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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8경

- 학산귀운(鶴山歸雲) 소안도 진산인 가학산에 봄비 내린 뒤 걸친 구름
- 대동장천(大洞長川) 가학산에서 흐르는 큰 골짜기의 시냇물
- 미포귀범(美浦歸帆) 미라리 포구로 만선의 깃발을 올리며 돌아오는 어선
- 부아망월(負兒望月) 아부산에 떠오르는 보름달
- 전방가림(前坊嘉林) 미라 상록수림의 아름다운 경치
- 용담괴혈(龍潭怪穴) 아부산 절벽의 용이 머물던 굴
- 강빈어화(綱嬪漁火) 조강나루의 챗배(그물로 멸치 잡는 배) 등불
- 오산낙조(烏山落照) 오산의 저녁노을


 
해남 이진과 소안 사이는 잔잔한 바다지만 제주와 소안 사이는 한없이 큰 바다로 평상시에도 파도가 일고 물결이 거칠어 제주를 오가며 바다를 처음 접한 관원들은 공포에 시달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다 이곳에 상륙하면 안심했던 곳, 육지가 가까이 보여 더욱 안정을 취하게 됐다는 소안도. 험난한 물살을 가르며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한결같이 "소안(所安)이다!"라고 외친 것으로 지명 유래가 전한다. 

조선의 문인들은 왜 이곳에 왔을까?

소안도에는 소안 8경이 있다. 8경이 지정된 게 미라 8경과 비자 8경 등 무려 세 곳이나 있으니 소안도는 빼어난 해안 절경을 뛰어넘어 사연 많은 섬이 분명하다. 완도의 섬 곳곳에 8경을 지정한 곳이 많다. 전국적으로 볼 때 섬 지역에서 소안도처럼 세 곳이나 8경을 지정한 일도 드물다. 
 
비자 8경

- 도봉일출(道峰日出) 도봉산에 떠오르는 아침햇살
- 학산만설(鶴山滿雪) 가학산의 설경
- 백양귀포(白洋歸怖) 비동으로 하얗게 달려드는 무서운 파도
- 금성낙조(錦城落照) 금성산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 내동장천(內洞長川) 웃골에서 비자리 동네로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
- 이령목적(梨嶺牧笛) 이목리 배난 골 고개의 목동이 부는 풀피리 소리
- 귀하파성(龜河波聲) 과목 바닷가 해벽에 부딪혀 흩날리는 파도소리
- 미포어화(美浦漁火) 미라리 포구의 멸치잡이 어선의 불빛 



최근 전남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단체에서 완도지역에 대를 이어온 종가를 조사한다며 도움을 청했다. 알아본 결과, 공도 현상으로 섬이 비어서 5대 이상의 종가를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문인들이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되었을까?

고산 윤선도가 제주도로 떠나려다가 풍랑을 만나 도달한  인근 보길도라면 우연일 수 있겠지만 소안도에도 그런 문인이 살았던 것일까? 청산 8경에는 귤은(橘隱) 김류 선생의 활동 흔적이 남아있는데 소안도에는 누가 있었을까?

1866년 청산독진이 설치되자 소안도는 그 관할에 포함되어 제주도 출입 통제소를 겸했고 군마 수송선 출입이 잦았다. 제주 항로의 중간지점의 목장을 갖춘 기착항으로써 지금의 비자리 마을이 소안도의 중심지가 됐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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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 8경

- 금성명월(錦城明月) 금성산에 비치는 밝다 못해 파르르한 달빛
- 내동장천(內洞長川) 웃골에서부터 흘러 비자리 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
- 귀하파성(龜河波聲) 과목 바닷가 해벽에 부딪혀 흩날리는 파도소리
- 이령목적(梨嶺牧笛) 이목리 배난 골 고개의 목동이 부는 풀피리 소리
- 학령귀운(鶴嶺歸雲) 가학산 봉우리에 살포시 휘감아 도는 구름
- 미포어화(美浦漁火) 미라리 포구의 멸치잡이 어선의 불빛
- 은곡창성(隱谷蒼松) 소진, 부상리 깊은 골의 푸르른 소나무 숲
-백포귀범(白浦歸帆) 석양 노을빛을 받으며 돌아오는 맹선리 바다의 돛단배



헌종 무신년 출생 김용화(金容和, 1848~?)가 소안도에 살면서 기록한 소안 8경을 그의 후손 김장복 선생이 김해김씨삼현파가승보(金海金氏三賢派家乘譜, 51쪽) 내용을 채록한 것을 소안면지에 공개했다.

8경은 단순히 자연경관만 보는 게 아니라 반드시 시문이 담겨있다. 이것은 인문학적인 요소가 다분히 들어간 자연을 노래하는 감상법인데, 그것이 바로 예술의 범주에 든다. 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풍경을 노래하는 것이 8경에 포함된 것은 그런 연유이다. 

제주항로가 활발했던 이진나루

소안도는 인근 해남의 이진 나루에서 제주 항로가 활발했다. 제주도 유배길에 오른 추사 김정희도 이곳을 거쳐 제주도로 향했고, 40년 동안 일지암에 기거한 초의선사도 병들어 고통 속에 있는 벗, 추사를 만나러 제주도를 다녀오면서 소안도를 거쳤다. 역사의 한 축을 빛낸 많은 이들이 제주도를 오가며 소안도에 잠시 머물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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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도 일대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부상리에서 뱃길로 미라 8경을 관람하는 것이 소안 8경의 극치이다. "섬은 바다에서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표현처럼 미라 8경의 뱃길 유람은 수면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수석과 웅장한 주상절리대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과 만나는 순간이다.

거기에 더해 특이한 점은 마한의 영역에 속한 소안군도는 소안도 비자마을, 현재 소안면사무소 옆 지금은 폐교가 된 소안고등학교 운동장 동쪽에서 선사시대 유적인 패총과 타날문토기편(打捺文土器片)이 발견되어 역사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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