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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금오도 비렁길
▲ 여수금오도 여수 금오도 비렁길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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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반도 최남단 끝에 꼬리처럼 달려 있는 금오도. 돌산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 정상에서 봤을 때 남쪽으로 점점이 흩어져 있는 30여 개의 섬들이 금오열도이다. 그중 가장 큰 섬이 금오도이다. 명품 트레킹길 '비렁길'을 걷기 위해 연간 30만 명이 금오도를 찾는다. '혈의 누', '김복남 살인사건', '인어공주' 등 제법 알려진 영화들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전남 여수시가 지난달 30일 '2026년 여수 세계섬박람회' 개최 홍보를 위해 선정한 '여수를 대표하는 10대 섬' 가운데 금오도가 여수를 대표하는 섬 1위에 올랐다. 

오랫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섬 

'황금거북(자라)의 섬'인 금오도는 숲이 우거져 검게 보인다해서 '거무섬'이라고도 불렸다. 금오도는 오랫동안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섬이었다. 고려 말 조선 초 왜구의 침입이 잦자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을 실시한 까닭이다. 큰 섬들은 수군진을 설치해 해안 방어를 했지만 금오도처럼 적은 섬들은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키우는 황장봉산으로 지정되면서 출입과 벌채가 금지됐다. 궁궐이나 임금의 관, 판옥선 등을 만들 때 사용되는 소나무를 황장목이라 하는데,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할 때 금오도 황장목을 썼고, 고종은 명성황후의 먼 친척이자 궁내부대신 민병석이 무주 무풍면에 지어 명성황후에게 상납한 명례궁에 하사하기도 했다. 

영조 때 잠시 거주가 허용되어 수 백호가 섬에 들어와 살기도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황장목 보호와 왜구 침입 방지를 위해 다시 공도정책이 실시된 것이다. 공식적으로 금오도에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1884년(고종 21) 공도정책이 해제되면서부터이다.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이라는 뜻이다. 비렁길은 깎아지른 듯한 해안 벼랑을 따라 조성된 길이다.
▲ 금오도 비렁길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이라는 뜻이다. 비렁길은 깎아지른 듯한 해안 벼랑을 따라 조성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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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 신기선착장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20분 만에 금오 여천선착장에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차량을 싣고 섬에 들어온 외지인들이 대부분으로 보였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차량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흩어져 갔다. 

비렁길이 시작되는 함구미 마을 선착장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생소한 섬 풍경이 잔잔한 호수처럼 펼쳐졌다. 고개를 넘으니 비탈길에 노란 유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 있다.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을 뜻한다. 비렁길은 마을 길과 아찔한 해안 벼랑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총 18.5킬로미터의 길이다. 모두 5개 코스로 짜여 있으며 전 구간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미역널방'길로 불리는 제1코스로 ' 함구미–미역널방–송광사 터-신선대– 두포'로 이어진다.
 
비렁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 여수 금오도 비렁길  비렁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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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맞은편 산비탈에 함구미 마을이 보였다. 함구미는 크다는 뜻의 '한'과 포구를 뜻하는 '구미'가 합해진 이름이지만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비렁길로 나 있는 길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정도로 좁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용무를 보기 위해 밟고 지나간 흔적이 길이 된 것이다.

숲길로 접어들자마자 사위는 금세 컴컴해졌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이따금 두툼한 동백 나뭇잎을 뚫고 햇빛이 들어찬 숲속은 그야말로 찬란했다. 고사리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생긴 대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영토싸움을 하다 붙어버린 연리지 나무들, 바람이 부는 대로 속절없이 휜 가지들, 만만한 나무를 골라 휘감고 타고 올라간 덩굴... 육지의 인공조림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의 세계가 펼쳐졌다. 이따금 나뭇잎들 사이로 고등어 등처럼 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금오도 숲속에서는 인간 역시 하나의 개체일 뿐이다. 자만할 이유도 실망할 일도 없다.

인적 없는 컴컴한 숲길이 조금 으스스하게 느껴질 때쯤 반대편 숲에서 홀연히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났다. 반가웠다. 할아버지는 등에 빈 지게를 지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비렁길 바닥에 깔 가마니를  산 위쪽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안 다닌 산이 없어. 그러니까 지금도 이렇게 일을 할 수가 있는 거야. 그냥 용돈벌이 삼아 하는 거야. 제주 올레길보다 금오도 비렁길이 훨씬 낫지."

할아버지는 묻지도 않은 말을 풀어 놓았다. 할아버지를 보니 애초에 어떻게 해서 비렁길이 생겨났는지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멀미가
 
금오도 미역널방은 가장 높은 땅끝이다. 바다 밖에 보이지 않는다.
▲ 비렁길 미역널방 금오도 미역널방은 가장 높은 땅끝이다. 바다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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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헤어져 울창한 숲을 빠져나오니 사방이 탁 트인 '미역널방'이 나왔다. 마을 주민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지게에 지고 올라와 말렸던 바위라고 해서 '미역널방'이라 부른다.

