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 어느덧 인간의 생활 공간 곳곳으로 침투해 들어온 로봇.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물인간이 되어 호흡기에 의지해온 어머니의 간병은 전적으로 딸 정인(이유정)의 몫이었으나 최근에는 그녀를 똑 닮은 간병로봇 '간호중'이 그 역할을 대신해 오고 있다. 독일 기술의 총아라 불릴 만큼 간호중은 매우 정교하게 제작됐다. 여기에 확장된 언어 기능을 탑재시키고, 좀 더 고급 기능으로 업그레이드한 덕분에 간병은 물론 웬만한 일들까지 알아서 척척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정인의 어머니 병실 옆에는 중년의 중증 치매 환자(윤경호)가 입원해 있었다. 그의 간병은 아내(염혜란)와 간병로봇이 나누어 맡았는데, 이 로봇은 정인의 그것과 달리 보급형이라 기능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간병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처리하기보다는 단순한 보조 역할만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날, 치매 환자를 돌보던 그의 아내가 돌연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 <간호중>

영화 <간호중> ⓒ 찬란

 
영화 <간호중>은 디지털로 대변되는 시대에 새롭게 부각되는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다. 두 간병인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현실과 그에 따른 고민을 들여다보게 한다.
 
툭하면 어린 아이처럼 생떼를 부리는 등 수시로 돌출 행위를 일삼아온 중증 치매에 걸린 중년 남성의 간병을 여성 혼자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버거운 일이다. 간병 행위에 특화된 로봇은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거나 영양을 체크하는 등 오로지 사전에 프로그램화된 단순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아내는 점점 지쳐 갔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남편 없는 세상이 낫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그를 살해할까? 하지만 결국 남편이 아닌 스스로가 극단 선택을 하고 마는 아내다. 그 순간에도 로봇은 그저 환자의 안위만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중이었다. 
  
 영화 <간호중>

영화 <간호중> ⓒ 찬란

 
지금은 비록 간병로봇이 주로 어머니를 돌보는 까닭에 형편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10년 간의 긴 병구완으로 인해 정인의 몸과 마음은 몹시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괴롭혀온 건, 어머니는 그나마 그녀가 돌보는 입장이지만 홀몸인 자신이 늙었을 땐 과연 누가 돌봐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게다가 지난한 병구완으로 인해 또래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이를 만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암울한 미래가 자꾸만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죽고 싶다."
 
언젠가부터 정인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말이다. 좀 더 고급 기능이 탑재된 인공지능 로봇 간호중은 단순한 기능의 보급형 로봇과 달리 스스로의 학습을 통해 진화를 거듭, 인간처럼 인지하고 생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간호중은 정인이 최근 자주 입 밖으로 꺼내드는 문장, 즉 '죽고 싶다'를 인지한 뒤부터 큰 딜레마에 빠져든다.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의 지속적인 생명 연장은 공교롭게도 그녀를 돌봐온 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어머니를 살리자니 딸이 죽게 되고, 딸을 살리자니 어머니가 죽게 되는 혹독한 딜레마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간호중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치매 환자를 간병하던 아내나 식물인간 어머니를 수발하던 딸 모두 오랜 병구완으로 인해 심신이 지치고 피폐해진 상태. 기나긴 병 수발은 종종 환자를 돌봐온 이들의 인내를 바닥나게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간병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간병인이 환자를 살해하는, 이른바 간병 살인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환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더불어 이들을 수용할 요양병원 또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극중 이야기는 우리가 곧 마주해야 할 현실이자 미래의 모습이다.  
  
 영화 <간호중>

영화 <간호중> ⓒ 찬란


영화는 미래 기술의 핵심으로 꼽히는 자율주행차량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윤리적 딜레마, 이를테면 차량 운행 중 노인과 어린이 가운데 누군가를 차로 치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과연 누구를 칠 것인가 따위의 인공지능 기술에 공통으로 내재된 딜레마에 대해 고민케 한다. 인공지능의 기술적 완성도와 진화 가능성도 민감한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다.  
 
간호중처럼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지하고 생각하여 행동하는 단계에 이를 경우 우리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이고 어디로 갈 것인가. 이 혼란스러운 감정은 극중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고 행동해온 간호중을 향한 정인의 무차별 폭행, 혹독한 딜레마에 빠져 결국 스스로를 제거해달라고 애원하는 간호중의 격한 몸부림, 그리고 구도자를 자처하는 한 수녀(예수정)의 애정 어린 기도 장면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빈부 격차는 디지털 격차를 낳고, 디지털 격차는 다시 삶의 질을 가르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정인이 구입한 로봇에 비해 치매 환자를 간병하던 로봇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급형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영화 <간호중>은 세련된 연출을 통해 디지털 기술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윤리적 딜레마와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고령화 사회에 요구되는 복지 관련 화두를 꺼내들며 관객으로 하여금 곧 닥쳐올 가까운 미래에 대한 제법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게 한다. 
 
 영화 <간호중>

영화 <간호중> ⓒ 찬란

간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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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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