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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빛나는 것과 폭풍우가 불어 닥치는 것은
같은 하늘의 다른 표정에 지나지 않는다.
쓰든 달든 운명을 좋은 양식으로서 소용되게 하자.
- 헤르만 헤세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의 뜻이고

인생에는 행운과 불운이 따른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운이 다르지 않으면 많은 고생을 하게 되는 반면 대충대충 놀면서 적당히 살아도 잘 사는 사람이 있다.
4000년에 달하는 중국의 역사서를 들여다보면 그런 인물들이 무수히 나타난다.
이런 인간들의 흥망사를 들여다보노라면 인간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때가 간혹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의 뜻이고, 일을 성취하는 것은 하늘의 듯이다.' 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이라도 본인이 거기에 합당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나이

사람들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나이로 송나라를 일으킨 조광윤을 꼽는다. 조광윤은 5대 10국이라고 불리는 난세의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시킨 사람이지만, 그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불세출의 영웅이라기보다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는다.

당시 중원지역에서는 후당, 후진, 후한, 후주의 다섯 왕조가 이어지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오, 남당, 전촉, 후촉, 남한, 초, 오월, 민, 남평, 북한의 10국이 할거했다.
조광윤은 별다른 지위도 배경도 없이 후주의 군대에 들어가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의 첫 번째 기회는 후주의 세종의 눈에 들어서 인정을 받음으로서 왔다.
세종은 그 시대의 명군으로서 천하를 평정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한다는 통치 청사진 속에서 천하통일의 꿈을 착착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는 내정에 충실을 기하고, 거란을 공격하여 연운 16주의 일부를 회복하는 등 눈부시게 활약했으나, 재위 6년 만에 39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고 말았다.

만약 그가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조광윤은 세종의 부하 장수로서 일생을 마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늘은 조광윤을 돕고 있었다. 세종이 뿌린 통일의 씨앗을 거두어들인 자는 송태조 조광윤이었다. 세종이 죽고 그의 아들 공제가 7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당시 금군 사령관이었던 조광윤은 근위병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통해서 송 왕조를 개국하과 황제의 자리에 앉는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는 행운이 계속 따랐다.

송나라를 세운 그는 본격적인 천하통일의 사업을 펼쳐나갔는데 대립하던 나라의 군주들은 하나같이 신통치 않아서 자중지란에 빠져 있던 탓에 그는 대업을 완수하는데도 행운을 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운만으로 대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만 보면 그는 운이 좋은 사나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조광윤은 남다른 덕과 넓은 아량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고, 부단한 자기개발의 노력을 기울인 군주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책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손에서 책을 놓는 적이 없었다. 밥을 먹거나 행군을 하거나, 심지어 전투를 벌일 때도 틈만 나면 공부했다. 또 귀한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돈을 아끼지 않고 사서 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대게의 장수들은 전투가 끝나면 금은보화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는 오로지 책을 탐독하고 수집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세종을 따라 회남으로 출정했을 때의 일이다. 조광윤이 크고 작은 상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본 누군가가 세종에게 조광윤이 재물을 약탈했다고 보고 했다. 세종은 곧 사람을 보내 조사하게 했다. 그 결과 보물이라고는 단 한 점도 나오지 않고 책이 쏟아져 나왔다. 세종은 감격하여 조광윤을 불렀다.

"그대는 나의 중요한 장수로서 군사들을 강하게 훈련시키고 영토를 넓혀 공을 쌓아야 하거늘 그렇게 많은 책은 어디다 쓰려느냐."

그러자 조광윤이 대답했다.

"신은 아직까지 뛰어난 지략으로 폐하를 돕지 못하면서도 무거운 임무를 맡아서 늘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식견을 넓혀서 보다 큰 공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 후 황제가 된 후에도 그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자신을 수양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한 번은 술좌석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원래 후주의 신하였던 왕저가 술에 취해 불현듯 옛 주인이 생각났던지 목 놓아 통곡을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다른 신하들은 새파랗게 질려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러나 조광윤은 그를 나무라지 않고 사람을 시켜 그를 데리고 나가 쉬도록 했다. 그런데도 왕저는 나가지 않고 병풍 뒤에 숨어 대성통곡했다.

이때 누군가가 왕저가 여러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은 후주 세종이 그리워 그런 것이니 마땅히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취해서 그러네. 세종 때 나는 그와 같은 후주의 신하였네. 그의 성격은 내가 잘 알지. 그는 선비로서 옛 주인이 생각나 우는 것일 뿐이니,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니 그냥 놔두게."

조광윤은 이처럼 넓은 아량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과를 구분하는 데는 엄정한 군주였다.

조광윤이 '진교의 정변'을 일으켰을 때의 일이다. 진교를 지키고 있던 수문관이 문을 굳게 걸어 잠구고 조광윤의 군대를 들여보내지 않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봉구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봉구의 수문관은 즉시 문을 열어 조광윤의 군대를 통과시켰다. 황제 자리에 오른 뒤 조광윤은 즉시 진교의 수문관을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칭찬하며 승진시켰다. 그러나 봉구의 수문관에 대해서는 위기 때 자신의 직책을 수행하지 않았다며 나무라고는 목을 베었다. 이는 새 왕조를 튼튼히 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기는 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 충성을 격려하는 조치였다.

조광윤은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도 함부로 반대파를 죽이지 않았다. 따라서 북송이 후주를 대체하는 과정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당시 어떤 사람이 조광윤 집안과 원수가 졌던 집안의 명단을 작성해서 모조리 죽일 것을 권했다. 그러나 조광윤은 평상시에 앞으로 나올 천자나 재상을 알기란 불가능하지 않느냐며 숙청하지 않았고, 관용으로 전 왕조의 유능한 신하들을 중용했다.

조광윤은 군신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충직한 자를 표창하고 헐뜯는 말들을 물리쳤다. 충직하고 신의 있는 인물을 알맞은 자리에 기용하고 간신배들을 멀리했다. 이로써 조광윤은 국력을 상승시키고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운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조광윤의 예를 보면 운이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 속에 나타났던 인물들을 살펴보면 대게 세 가지 조건에서 그 사람의 명운이 갈린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능력이다. 여기에는 그 사람의 지력과 용기, 결단력이 포함된다. 개인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이 성공을 할 수 있는 시대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그 사람의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리더로서의 매력이나 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그릇이 크지 않은 사람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다.

셋째는 사람을 다루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출중한 인물이라도 혼자서는 대업을 이룰 수 없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삼박자를 갖춘 사람에게 운이 따르는 법이 아닐까싶다.

유방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서 후세인들을 권토중래의 비감에 젖게 만들었던 항우도 리더십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능력과 덕과 리더십, 그 다음이 운인 것이다.

조광윤이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가 남다른 덕과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면 과연 대업을 이룰 수 있었을까? 

성공의 비결

그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데 노력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조광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어떤 일을 한 가지 성취하는 데는 지속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이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백 번 시도한다. 남이 열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천 번이나 시도한다, 그렇게 하면 어떤 어리석은 자라도 대업을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세상사가 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대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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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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