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1 06:08최종 업데이트 22.01.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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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 <비곗덩어리>는 인간의 위선을 까발린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주인공은 '불 드 시프(비곗덩어리)'라는 별명을 가진 창녀 엘리자베트 루세. 나는 그녀를 통해 우리 안의 이중성과 마녀사냥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려 한다. 신정아, 정경심, 김건희씨 사례가 분석 대상이다.

보불전쟁 중 프러시아군이 프랑스 루앙을 점령한다. 엘리자베트는 백작 부부, 자본가 부부, 수녀 2명, 민주주의 혁명가 등 루앙을 탈출하는 유력인사 일행의 마차에 동승한다. 도중에 프러시아군 장교가 마차를 가로막고 엘리자베트의 몸을 요구한다. 그녀의 완강한 거부 탓에 3일간 마차가 출발하지 못하자 일행은 그녀에게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강요해 마침내 뜻을 이룬다. 다음날 다시 출발한 마차 안에서 일행은 그녀를 노골적으로 멸시하면서 먹을 것도 나눠주지 않는다. 

위선

위선은 질투와 더불어 인간의 못난 본성 중 으뜸이다. 사전적인 뜻은 '겉으로만 착한 체함'인데, 조금 넓게 해석하면 '겉과 속이 다른 언행', 곧 이중성이라 하겠다. 이중성은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만이다.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한 모순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사적인 영역에서 반칙과 부도덕을 일삼는 표리부동이다.

<비곗덩어리>에서 엘리자베트에게 '이타심'을 종용하는 상류층 부인들과 수녀들보다 더 가증스러운 사람은 바로 민주주의 혁명가 코르뉘데다. 코르뉘데는 그 와중에 일행 눈을 피해 그녀에게 육체관계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러면서도 '희생'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한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휘파람으로 불며 일행의 위선을 비웃는 듯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영화 비곗덩어리(boule de suif, 1934) ⓒ Russian Movie Online

 
코르뉘데의 이중성은 우리 사회 저명인사들에게서도 쉽게 발견된다. 성범죄나 성적 일탈로 물의를 빚은 진보 명망가들이 대표적 사례다.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낙마한 진보적 정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진보 인사들의 비리가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은 그들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지는 도덕성과 비판정신 때문이다. 기울어진 언론지형이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이중성의 밑바닥에는 합리화가 있다. 자신은 공적으로 옳거나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 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 사적인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부도덕이나 사익 추구가 용인된다고 여긴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연애고, 남이 하면 불륜이고 간음이다. 같은 수사라도 우리 편이 당하면 억울하고, 저쪽 편이 당하면 당연하다. 이른바 '내로남불'이다.


공직자의 뇌물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가 고급 술집에서 수사 대상인 기업인에게 접대 받는 것을 대수롭잖게 여긴다. 검찰 권력을 비판하는 국회의원이 사적인 이해관계로 검찰 수사나 인사에 개입한다. 사회 병리 현상을 날카롭게 진단하는 교수가 자격 미달자의 엉터리 논문을 통과시키고, 재벌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는 연구결과를 내놓는다. 권력 비판자임을 자부하는 언론사 간부가 자신의 문제는 물론 가까운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려 권력기관의 유력 인사들에게 청탁하는 걸 예사로 여긴다.

오랫동안 기자로 밥벌이한 나도 마찬가지였다. 공정보도를 위해 사내 권력과 위계질서에 맞서 싸우면서도 간부가 돼서는 매출을 위해 더러 언론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 사적 관계에 따른 지면 사유화로 볼 만한 행태도 있었다. 언론의 자본권력 예속을 비판하면서도 재벌권력과 언론권력의 결탁이 빚어낸 접대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올곧은 기자정신을 강조하면서도 기자에게 제공되는 특권과 특혜를 거부하지 않았다. 사적 공간에서의 일탈은 사생활이라고 합리화했다.

마녀사냥

인간의 이중성이 가장 뻔뻔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은 죄가 아닌, 사람을 겨냥할 때 기승을 부린다. 2000년 전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두고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했지만, 마녀사냥에 동참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돌을 던진다. 잘못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를 미워하고 삶 전체를 부정하려 든다.

그렇게 누군가를 악마로 만들면서 자신의 죄의식을 덜어낸다. 저 파렴치한 죄인에 비하면 나의 허물은 별것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이중성의 악취가 진동하는데, 불행히도 본인은 그 냄새를 맡지 못한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은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만이다. ⓒ pixabay

 
예컨대 뒷돈 받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이, 불법과 편법으로 부동산 재산을 늘려온 사람이, 자식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빽'을 동원한 사람이, 안전판을 만들려고 권력자에게 줄을 대는 사업가가, '고발 사주'를 하고도 오리발 내미는 공직자가 "나는 그래도 허위문서는 만들지 않았어"라고 점잖게 말한다면 우습지 않나?

