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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다닌 회사를 나오기 전, 회사 밖 생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와보니 그렇게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저의 시행착오가 회사 밖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기자말]
퇴사 후, 회사 밖에서 가장 요구되는 능력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마케팅 능력이고, 두 번째는 거절을 견디는 능력인 것 같다.

누군가 SNS 계정 팔로워 5천명이면 굶어죽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팔로워 5천명이 내 물건을 사준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퇴사하고 나서 깨달았다. 팔로워 5천명은 물건을 사주는 사람 수가 아니라 그저 마케팅의 시작점일 뿐이라는 것을. 

팔로워 기반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지인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인데, 지인효과는 짧고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사실 5천명이라고는 해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평균 400명 내외였고, 많이 읽어야 600명이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는 5천명이 아니라 평균 500명으로 환산해야 맞았다.
 
퇴사후 가장 필요한 능력은 마케팅 능력과 거절을 견디는 능력이다.
 퇴사후 가장 필요한 능력은 마케팅 능력과 거절을 견디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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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1년 3월 20년간 몸 담던 회사를 떠났다. 올 3월이 되면 퇴사한 지 1년이 된다. 그 사이 나는 SNS를 통해 2가지를 팔아봤다. 글쓰기 강의를 팔아보고, 남편의 아이디어 발명품인 건축 자재를 팔았다(이 글의 태생이 스타트업 이야기이기 때문에, 판매물품을 언급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힌다,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홍보라는 오해는 거둬주시길).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판매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고, 오랜 시간 블로그에 축적한 노하우가 있으니 강의를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남편은 자체 발명품인 건축 자재를 만드는 기업을 혼자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품 제작에 판매까지 담당하느라 정작 홍보다운 홍보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퇴사한 후 남편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 회사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했다(라고 쓰지만 사실 나도 마케팅을 해본 경험은 전무했다).

우선 글쓰기 강의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3번 만에 중단 되었다.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소규모로 진행하니 모객은 될 거라 생각했다.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했고, 출간도 했고, 매일 글쓰기 모임도 하고 있었으니까.

2번은 성공적으로 모객이 되었으나 3번째는 모객에 실패했다. 한두 번의 마중물이 넓게 퍼져나가지 못한 탓이었다. 내가 네임드 작가이거나 팔로워가 많았으면 모객이 좀 달라졌을까? 마케팅 능력이 좋아서 그럴싸 하게 포장했다면 달라졌을까? 어쨌거나 나는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건축자재 홍보는 시작부터 어려웠다. 나와 소통하는 대부분의 이웃들이 주부나 엄마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어필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 일상 글을 올리다가 건축자재의 기능과 필요성에 대해서 홍보하자니 부끄러움이 먼저 앞섰다. 건축자재 홍보를 하고 있으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콘셉트로 운영하던 블로그에 뜬금없이 건축자재를 홍보하니, 섞일 수 없는 재료를 섞어서 만드는 음식 같았다. 마치 식빵에 생선통조림을 얹어서 내주는 기분이랄까. 당연히 건축자재 홍보는 글을 올렸다고 해서 마구 팔리거나 하지 않았다.

홍보글을 올리면 글 조회수도 현저히 떨어졌다. 일상 글에서는 좋아요와 댓글을 자주 달아주던 이웃들도 홍보글은 외면하기 일쑤였다. 조용한 거절이었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속은 쓰렸다.

돈 앞에서 냉철해지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관계에서는 냉철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관계에서는 냉철해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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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와 제품, 두 건의 판매를 진행해 보면서 깨달았다. 블로그로 무언가를 판매한다는 건 지인찬스에 기대는 일이라는 것과 지인찬스에 기대면 판매가 확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게다가 글쓰기와 건축자재는 다른 품목인 만큼 다른 방식의 마케팅이 필요했는데, 나는 많이 서툴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냉철해진다. 돈과 연관 없는 관계에선 좋은 게 좋은 것이지만, 돈을 주고받는 관계로 가면 철저하게 비즈니스가 된다. 나 또한 이웃이 물건을 팔 때, 가성비와 나에게 필요한지를 따져서 지갑을 여는 편이었다. 의리로 사면 나중에는 결국 쓰레기가 되니까.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나서 나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마케팅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마케팅의 세계는 생각보다 방대했다. 돈이 흐르는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던가. 무수히 많은 마케팅 업체가 있었고, 괜찮은 마케팅 업체의 비용은 대부분 비쌌다. 싼 곳도 있었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돈이 돈을 버는 곳이 마케팅의 세계였다. 무료도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는 비싼 값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었다.

홍보는 돈 아니면 시간이었다. 돈 많은 대기업이라면 시간을 아끼는 방법을 택했겠지만, 우리처럼 영세한 기업은 마케팅 비용을 무한정 쓸 수 없으니 시간을 써야 했다. 시간투자 대비 최대한의 효과를 노리는 지점을 매일 연구하고 고민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가끔 외로웠다. 누군가 상의할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때, 들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판단도 결과도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때론 잘못된 판단이 피해를 불러왔던 적도 있었다. 광고로 쓴 돈은 수십만 원이었는데, 판매는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때는 많이 괴로웠다.

회사에 있었더라면 실수를 덜 했을 거라 생각했다. 기존에 일했던 참고자료라도 있었을 테고, 전임자나 관련 부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혹은 실패한 결과에 대해 동료에게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퇴사 후엔 아무도 없었다. 일에 대한 모든 것은 혼자 감당하고 견뎌야 했다.

그렇다고 나는 다시 회사 안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마케팅에 목말라하며, 홀로 견뎌내는 상황이 외롭지만 퇴사를 후회하진 않는다(이미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회사 밖으로 나온 나는 어쨌든 스스로 홀로서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내야만 한다.

회사 밖으로 입사한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회사 밖의 능력을 쌓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회사 밖의 능력을 쌓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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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회사 밖으로 입사한 신입사원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회사 밖에서 기업가로 일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서투르고 헤매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분야의 인맥도 빈약하고, 모든 것이 좌충우돌 일 수밖에 없으리라.

또 회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다 힘들고 어려울지언정 생각보다 회사 밖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만족의 중심에는 재미가 있었다. 사업을 키워가는 재미, 성장하는 재미, 도전하는 재미. 그 재미가 어렵고, 외롭고, 힘든 상황을 견뎌내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 재미 때문에 나는 거절에 조금 무심해졌다. 이웃들의 공감수와 댓글에 더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해보니 익숙해졌다. 읽을 사람 읽고, 지나칠 사람은 지나쳤다.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글이란 없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회사 밖에서 나는 차곡차곡 능력을 쌓아가는 중이다. 능력을 쌓는다고 해서 서비스와 물건을 좀 더 잘 팔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다만, 적어도 거절에 대해 덜 아파할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또 3회 만에 중단한 글쓰기 수업을 다시 열 예정이다. 실패를 복기하고 모자란 점,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식빵에 생선통조림 같을지언정 건축자재에 대한 홍보도 계속 할 예정이다. 사는 이야기에 정답은 없지 않은가. 누군가는 길을 내고 가는 법이다. 나는 내 삶의 길을 스스로 내고 있는 중이니까. 오늘도 무심하게 한 걸음 내디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SNS(https://in.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태그:#창업, #1인기업, #퇴사생활, #창업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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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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