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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제주살이 21일째, 12월 25일이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흐리다. 집에만 있기가 답답해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하고 가까운 한라수목원으로 산책 삼아 나섰다. 한라수목원은 시내와 연접해 연중 밤늦은 시간까지 무료로 개방하고 있어 시민들의 산책코스이며 휴식처란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제주 자생식물 유전자원의 증식과 보존‧관리 및 전시는 물론 자원화를 위한 연구와 더불어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할 목적으로 1993년 개원했다. 2000년에 환경부 지정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교육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자연생태체험학습관을 개관했다. 조직도를 보니 식물원이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기능을 같이 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람안내도에 따라 잘 정비된 관람로에 오르니 좌측으로는 약‧식용원, 우측으로는 도 외 수종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 위쪽으로 화목원, 교목원이 숲을 이룬다. 수목원은 20㏊ 규모의 부지에 이런 식으로 10개의 주제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목본류는 530종, 초본류는 790여 종에 모두 10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단다.

교목원 입구에 닿으니 어린 고라니 한 마리가 사람들이 떠들며 오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뜯느라 여념이 없다. 교목원에는 제주도 자생종인 구실잣밤나무, 담팔수,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먼나무, 소귀나무 등의 난대수종이 진녹색으로 우거져 있다. 큰오색딱따구리를 비롯해 섬휘파람새, 동박새, 직박구리, 곤줄박이 등 제주도 텃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즐거이 노래한다. 여기가 피안인가. 파라다이스인가.

교목원 위쪽으로 중간지점에 잔디광장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게 가꿔졌으며 그 위로는 수생식물원이다. 수목들은 저마다의 이름표를 하나씩 달고 길잡이를 자처한다.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나무와 풀과 돌과 함께 바람이 이끄는 대로 숲의 기운을 흠뻑 받으며 자연의 숨결을 느끼는 시간이다.

조금 가파른 길을 타고 광이오름 정상(266.8m)에 오르니 산림욕장이다. 아름드리 곰솔이 우거진 정상에서는 제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푸른 바다에서 파도를 밀고 온 바람이 한달음에 숲으로 밀려온다. 숱한 바람에도 의연하게 자신을 지탱하며 서 있는 나무들은 바람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듯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있다.

산림욕장을 올랐던 반대 방향 광이오름 서쪽 남조순오름(296.7m) 방향으로 내려가니 체력단련장이 나온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각종 운동기구를 이용해 몸을 풀고 있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노후를 여유롭게 보내는 그네들의 모습이 부럽다.
 
임엄시험연구실 뒤로 둘러선 애기동백나무 꽃이 활짝피어 방문객을 반긴다.
▲ 애기동백꽃 임엄시험연구실 뒤로 둘러선 애기동백나무 꽃이 활짝피어 방문객을 반긴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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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내려오니 희귀특산수종원, 초본원, 죽림원, 관목원, 만목원 등이 구획되어 가꿔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제주도 고유 수종인 구상나무, 눈향나무, 비자나무 등과 은행나무, 미선나무, 병솔나무 등 제주도에 자생하지 않는 국내외 수종을 전시하고 있다. 죽림원 오솔길을 따라 걷노라니 대나무가 서로 부딪히며 서걱이는 소리가 고향 뒤란의 그것과 같다.

제주 희귀식물 전시실과 난 전시실을 들렀다. 가는쇠고사리, 파초일엽, 발풀고사리, 나도히초미, 창고사리, 더부살이고사리 등 상록성 및 난‧온대성 양치류 100여 종이 돌과 나무에 붙어 그것들과 어울려 자라고 있다. 난 전시실에는 한란, 나도풍란, 죽백란, 새우란, 지네발란 등이 제주의 화산석과 조화롭게 배치되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목원 내에는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동과 임업 시험연구실이 함께 있으며, 환경부 지정 '서식지 외 보전기관'답게 개가시나무, 나도풍란, 만년콩, 삼백초, 순채, 죽백란, 죽절초, 지네발란, 파초일엽, 풍란, 한란, 황근, 탐라란, 석곡, 콩짜개란, 차걸이란, 전주물꼬리풀, 금자란, 한라솜다리, 암매, 제주고사리삼, 대흥란, 솔잎란, 자주땅귀개, 으름난초, 무주나무 등 26종의 보전대상 식물을 지정‧연구하고 있단다.
 
수목원 테마파크, 야시장으로 이어지는 수목원길 담장이 예쁘다.
▲ 수목원길 수목원 테마파크, 야시장으로 이어지는 수목원길 담장이 예쁘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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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연생태체험학습관을 중심으로 주말을 이용하여 제주도의 오름, 습지, 곶자왈, 생태마을 등 여러 지역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희귀식물을 증식하여 한라산국립공원 지역과 희귀식물 자생지 등에 복원하는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미 구상나무, 한라구절초, 삼백초, 황근 등 22종류 5만 5천여 본을 자생지에 복원한 바 있단다. 말 그대로 유전자원 보존의 산실이다.

임업 시험연구실을 빙 둘러 양지바른 곳에 애기동백이 무수히 피었다가 지고 있다. 그 밑에 풍경에 스며 한참을 앉아 있는데 새들이 날아와 친구가 되어 준다. 수목원 매표소 아래쪽 수목원 테마파크에는 다양한 체험‧놀이시설이 있으며, 수목원길 야시장은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날씨와 코로나라는 악재가 겹쳐 크리스마스인데도 거리는 한산하고 상가는 텅 볐다. 거친 바람이 황량한 골목을 쓸고 지나간다.

태그:#한라수목원, #수목원길 야시장, #수목원 테마파크, #제주도 한달살기, #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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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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