물론 예수의 곤혹스러운 가르침을 비틀어 개별 범죄의 공적 의미를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약화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안의 이중성을 성찰하지 않으면 아무리 문명과 민주주의가 발전해도 마녀사냥이라는 미개한 풍습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신정아, 정경심씨에 대한 마녀사냥을 비판한다면, 형평성을 생각해서라도 김건희씨에 대한 비난 공세에도 비슷한 문제가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의 비리는 모두 허위문서와 관련돼 있다. 물론 범죄 동기가 저마다 다르고 양과 질도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브로커에게 속았든(신정아), 관행적 입시 스펙 관리든(정경심), 잘 보이려 부풀렸든(김건희) 가짜 증명서를 제출했다면 법적 단죄를 피할 도리가 없다. 특히 김건희씨의 경우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 상습적으로 허위 증명서를 만들어 취업에 활용한 사실이 인정되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

마녀사냥은 대체로 도덕적 단죄가 법적 단죄에 앞설 때 발생한다. 사냥터 곳곳에서 침소봉대(針小棒大)와 견문발검(見蚊拔劍), 견강부회(牽强附會)의 폭발물이 연쇄적으로 터진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다. 합리와 이성은 밀려나고, 증오와 단죄의 광기가 휘몰아친다.

신정아씨는 유부남 권력자를 애인으로 둔 탓에 과도한 공격을 받았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본질(허위 학력)보다 곁가지(불륜 또는 금지된 사랑)가 부각됐다. 검찰은 신씨를 중범죄자 취급하며 정권 말기 권력형 비리를 캐내려 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문서 위조(허위 학력)와 그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는 인정했지만, 애인인 청와대 정책실장과 관련된 권력형 비리 혐의는 대부분 무죄로 판단했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020년 12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자녀 입시비리 혐의를 모두 유죄받아 징역 4년, 벌금 5억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사모펀드 혐의는 대부분 무죄를 받았다. 사진은 법정으로 향하는 정경심 교수. ⓒ 권우성

 
정경심씨 비리도 남편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직후라 더 두드러진 면이 있다. 조국 후보자를 겨냥한 언론의 전방위 공세 속에 부인 비리는 곧 남편 비리로 인식됐다. 장관 낙마를 겨냥한 검찰은 끝없이 비리 가짓수를 늘렸다. 그중에서도 아들의 외국대학 간이시험에 도움 준 것까지 업무방해죄로 엮은 건 심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전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고, 청문회 당일 공소시효 만료를 내세워 정씨를 조사 한번 없이 기소한 것은 정치적 표적수사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공소시효 논리도 엉터리였다. 범행(위조) 방법과 시점 변경으로 시효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중기소는 부실수사 논란을 자초했다. 수사 착수 명분인 사모펀드 비리는 허상에 가까웠다. 검찰은 '물고기 두 마리'와 '강남 건물주'라는 정씨의 내적 욕망마저 유죄증거로 삼았으나 법정에서 사실상 완패했다.

그리고 김건희

과거형인 두 사람에 비해 김건희씨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김씨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분출되는 가운데 마녀사냥을 경계하자는 주장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국 사태 당시 언론의 일방적 보도와 검찰권 남용을 비판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비록 김씨가 죄의식이 별로 없어 보이고 대국민 사과도 엉터리였지만,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걸 비난하면서 악마화하는 건 옳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2021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마녀사냥을 피하려면 무엇보다도 사생활과 범죄를 구별해야 한다. 과도하게 성형을 했든, 결혼 전 유부남 검사와 어떤 관계가 있었든, '줄리'를 했든 안 했든, 그건 도덕의 영역이다. 법적 단죄의 영역이 아니다. 사생활 비판은 그것이 공적 비리와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어떤 검사나 기업인과의 특별한 친분이 모녀의 비리 의혹 수사에 영향을 끼쳤다면 공론장에서 다뤄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뿐더러 마땅하기까지 하다.

무분별한 증오나 복수심에서 비롯된 비난도 금물이다. 똑같이 당해보라는 식의 감정적 공격은 보편적 호응을 얻기 어렵고 자칫 역풍을 부를 수 있다. 추측과 사실을 뒤섞는 것도 곤란하다.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비리가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부풀린 것과 허위 또는 위조는 구별해야 한다.

조국 사태의 교훈에 비춰 김씨 비리를 남편인 윤 후보 비리와 동일시하는 태도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결혼 전 비리와 결혼 후 비리를 구분하면서 윤 후보와의 관련성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의혹은 제기하되 일방적인 매도는 삼가야 한다.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21세기 대명천지에 마녀사냥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우리 안의 이중성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 약점을 가진 우리가 여론재판으로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그가 공인이기 때문이지 악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비례와 균형을 잃은 여론재판은 위험하다.

물론 검찰의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은 별개다. 과거 검찰은 지나치게 적극적이었고, 현 검찰은 눈에 띄게 소극적이니까. 짐작은 했지만, 첫 검찰총장 출신 대선후보가 말끝마다 내세운 법치와 공정은 모래성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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