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 사는 사람들

목공소 가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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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21.12.27 13:56최종 업데이트 21.12.27 14:19

해가 지면 집이 되고, 해가 뜨면 일터가 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7년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36만여 가구를 조사했는데 이 중 18만여 가구는 일터를 거주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주거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일터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오마이뉴스>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 편집자의 말

낡은 목공소 한쪽 컨테이너가 거처…
차량 소음에도 “괜찮다, 괜찮다”

‘○○목공기계’
페인트로 쓴 1970년대식 오래된 공장 간판이 주인 대신 취재진을 맞았다.

공장 안쪽에 기름때가 낀 목공 제작 기계들은 고장난 시계처럼 조용히 멈춰있었다. 한낮이었지만, 작동을 멈춘 기계들의 잿빛 그림자에 가려져 공장은 밤처럼 어두침침했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공장 맞은편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환하게 빛났다.

기계들이 쌓인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형광등이 켜진 조그만 컨테이너 가건물 하나가 보였다. 미닫이로 된 유리문 너머로 얼굴 주름이 깊게 패인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던 그는 취재진을 보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공장 한 켠에 놓인 3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 목공소를 운영하는 이아무개(80)씨가 머무는 거처다.

황학동 목공소 이미지 1

생활 가구들은 간소했다. 사람 1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철제 간이침대, 1970년대 한창 유행했던 사무용 책상, 세월의 흔적으로 빛이 누렇게 바랜 미니 냉장고가 있었다. 책상 위에는 일간신문과 옛날 사진, 커피포트, 필기구 등이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침대 주변 의자에 그와 마주보고 앉으니 벽에 걸린 진회색 정장이 눈에 띄었다.

침대 맞은편에 있는 작은 TV에서는 사극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문을 닫은 채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를 물며 “요즘 하는 드라마인데 재미 있더라”고 말했다. 담배 연기는 순식간에 컨테이너 작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사무용 책상 바로 옆에는 동그란 전기난로 하나가 외롭게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전기난로와 침대에 깔린 전기장판. 올해 겨울을 견디기 위한 난방용품은 이게 전부였다. 침대에 있는 전기장판을 보여주면서 그는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 얼마나 따뜻하다고.”

황학동 목공소 이미지 2

그는 이 컨테이너에 사는 것이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환경은 열악했다. 주거를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이 빠져있었다. 음식을 해먹을 공간과 가재도구들이 없어서 그는 매번 식사를 배달시키거나 주변 식당을 이용한다. 그가 이곳에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먹는 컵라면 정도다.

컨테이너 밖에 있는 야외 화장실에는 작은 세면대가 있지만 목욕이나 샤워를 하긴 어려워 보였다. 정기적으로 목욕탕을 다녔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자주 가지 않는다고 했다. 미닫이식으로 된 문을 통해 윗바람이 들어왔다. 바로 옆 6차선 도로에서 들려오는 차량 소음이 컨테이너 안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씨도 “잘 때는 아예 귀를 틀어막고 자야 한다”며 소음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호소했다. 유리로 된 미닫이문은 외부 침입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인 듯 보였다.

황학동 목공소 이미지 3

그가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건 10여년 전부터였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이곳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해”라고 했다.

컨테이너 생활의 많은 결핍들은 그의 삶의 일부가 된 것일까. 길 건너 아파트처럼 깔끔한 공간도 좋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옛날 사람들은 아파트가 닭장 같아서 안 좋아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80세라는 나이에 비하면 건장한 편으로 보였지만, 심장이 좋지 않아 몇 년 전 인공 심장박동기를 달았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약도 챙겨먹고 있다.

황학동 목공소 이미지 4 황학동 목공소 이미지 5 황학동 목공소 이미지 6 황학동 목공소 이미지 7

그가 운영하는 목공소는 사실상 휴업 상태다. 제작 주문이 들어와야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론 좀처럼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다. 20~30년 전에는 직원 3명을 두고 쉴 새 없이 기계가 돌아갔지만, 요즘은 기계들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 그는 하루 종일 TV와 신문을 보며 하루를 보낸다. 가끔 고향 친구들과 만나서 식사를 하는 정도가 특별한 일정이다.

한 달에 매출이 얼마냐고 묻자 그는 “내일 날씨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식으로 답했다. 변변한 일감이 없다보니 월 240만원에 달하는 공장 임대료도 몇 달째 내지 못하고 있다. 얼마간의 보증금도 모두 월세로 충당하면서,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황학동 목공소 이미지 8

컨테이너 외에는 마음 편히 머물 집이 이씨에게는 없다.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아들집에 들어가 살 생각이다. “괜찮다, 괜찮다”면서도 마른기침을 연신 내뱉는 그는 무던한 표정으로 취재진을 배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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