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평택=연합뉴스) 최종호 강영훈 기자 = 큰불이 나 소방관 3명이 진화작업 도중 순직한 경기도 평택의 물류창고 건물은 대규모 건물의 경우 소방시설 강화를 의무로 규정한 관련법의 적용 기준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기준에 포함돼 소방시설이 강화된 설계로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면 이번 화재의 규모가 이처럼 크지 않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8일 소방당국과 평택시 등에 따르면 이번 화재가 발생한 곳은 평택시 청북읍 고렴리 1137 일원으로 2개 필지에 지하 1층∼지상 7층, 건축 총면적 19만9천792㎡ 규모의 물류창고를 짓는 신축 공사 현장이다.

불이 시작한 곳으로 파악된 1층과 2·4층에는 냉동창고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축구장(7천140㎡) 27개를 합한 것과 비슷한 규모의 대규모 건물이지만,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상 '성능위주설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성능위주설계 대상은 대형화재 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건물의 특성과 현장 여건을 고려해 설계 단계부터 의무적으로 소방시설이 효과적인 성능을 발휘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대상 기준은 연면적 20만㎡ 이상이다.

이번에 불이 난 신축 건물은 이 기준에서 불과 208㎡(0.001%) 부족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소방관 1명이 순직한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이 기준을 10만㎡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아직 시행 전이어서 역시 이 건물은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해당 건물은 현재 공정률이 80%를 넘어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성능위주설계 적용 대상 건물의 경우 건축주는 설계 단계부터 대피로, 스프링클러 설치 개수와 장소 등 소방시설 성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소방당국 주도로 평가심의위원회가 꾸려져 성능위주설계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한다.

이러한 성능위주설계는 건물이 완공된 뒤 화재 등이 발생했을 경우를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지만, 이번 화재처럼 공사 중인 건축물도 성능위주설계 대상에 포함됐다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의 한 관계자는 "성능위주설계 평가심의위원회는 이러한 대형 공사장의 경우 공사 중에 화재 위험 우려가 있으니 화재감시자를 배치하거나 추가 배치하라는 등의 의견을 낼 수 있다"며 "이런 의견이 받아들여져 실제로 화재감시자가 적절히 배치된다면 화재 발생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성능위주설계는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 예를 들어 열방출율 등이 고려된 설계로 화재 및 피난 상황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건물 내 가연성 소재의 양이 많다면 이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능위주설계를 받게 되면 평가심의위원회의 평가, 점검을 받아야 하고 소방시설 강화와 관련한 비용도 늘어날 수 있어 건축주는 이 기준에서 교묘히 빠지려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 교수는 "고층아파트를 지을 때 50층이 넘으면 초고층으로 분류돼 소방시설 등 각종 규제가 있다 보니 49층까지만 짓는 경우가 많은데, 성능위주설계도 대상이 되면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해 스프링클러나 소화전 등 여러 소방시설을 추가하거나 원활한 대피를 위해 복도 폭을 넓혀야 하는 등 굉장히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연면적을 20만㎡ 이하로 하는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엄격한 소방시설 설치 기준을 피하려는 것은 성능위주설계 대상이 될 수 있는 건물뿐만 아니라 소규모 주택 건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경향"이라며 "법은 최소한의 안전설비 기준을 제시할 뿐인데 현장에서는 그조차 과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능위주설계 대상이 되면 상당한 비용이 추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더 큰 피해가 나는 만큼, 예방 비용에 더욱 과감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zorb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연합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언론 빠른 뉴스' 국내외 취재망을 통해 신속 정확한 기사를 제공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입니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