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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24일 오후 2시, 조용하기만 하던 충남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의 한 시골마을에 총성이 울렸다.

4월부터 부여에 고정간첩이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국가안전기획부 등이 행적과 은거지를 추적한 지 6개월여 만에 체포 작전을 벌이다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사찰인 정각사에서 접선이 이뤄진다는 징후를 포착한 안기부와 경찰 등 10여 명은 당일 인근에서 잠복하고 있었다.

몇 시간 후에 정각사에 거동이 수상한 2명이 나타나자, 안기부 요원 1명이 접근해 불심검문을 했다. 곧바로 1차 총격전이 30여 분간 벌어졌고 2명은 태조봉(해발 224m)으로 도주했다. 군·경 통합작전본부가 조직돼 공비토벌에 대비했고 공수특전단 203 특공여단소속 병력 6000여 명이 증파됐다.

통합작전본부는 오후 6시부터 부여와 공주 논산지역에 야간 통행 금지령을 발령하고, 간첩의 식량 약탈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야간 투시장비 등을 탑재한 헬기를 출격시킨다. 안기부는 곧바로 부여 경찰에 협조를 요청했고 부여경찰서의 모든 직원들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총격전이 처음 시작된 부여군 석성면 소재 정각사의 최근 모습
 총격전이 처음 시작된 부여군 석성면 소재 정각사의 최근 모습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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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2명은 김동식과 박광남이었다. 이들은 위조한 주민등록증 4매를 소지하고 지역과 여건에 따라 바꿔 사용하면서, 서울·대구·광주·경기·강원·충남 일원을 활보하며 간첩 활동을 했고 남대문 시장 등지에서 지령 수신용 라디오·의류·시계 등의 공작을 위한 장비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들은 고정간첩 봉화1호를 만나 귀환하라는 지령에 권총을 소지하고 정각사에 온 것이다.

병력은 모두 태조봉을 둘러싸고 2인 1조로 나눠 수색과 잠복을 시작했다. 간첩을 처음 발견한 지 2시간여 후 정각리 소재 4번 국도에서 2명을 발견했다. 간첩들을 찾은 이들은 부여경찰서 소속 나성주‧송균헌 순경이었다. 정각제 연못의 경사진 배수로에서 갑자기 나타난 김동식이 권총을 쏘자 순경들도 총으로 맞섰다. 하지만, 나 순경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송 순경은 어깨를 맞고 쓰러졌다. 나 순경은 2주 후 순직했다.

간첩들은 다시 석성산(해발 180m)으로 도주했다. 이를 발견한 장진희‧황수영 순경이 뒤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총성이 울렸다. 김동식이 쏜 총에 복부를 맞은 장 순경이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동료 경찰들까지 가세해 몸싸움 끝에 김동식을 생포했다.

나머지 도주한 박광남을 찾기 위해 예비군 2만여 명까지 동원됐고, 결국 3일 후인 10월 27일 오전 11시경 부여군 가평마을 인근에서 박광남을 발견하자마자 사격해 검거했다. 박광남은 병원 이송 도중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인 나성주(당시 30세), 장진희 순경(당시 31세)이 사망했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1997년 12월 10일 부여 대간첩작전 전적지 현장에 경찰 충혼탑을 건립했다. 부여군과 부여경찰서, 97연대, 203여단 등은 매년 경찰충혼탑에서 두 경찰을 추모하고 있다.  
 
두 경찰관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부여 대간첩작전 전적지 현장에 1997년 경찰 충혼탑을 건립했다.
 두 경찰관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부여 대간첩작전 전적지 현장에 1997년 경찰 충혼탑을 건립했다.
ⓒ 부여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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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장간첩 사건'은 당시 국내 운동권 세력에 주체사상 등이 만연돼 있다고 믿고, 그들에게 접근해 북한에서 온 공작원이라고 노골적으로 신분을 밝히는 대담하고 과감한 공작전술을 구사한 북한의 거칠 것 없는 대남공작을 입증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부여 대간첩작전으로 전사한 장진희 경사의 유해는 1995년 10월 30일 경찰2묘역 508묘판 787호 묘소에, 나성주 경사의 유해는 1995년 11월 9일 경찰2묘역 508묘판 788호 묘소에 각각 안장됐다.
  
부여 대간첩작전으로 전사한 장진희 경사와 나성주 경사가 경찰2묘역에? 누워있다.
 부여 대간첩작전으로 전사한 장진희 경사와 나성주 경사가 경찰2묘역에? 누워있다.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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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 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국립대전현충원, #나성주, #장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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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간 신문사(언론계)에서 근무했음. 기자-차장-부장-편집부국장을 거쳐 논설위원으로 활동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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