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5 18:45최종 업데이트 21.12.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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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세계 각국의 불평등은 심화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본 강남구 청담동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21세기는 혼란스럽게 시작되었다. 20세기 후반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운 신자유주의 공세는 전후에 형성된 복지국가와 노사관계 제도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1979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1980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혁명은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1989~1992년 소련과 동유럽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신자유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이념이 되었다.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지구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각국 시장의 개방과 규제 완화를 추구하는 조직이었다. 20세기 후반, 명실공히 자본, 노동,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글로벌 시장이 형성되었다.

낙수효과의 종언

세계가 하나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통합되면서, 신자유주의 이념에 뿌리를 둔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물이 차면 흘러넘치듯이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가 주술처럼 받아들여졌다. 경제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고, 경제성장을 위해서 경쟁과 경쟁력 강화가 유일한 해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 시기 미국에서 불평등이 대공황 수준으로 심화했다. 영국과 미국은 1970년대 말부터 불평등 심화를 보여주었고, 다른 유럽 국가들과 일본에서도 1980년대 중반부터 불평등이 심화하기 시작했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와 그의 연구진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2000년대 미국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 수준에 이를 정도로 상층으로 소득과 부가 집중됐다. 2018년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0% 이상을 점유했고, 하위 50%는 13% 정도를 차지하는 데 불과했다. 미국은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미국 내에 제1세계와 제3세계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 시기 세계 각국에서도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빈곤층이 더 확대되었다. 불평등이 극단적인 수준이었던 남미에서만 약간 약화하였을 뿐, 다른 모든 지역에서 불평등이 심화했다. 세계 경제변화의 심장이 된 동아시아에서도 급속하게 불평등이 심화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소득 양극화와 불안정 노동의 증가로 불평등이 전대미문의 수준에 이르렀다. 

불평등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곤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불평등과 빈곤 두 가지를 결합하여 보면 현존하는 사회체제 유형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아래 도표 참고).
 

불평등과 빈곤율 2가지 지표를 결합하면 사회체제는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빈곤율 : 중위소득 50% 이하의 소득을 얻는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 ⓒ OECD Stat.

 
▲불평등 정도도 매우 낮고(지니계수 0.25 내외) 또한 빈곤율(5~9%)도 매우 낮은 북유럽형,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평등이 대단히 심하고(지니계수 0.4 내외) 빈곤율(18% 이상)도 대단히 높은 아메리카형 ▲불평등 정도가 약간 낮은 정도(지니계수 0.3 내외)이고 빈곤율(10% 내외)도 상대적으로 낮은 유럽 대륙형 ▲불평등이 상당히 심하고(0.35 내외) 빈곤율(16% 내외)도 높은 수준인 동아시아형이 그것이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불평등하다.)

한국은 어디에

네 가지 사회체제 유형은 각기 다른 시장경제와 복지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에스핑-앤더슨(Gøsta Esping-Andersen)은 북유럽형을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아메리카형을 자유주의 복지국가, 유럽 대륙형을 조합주의 복지국가, 동아시아형을 후발 혼합복지국가로 분류한다.
 

ⓒ 신광영

 
이들 사회체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7~2019년 OECD 통계를 기준으로 북유럽형에 속하는 덴마크는 지니계수 0.269, 빈곤율 6.5%로 분배가 가장 양호했다. 아메리카형의 멕시코는 지니계수 0.404, 빈곤율 17.2%로 분배가 열악한 수준이었다. 유럽 대륙형의 독일은 지니계수 0.28, 빈곤율 9.3%로 분배에 있어서 아메리카형보다는 양호했지만 북유럽형보다는 열악한 수준을 보였다. 동아시아아형의 일본은 지니계수 0.339, 빈곤율 15.7%를 보여, 불평등 정도는 아메리카형보다는 낮았지만, 빈곤율은 아메리카형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여기서 아메리카형은 미국, 멕시코와 중남미 아메리카(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니카라구아, 쿠바 등)를 포함한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0.39, 빈곤율은 17.8%로 멕시코와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아메리카형의 미국은 분배와 관련하여 산업화를 먼저 한 나라들 가운데 질이 낮은 시장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사례에 속한다.

미국은 스타트업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혁신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경제성장의 성과는 상층으로 집중되고 절대 다수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소득분배에 있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에 속한다.

한국의 가구소득 지니계수는 2019년 0.345, 빈곤율은 16.7%로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한국과 일본의 빈곤율은 매우 높아 아메리카형에 가깝지만, 불평등 정도는 유럽 대륙형과 아메리카형의 중간 정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형이 아메리카형으로 바뀔 것인지, 유럽대륙형으로 바뀔 것인지, 아니면 북유럽형으로 바뀔 것인지는 향후 한국과 일본에서 어떤 정책이 실시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재분배 효과

부의 분배는 제1차 분배와 제2차 분배로 나눠 볼 수 있다. 제1차 분배는 경제활동을 통해서 얻는 소득(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의 분배를 지칭한다. 즉, 개인이나 기업이 임금이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을 통해서 발생하는 소득의 분배이다. 제1차 분배는 자본시장 구조(독점), 노동시장(분절), 산업분포, 수출의존도, 경기변동 등에 영향을 받는다. 2차 분배는 국가의 조세와 사회정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처분 가능한 소득(공적 이전소득)의 분배를 지칭한다.