하늘과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미역널방은 신을 모시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접신'장소였을 것이다. 실제로 무당들은 이곳에서 굿을 했다고 한다. 미역널방 아래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망망대해다. 잠시 서 있었을 뿐인데 배 멀미를 하는 듯 어지럽다. 
  
금오도 비렁길 '미역널방'
▲ 여수 금오도 금오도 비렁길 "미역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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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널방에서 송광사 터까지가 비렁길 중에서 가장 아찔한 구간이다. 벼랑의 높이가 표고 90미터라고 하니 어지간한 강심장도 움찔할 높이다. 말 그대로 깎아지른 벼랑 위 샛길을 걷는 구간이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하러 다니고, 미역을 지고 올라왔던 길이다. 

비렁길을 조성한다고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나무난간을 두르고 덱을 설치했다. 비경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무와 땅에 몹쓸 짓을 하는 듯하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먹고살려고 지게에 미역과 나무를 지고 올랐던 길이 이제는 '명품 트레킹 길'이 되었으니 세상일 참으로 기이할 뿐이다.
  
미역널방을 지나면 보조국사 지눌이 지었다는 송광사 터가 나온다.
▲ 금오도 비렁길 송광사터 미역널방을 지나면 보조국사 지눌이 지었다는 송광사 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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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널방을 지나면 거친 질감의 바위가 고스란히 드러난 바위산 아래 보조국사 지눌이 지었다는 '송광사 터'가 나왔다. 지눌은 유자 씨를 물려 새 세 마리를 날려 절터를 정했다고 한다.

첫 번째 씨가 떨어진 곳에 순천 송광사 국사전을, 두 번째 씨가 떨어진 곳에 고흥 금산 송광암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 금오도에 송광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이른바 '삼송광'으로 불린다. 송광사 터를 지나 2킬로미터 정도 더 가면 신선이 놀다 갔다는 신선대가 나오고 직포를 지나 두포에서 1코스가 마무리된다.
  
단풍나무잎과 닮았다해서 단풍나물이라고도 불린다. 뿌리는 한약재로 쓰고 잎은 나물로 먹은다. 향긋하고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방풍막걸리, 방풍묵 등 다양하게 응용된다.
▲ 여수 금오도 방풍나물 단풍나무잎과 닮았다해서 단풍나물이라고도 불린다. 뿌리는 한약재로 쓰고 잎은 나물로 먹은다. 향긋하고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방풍막걸리, 방풍묵 등 다양하게 응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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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함구미마을 돌담. 태풍과 추위 등을 막기 위해 지붕보다 높게 쌓은 금오도 돌담들.
▲ 금오도 함구미마을 돌담 금오도 함구미마을 돌담. 태풍과 추위 등을 막기 위해 지붕보다 높게 쌓은 금오도 돌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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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시간 때문에 1코스 완주를 포기하고 함구미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이번엔 섬마을의 삶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금오도 산비탈 밭에는 방풍나물과 유자나무가 지천이다.

단풍나무 잎처럼 넓어서 단풍나무라고도 불리는 방풍나물은 한약재로도 사용되고 나물로도 먹는다. 풍을 예방하고 남자의 바람기를 잡는 데도 특효라고 한다. 날씨가 따뜻해서 1년 내내 수확이 가능하여 섬사람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최근에 새롭게 출시된 '방풍막걸리' 홍보문구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마을길은 모두 돌담으로 이어져 있다. 돌담이 밭과 밭의 경계를 이루고 집과 집 사이를 구분한다. 지붕보다 높이 쌓은 돌담은 요새가 따로 없을 정도로 견고해 보였다.  거센 태풍에 맞서려면 이 정도는 돼야 했을 것이다. 

겨우 한 사람 정도 빠져나올 만큼의 틈만 두고 모두 돌담으로 에워쌌다. 비탈길에 서니 어떤 집은 앞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돌담은 끊어질 듯하면서 선착장까지 이어졌다. 돌담 사이 주렁주렁 달린 노란색 유자가 육지 촌사람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돌담은 그냥 방치하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쌓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10년? 100년?  그 이상?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는 어려울까. 조지아의 탑형가옥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는가. 여수 추도의 돌담길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불가능한 얘기도 아닐 것 같다. 빈집들이 많아 보였다. 더러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가 하면 돌담 한구석이 무너져 내려앉은 곳도 있다. 보존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선착장에 내려오니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가 갯가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손에 해초가 들려있다.  할머니가 해초를 방파제 양지바른 곳에 가지런히 펴서 널어놓는다. 어장이 빈약하고 양식업이 발달하지 않는 금오도 주민들은 바위나 돌에 붙은 파래, 김, 미역, 가사리 등을 뜯어와 말려 반찬거리를 했다.

이런 바다를 섬사람들은 '갱번'이라 부른다고 한다. 군부, 배말, 해삼, 거북손 같은 해산물을 갱번에서 잡아 올려 어려운 살림살이에 보태기도했다. 이제 갱번도 예전 같지 않다고한다. 사람들이 섬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연간 30만 명이 금오도를 찾는다고 하는데 얼마나 금오도 사람들 살림살이에 도움이 될지. 괜스레 공짜로 남의 집을 구경하고 나온 듯 미안한 마음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매체 'O health'와 다음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여수금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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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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