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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인의 새해 소망'입니다. [편집자말]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동네의 익숙하지 않은 길로 산책을 나섰다. 늘 가던 길이 아니라서 주변 풍경도 새롭게 보인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 말고, 공원 비슷한 공간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남편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여름이 놀이터 하면 참 좋겠다."

여름이와 살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 부부에게 생긴 새로운 습관이 하나 있다. 쓰이지 않고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면 '여기 놀이터로 쓰면 좋을 텐데' 하고 머릿속으로 펜스를 둘러보는 것이다.

특히 서울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도, 잡초만 울창하게 자란 채 버려진 공간처럼 보이는 곳들이 꽤 자주 눈에 띈다. 물론 누군가의 땅이거나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보류된 공간일 테지만, 울타리 하나만 둘러주면 강아지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을 텐데,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게 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공간의 확장 

얼마 전 '반려인의 세계'라는 그룹에서 함께 글을 쓰고 있는 송주연 기자님이 캐나다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캐나다에서는 학교 운동장을 방과 후에 반려동물에게 개방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학생들이 이용하지 않는 늦은 시간에 운동장을 반려동물이 사용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주거지 가까운 곳에서 강아지가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거잖아!

충격도 잠시.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에 반려동물이 털을 날리고 볼일을 보는 것부터, 주변에 소음으로 인한 민원도 들어올 테고, 또 관리자가 없으니 자칫 강아지끼리 싸움이 나거나 보호자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닐 듯하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교육과 합의가 잘 이루어져 있다는 것일 테다.

저녁 무렵이 되면 우리 집 가까운 공원에 정말 많은 반려견들이 산책을 나온다. 잠깐이라도 목줄을 풀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텐데, 가까이에는 그런 곳이 없다고 아쉬워 하는 보호자들도 많다. 나 역시 매주 주말마다 차를 타고 반려견 놀이터를 찾아가다 보니, 평일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반려동물 놀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늘 있다.

서울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반려견 놀이터가 세 군데(보라매공원, 어린이대공원, 월드컵공원) 있지만, 사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상적인 루틴으로 방문하기는 어렵다. 일부러 한 번씩 시간을 내어 찾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놀이공원에 가듯이 가끔 한 번씩 이용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놀이터에서 신나게 달려 공을 물어오는 개들을 보면 이들의 삶에 산책뿐 아니라 '놀이' 역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일지 생각하게 된다.
 
반려견 놀이터에서 공을 기다리는 개들
 반려견 놀이터에서 공을 기다리는 개들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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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반려인과의 공존을 위해서

나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집순이 성향에 가깝다. 그래도 반려견 여름이의 산책을 위해 귀찮지만 몸을 일으켜서 목줄을 집어들면, 여름이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서 잽싸게 목줄에 얼굴을 밀어넣는다.

집순이, 집돌이라고 할 수 있는 개들이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개들 중에는 없는 것 같다. 개는 집에만 있을 수 없는 동물이다. 바깥에 나가서 바람과 잔디 냄새를 맡고, 또 다른 개들이 남긴 흔적을 더듬으면서 나름대로의 사회생활을 해야 행복을 느끼는 생명체다. 오래전부터 인류가 개를 우리의 삶에 편입시킨 이상, 인간이 만든 도시에도 개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면 좋겠다.

강아지의 목줄을 풀고 뛰어놀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아쉬워하는 이유는, 평소에는 당연히 목줄을 채우고 사람의 속도에 맞춰 산책한다는 규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비반려인이 동물을 위한 공간을 배려해주듯 반려인도 피해를 주지 않도록 의무를 다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많은 반려동물의 삶도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 바라게 된다. 개개인의 양심과 눈치와 양보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교육과 변화가 이루어지며 반려견이 자연스러운 사회의 일부로 스며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반려견을 위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면 흔히 듣는 얘기가 '그럴 거면 너희 집 마당에서 키우거나, 마당이 없으면 개 키우지 마라'는 것이다. 물론 반려인들이 개별적으로 모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산다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집값과 현실을 고려할 때 그런 특정한 조건을 갖춰야 동물을 키울 수 있다는 건 어려운 이야기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존을 위해 깊이 고민하기보다 보기 싫은 것을 보이지 않는 자리로 치우는 방향으로 간단히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다수의 권력에 기반한 배제와 격리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을 향할 수 있다.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책하는 여름이
 산책하는 여름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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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

얼마 전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 창설 이래로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이 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란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 있었으나, 선진국의 기준은 교육수준, 문화수준, 평균수명 등 삶의 질에 해당되는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동물 등의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부분에서도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는지 생각해보면 아직 의문이 든다. 물론 함께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반려동물을 위해 금지된 무엇을 허락해 달라거나, 없는 무엇을 만들어 달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무작정 미뤄두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좀 더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임 있는 입양 문제부터 일부러 하는 동물 학대와 모르고 하는 동물 학대, 공간을 나눠 쓰는 문제까지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에 이르는 계단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캠핑장에서 40대 이상 커플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중년존'이 등장해 논란이 됐다. 왜 '노키즈존'은 당연하고 때론 합리적이기까지 한 운영 지침처럼 받아들이면서 '노중년존'은 '차별'이라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걸까. 이 문제가 논란이라도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룹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나 동물은 커다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러나 엄연히 우리 사회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당장 MBTI가 다른 친구와 룸메이트로 지내는 것도 어려울 판에, 가지각색의 사람과 생명들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것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은 이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들에게도 귀를 기울이면서 말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태그:#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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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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