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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을 현행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낮추는 내용의 정당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을 현행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낮추는 내용의 정당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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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녹색당은 당원 가입에 연령 제한을 두지 않는다. 청소년 당원은 비청소년 당원과 마찬가지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 당내에서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2월 즈음이 되면, 청소년 당원의 탈당서가 심심치 않게 접수된다. 왜 청소년 당원들에게 2월은 '이별의 달'이 될까?

청소년 당원의 탈당은 연말정산과 세액공제 기간과 겹쳐 일어난다. 상황은 이러하다. 친권자는 연말정산과 세액공제를 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떼어 온다. 그 과정에서 친권자는 가족구성원 중 청소년이 있는 경우, 청소년의 카드사용 내역과 정치기부금, 시민단체 후원금까지 확인할 수 있다.

'0'이 찍혀있어야 할 자녀의 정치기부금 총액 자리에 숫자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월 말일마다 조금씩 당비를 낸 것 같다. 삼촌이 용돈을 준 날과 내역에 적혀 있는 몇만 원 특당비를 넣은 날이 같기도 하다. 친권자는 이를 추궁한다. 결국 청소년은 자신이 당원가입을 했음을 실토한다. 청소년이 가정에 속해 있다면 친권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통 이러한 추궁은 탈당과 함께 외출금지와 같은 여러 '징계'로 이어진다. 진보정당에서조차 청소년이 '예비당원' 형식으로 정치참여를 제한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청소년 당원의 참정권 박탈은 단순히 청소년이 가입 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정치 활동을 온전히 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지난 11일, 정당가입연령을 만 16세로 낮추면서 법적 미성년자가 정당에 가입할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서를 받아오도록 한 정당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친권자의 '허락 여부'가 청소년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주거, 금융, 학교 등 다방면에서 청소년은 "부모님이랑 같이 와야 해요"라는 말을 듣는다. 정치도 다를 것 없다. 앞선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당비를 내며 친권자의 연말정산을 거쳐온 청소년당원은 친권자의 '심사'를 통과한, 그야말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청소년 당원은 이 과정에서 설령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친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정치활동이 친권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 정당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 동료에게 책임을 지는 것, 당내 이해관계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조율하는 것과는 다르다. 청소년 당원은 자신의 의사에 따른 정치활동을 하기 이전에 정치적 발언대에 서게 해준 '동의서'를 상기할 수밖에 없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은 투표는 물론 외출이나 운전 등을 할 수 없던 국가가 수두룩했다. 여성은 '미성숙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남편이 동행할 때는 외출 등이 가능했다. 남편의 '허락'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이제는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허락은 성숙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정한 이유 또는 형질로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참여해야 할 정치적 공론장에 청소년은 그 '모든 사람'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 정당법 개정안 역시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기는커녕, 청소년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친권자의 개입 여지를 열어둔 개악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존재로 바라보고, 친권자의 '허락'과 '동행' 없이는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청년정치라는 말로 청년 '이미지 정치'만 해온 현재의 한국정치에서, '청소년의 정치참여'라는 표심을 얻기 위한 가짜정치행위를 더이상 보고싶지 않다. 청소년을 누구에게도 종속된 존재가 아닌 그 주체성이 인정될 수 있을 때, 진정 청소년 정치인의 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태그:#정당가입연령, #청소년, #녹색당, #청소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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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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