북유럽은 1차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국가의 조세와 복지를 통해서 크게 완화시키는 제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반면, 아메리카형은 1차 분배에서 나타나는 높은 불평등이 국가의 정책적 개입을 통해서도 크게 완화되지 않는 특징을 보여준다.
 

1차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2차 분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완화할 수 있다. ⓒ 셔터스톡


조세와 복지정책을 통한 불평등 완화 정도는 조세의 대상, 조세의 누진성 정도, 공적 이전의 크기와 대상 범위 등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달라진다. 북유럽형은 높은 담세율을 기초로 하고,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높은 공적 이전과 높은 공적 복지서비스를 결합하여 1차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크게 완화한다. 반면, 아메리카형은 공적 이전 수준이 낮고, 공적 이전의 누진성도 낮은 것이 특징이다.

유럽대륙형은 연금을 토대로 하는 공적 이전이 대규모로 이루어지지만, 개인 소득에 대한 세금의 누진성이 약한 것이 특징이다. 동아시아는 세금의 누진성이 약하고, 공적 이전도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OECD 국가 평균은 조세와 공적 이전 이후 지니계수는 25% 정도 줄어들고, 빈곤율은 55%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조세효과보다 공적 이전 효과가 더 커서 대체로 1:3의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 조세와 복지정책의 효과로 불평등 정도가 2019년 16.1% 감소했고, 빈곤율은 21.6% 감소했다. 조세와 복지제도가 불평등 약화에 미치는 효과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개입에 의한 불평등과 빈곤 감소율은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섯 가지 대안

불평등 완화와 빈곤 해소는 특정 부처의 과제가 아니다. 국가 전체의 과제라는 점에서 정부 전체의 대응이 요구된다. 가능한 몇 가지 대응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차 분배에서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용을 고려하는 기술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력을 줄이기 위한 기술혁신은 특정 기업의 성장에는 기여할지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양극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기술혁신이 환경과 사회발전을 바탕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공공투자 사업의 경우 '고용과 불평등 영향평가제'를 도입한다. 고용과 불평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형 사업은 평가를 통해서 보류시키거나 수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환경영향 평가제'가 토목사업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하고 예측한 후에 평가하여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제거하거나 낮추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제1차 분배가 이루어지는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은 평균 연령이 채 50세가 되기 전에 주요 일자리에서 떠나고, 평균 63세 정도에 완전한 퇴직에 이른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조기 이탈은 노인 빈곤의 주된 요인이다.

이미 한국의 기대수명은 80.3세로 미국보다 4.4세, 독일보다 3.3세, 스웨덴보다 0.2세 더 길고, 기대수명이 매년 0.47년 정도씩 늘고 있지만, 주요 일자리에서 너무 일찍 떠나고 있다. 생애과정과 노동시장 체제의 불일치가 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이 한국 노인빈곤의 주된 원인이다.
 

한국의 기대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너무 일찍 주요 일자리에서 떠나고 있다. ⓒ 셔터스톡

 
둘째, 장기적으로 제1차 분배에 참여자를 증대시키기 위하여, 자녀의 출산, 보육, 탁아 및 교육으로 인한 부담을 없애는 획기적인 가족복지정책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영유아보육과 초등학교 교육을 연계시키는 '교육-보육 연계 프로그램(educare)'을 도입하고 무상 교육과 보육을 도입하여,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

셋째, 제2차 분배와 관련하여 가족과 개인 단위를 나눠 지원한다. 일단 개인 단위로는 미취업 청년, 실업자와 저임금 노동자에게 고용지원금을 제공한다. 가족 단위로는 일정 수준의 생활 수준을 보장한다. 중위소득 60% 수준을 최저 가구소득으로 보장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넷째, 가입자에 한정되어 혜택이 주어지는 현행 국민연금 대신에 매년 세금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하여 새로운 연금기금을 조성한다. 새 연기금은 국내외에 투자하여 운영하고 기금의 수익이 노령연금의 형태로 전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는 경제성장의 혜택이 특정 집단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고, 낙수효과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책을 위해서 재정 확보를 위한 조세개혁이 요구된다. 현재 한국의 복지지출 비중은 OECD 최하위 수준이며, 남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한국의 복지 수준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OECD 평균 수준에 이르기 위한 로드맵을 정부가 제시할 필요가 있다.

복지확대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세율을 높이고, 개인 소득세와 사회보험의 누진성을 강화한다. 동시에 새로운 경제활동 영역인 인터넷 포털과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과세와 금융자본을 대상으로 한 토빈세를 제도화하여 경제변화에 따른 세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토빈세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 제임스 토빈이 단기적인 투기적 자본의 이동으로 인한 시장 불안정을 막기 위해 1978년 처음 제안한 조세제도이다. 당시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목을 받기 시작해서 이후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최근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토빈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는 데 늘 외국에서 시행중인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한국의 독특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정책적 상상력도 필요하다.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은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생소하고 복합적인 것들이 많다. 현재 많은 외국의 정책들도 이전에는 없었던 정책들을 과감하게 도입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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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는 <소셜 코리아>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학회 회장, 비판사회학회 회장과 한국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시아사회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영역은 사회 불평등과 비교사회체제입니다. 저서로는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노동, 복지와 정치> 등이 있습니다.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 ⓒ (재)공공상생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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