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 김다운씨
 고 김다운씨
ⓒ MBC

관련사진보기


지난 3일, 2개월 넘게 알려지지 않았던 한 노동자의 죽음이 MBC뉴스데스크를 통해 보도됐다.

지난해 11월 5일, 2만 2천볼트 특고압 전류에 감전되어 투병하다 19일만에 사망한 고 김다운(38)씨의 소식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한국전력공사(한전) 하청업체 소속으로 입사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어떤 안전수칙도 지켜지지 않은 현장에서 홀로 전봇대를 오르다 사고를 당했다.

<오마이뉴스>와 노동건강연대가 산재사망노동자들의 언론보도 및 소식을 모아 매달 초 발행하는 연재 '이달의 기업살인'에 집계된 2021년 한전 관련 산재사고 사망 노동자는 총 3명으로 늘어났다. (☞ 이달의 기업살인 연재 바로 가기

지난 2월 24일 충남 천안시에서 이동식 크레인 구조물에서 추락한 물체에 맞아 60대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내용과 7월 28일에는 곡성에서 20대 하청노동자가 김씨와 유사한 감전사고로 사망한 게 그것이다.

황운하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총 3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공기업 중 가장 많은 노동자가 사망했다.

특히 사망한 노동자 32명 중 김씨와 같은 하청노동자가 31명이었다. 한전에 유독 '위험'이 하청노동자에게 몰려 있는 셈이다. 한전이 공기업 산재사망 1위의 불명예를 안은 이유는 하청노동자의 산재를 책임 있게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해 하청노동자가 죽었지만, 한전은 '무재해 현황판'을 각 지사마다 설치하고 산업재해가 없는 무재해 날짜를 게시해 놓고 있다. 

고 김다운씨가 19일간 고통 속에 투병하고, 그의 죽음이 두 달 넘게 알려지지 않는 시간에도 하청업체에게 외주를 맡기고 관리감독해야 할 한전 여주지사의 무재해 현황판에 어떤 기록이 남겨져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한 공사? ... 안전 규정 안 지켜

보도에 따르면 고 김다운씨의 죽음 이후 김씨가 속한 하청업체는 사고에 대해 그의 책임을 거론하며 "별로 남는 게 없는 13만 5천 원짜리 단순 공사였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하청업체가 책임을 미룬 변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물어야 할 일은 고작 '13만 5천 원짜리 단순한 작업이 왜 노동자가 일순간에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이 되었을까'이다. 단순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가 '위험한 업무'가 되는 변화의 핵심은 '외주화'다.

한전이 만든 안전규정에 따라 활선차에 올라 작업했다면, 일반 면장갑이 아닌 고무 절연장갑을 사용했다면, 만약 2인 1조로 일했다면 출근한 지 열 달밖에 되지 않은 김씨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사고는 대단히 복잡한 법·제도 개선안이 필요한 것도, 대단한 예방책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전이 준비한 규정을 지킬 수 있는 기업을 하청업체로 선정하고, 하청업체가 규정을 지킬 수 있도록 한전이 관리감독을 했다면, 더 나아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업무를 외주화 하지 않았다면 김씨에게 불행이 닥치지 않을 수 있었다.

공기업이 외주화를 선택하는 이유

산재사망에 있어 기업과 기업의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고자 시민들이 함께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업들은 시행을 앞두고 법 조항이 모호하고, 기업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산재사고는 복잡한 해결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김다운씨의 사고처럼 기업들이 이미 준비한 규정을 제대로 지킨다면 사고는 줄어들 수 있다.

오히려 모호한 것은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이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지만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외주화를 준 한전은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 유족이 김씨가 사망한 지 두 달이나 지난 지금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면서까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죽음의 책임을 김씨에게 물을 수 없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유족이 나서지 않는 한 죽음이 알려지지도,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공기업이 외주화를 간편하게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대통령 후보는 노동자의 계속되는 죽음에도 기업의 경영위축을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이야기하고, 노동자가 사망한 현장을 찾아 노동자의 과실을 지적하는 사회 속에서, 공기업 한전의 무재해 현황판은 오늘도 날짜를 늘려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태그:#기업살인, #산재사망, #중대재해법, #한국전력
댓글2

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여성, 청소년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을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