시간이 적혀 있는 풍선이 보였다.

그들은 페이스 메이커로 마라톤 대회의 참가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페이스 메이커와 함께 달리면 원하는 시간대에 완주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페이스 메이커는 자신의 기록을 위해서 달리지 않고 마라톤 참가자와 호흡을 맞춰 함께 뛰면서 완주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페이스 메이커
▲ 달리기 페이스 메이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실제로 마라톤 대회에서 많은 참가자들은 페이스 메이커 주변에 모여 함께 달렸다. 페이스 메이커는 달리면서 지친 참가자들을 격려해 주고 중간에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왔다.

나는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 달리기 답답해서 초반부터 앞질러 나갔다. 하지만 혼자 무리해서 달리다가 결국에는 지쳐서 완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결국 달리기를 멈추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이미 완주한 페이스 메이커가 역주행으로 코스를 달려서 지친 참가자들을 독려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선수분, 괜찮아요? 많이 힘드시죠!"
"네, 이제 지쳐서 더 이상 못 달리겠어요."
"조금만 가면 결승점인데 힘 내시죠!"
"그냥 지금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완주를 못 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돼요. 천천히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니까 다시 시작해 보세요."


나는 페이스 메이커의 격려에 힘을 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결승점에서 만나요. 저는 뒤에 있는 참가자들은 격려하러 갔다 올게요. 꼭! 완주하세요. 응원할게요."

그는 내가 천천히 일어나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뒤쪽으로 달려갔다. 그날 페이스 메이커의 격려 덕분에 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할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중간에 만났던 페이스 메이커를 찾아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결승점에 돌아오지 않고 뒤처진 참가자들을 격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도가 느려 답답하시죠?"

아무리 뛰어난 코치도 선수 대신 경기를 뛸 수 없다. 코치는 선수가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선수의 실력 향상을 위해 훈련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나는 그동안 입문자라는 핑계로 코치에 의존해서 골프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력이 빨리 향상되지 않는 것도 코치 탓이라고 생각했다.

또 잦은 코치 교체로 레슨이 지연되고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만약 코치가 없다면 나는 독학으로 골프는 배워야 했을 것이다. 혼자서 연습하다가 골프 요령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다면 결국 골프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마지막 골프 레슨에서 코치가 말했다.

"회원님, 진도가 느려서 답답하시죠!"
"네, 솔직히 반복되는 자세 연습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요."
"속성으로 진도를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레슨을 받는 많은 수강생들이 기본 자세를 제대로 연습하지 않고 빨리 진도를 나가고 싶어 해요. 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늘지 않으면 충분히 기본 연습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죠. 한 번 잘못된 자세를 나중에 교정하려면 두 배의 시간이 걸려요. 힘드시겠지만 지금 기본 자세를 충분히 연습해야 나중에 실력이 빠르게 늘어요."


두 번째 코치의 마지막 레슨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마음만 앞서는 골프 입문자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레슨 코치는 나의 실력을 고려해서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중년이 된 나는 후배들에 어떤 선배일까 생각했다.

내 갈 길 바쁘다고 후배들을 뒤로하고 혼자 앞서 달려 나가는 선배는 아닌지, 힘들어하고 지친 후배들에게 열정과 노력만을 강요하는 불편한 선배는 아닌지 뒤돌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나도 후배들에게 경쟁자가 아니라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는 든든한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레슨을 마친 코치가 떠나고 혼자 남아서 연습을 했다. 코치가 알려준 골프의 기본 자세를 잊지 않고 몸으로 기억하기 위해 가볍게 골프채를 휘둘렀다.

오늘은 미스샷! 내일은 굿 샷!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 같이 싣습니다.


태그:#골프, #골린이, #운동, #중년, #정무훈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하루를 일상 여행자로 틈틈이 일상 예술가로 살아갑니다.네이버 블로그 '예술가의 편의점' 과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그림작가 정무훈의 감성워크북>이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