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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만에 제작되어 화제가 된 KBS 1TV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이 논란에 휩싸였다. 7화에서 이성계 낙마 장면을 위해 말의 다리를 묶어 말을 고꾸라지게 한 연출이 논란이 된 것이다. 

낙마 장면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개 이전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문제가 제기된 바 있지만 동물권 단체의 SNS 영상을 통해 논란이 더욱 가열되었다. KBS 측은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 상 부상이 없어 말을 돌려보냈다. 최근 건강상태를 확인해보니 안타깝게도 촬영 1주일 뒤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며 사과했다.

동물자유연대에서 공개한 영상을 보면 말은 앞다리에 줄이 묶인 채로 달린다. 달리는 도중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줄다리기를 하듯 줄을 잡아당긴다. 말과 스턴트맨은 고꾸라지고 잠시 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몇 명의 사람들이 스턴트맨에게 다가가지만 누구도 넘어진 말을 돌보거나 살피지 않는 장면이 포착된다.

5년 여간 죽도록 달리고 촬영용 말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까미'

학대당한 말의 이름은 '까미(예명)'였다. 21일 <한겨레> 애니멀피플의 취재 결과, 까미는 경기도의 한 말 대여업체 소속 말인 것으로 확인됐다. 5년 여간 경주마 생활을 하다가 대여업체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 시청자 게시판은 말 학대 논란과 관련하여 폐지를 요구하는 게시글로 도배되고 있다. 또한 21일 게시한 '방송 촬영을 위해 안전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의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국민청원에는 24일 현재 13만 명 넘는 국민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여파일까. <태종 이방원>은 22일과 23일에 결방했다. 

몇 초의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말이 학대되고 사망한 것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과거 사극 낙마 장면을 찾아보면 말은 서있는 채로 사람만 낙마한다. 이번 <태종 이방원> 7화 낙마 장면이 논란이 된 것은 촬영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동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과거처럼 사람만 낙마하는 방식으로 촬영한다면 문제가 없는 걸까? 

사회가 말이라는 동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까미가 촬영 중 학대당하고 사망에 이른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고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말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이 학대받고 도살되고 있다.

인간의 유익을 위해 사육되는 말 2만 6천여 명(命), 도살되는 말 1천 여 명(命)
 
2020년 용도별 말 사육두수, 자료출처: 통계청
 2020년 용도별 말 사육두수, 자료출처: 통계청
ⓒ 편집: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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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용도별 말 사육두수를 보면 대한민국 땅에서 말이 어떤 용도로 사육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승용, 경주용, 번식용, 육용, 관상용, 교육용, 기타로 구분된다. 승용 말은 귀족 스포츠로 알려진 승마에 주로 이용된다. 경주용 말은 우리 모두가 아는 경주마다. 다른 가축들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위한 말이 별도로 있고 익숙지는 않지만 식용 말도 별도로 사육되고 있다. 

2020년 10월 14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성곤 국회의원이 한국마사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퇴역 경주마 중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지 않는 '기타 용도' 비율이 2016년 5%에서 2017년 6.4%, 2018년 7.1%, 2019년 7.4%, 2020년 22.5%로 급증했다. 5년간 퇴역 경주마의 용도를 확인한 결과, 약 40%는 승용, 번식용으로 활용되었고 50%는 질병, 부상 등으로 도살됐으며 나머지 10%는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지 않았다. 

2019년 5월 3일 국제 동물권 단체 'PETA(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하는 사람들)'는 유튜브를 통해 '구타와 도살, 한국의 경마산업 최초 조사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퇴역 경주마나 부상당한 경주마의 행방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장면들이 나온다. 영상에는 경주마로 활동하던 말이 도살장으로 가는 모습과 운송 트럭에서 계류장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막대기로 말의 얼굴을 가격하는 모습이 담겼다. 도살장 안에서도 끔찍한 장면은 이어진다. 다른 말이 도살되는 끔찍한 장면을 무방비로 지켜보게 된다. 

이는 동물보호법 8조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고, 10조 동물의 도살 방법에도 위배된다. 하지만 동물보호법에서 식용 목적의 동물은 '동물'에 해당되지 않기에 교묘하게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쓸모를 다 한 말은 도살장으로 간다

왜 퇴역 경주마를 도살장으로 보내는 걸까? 이유는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첫째로 '돈' 때문이다. PETA 영상에 나오는 한국마사회 소속 수의사에 따르면 퇴역 경주마를 돌보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둘째로 '기술'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퇴역 경주마를 승용마로 전환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조련 기술이 부족하여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9-2021년 말 도살두수, 자료출처: 농림축산식품검역본부
 2019-2021년 말 도살두수, 자료출처: 농림축산식품검역본부
ⓒ 편집: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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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말 도살두수는 총 1270명(命)으로써 제주(990명)에서 가장 많이 도살되었다. 도살된 말은 사람이 먹거나 반려동물의 간식이나 사료로 가공된다. 제주에서는 물론이고 도살장이 단 한 개도 없는 서울에서도 말을 먹을 수 있다. 특히 말은 반려동물 간식 상품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살되고 식용으로 판매되는 것만 방지한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태종 이방원> 제작진이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7화 낙마 장면이 해당 제작진만의 실수나 학대라고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동안 까미와 같은 말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의 현실을 방관한 우리 모두의 잘못과 책임일 것이다. 그저 까미의 모습이 TV와 SNS를 통해서 우연히 드러난 것일 뿐이다. 도처에 널려있는 동물들의 처참한 일상을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유흥과 오락을 위해 승마와 경주를 위한 말을 사육하는 우리 문화에 대해서 깊이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말을 먹거나 타지 않는다고 하여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문화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말을 마음껏 타도 된다는 생각은 다른 동물을 마음대로 죽이고 먹어도 된다는 생각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계정에도 발행됩니다.


태그:#태종이방원, #말학대논란, #까미, #경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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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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