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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달동네'는 '달'이란 음절에 꽂힌 친구 셋이 만든 작은 골목상권이다. '이웃 관계가 지속되는 공동체'라는 달동네의 가치와 맥을 같이 한다. 사진은 식당 달쉡의 박영달씨,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의 청산, 미니어처 공방의 운영자 록산 순(왼쪽부터).
 "배다리 달동네"는 "달"이란 음절에 꽂힌 친구 셋이 만든 작은 골목상권이다. "이웃 관계가 지속되는 공동체"라는 달동네의 가치와 맥을 같이 한다. 사진은 식당 달쉡의 박영달씨,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의 청산, 미니어처 공방의 운영자 록산 순(왼쪽부터).
ⓒ 박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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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구도심의 보석 같은 동네 배다리에 최근 '달동네'가 떴다. 배다리는 산기슭이 아닌 바닷물이 깊이 들어오던 낮은 갯골에 생겨난 동네인지라 '달과 가깝게 지내는 산동네'란 의미의 달동네와는 관련이 없다.

'배다리 달동네'는 '달'이란 음절에 꽂힌 친구 셋이 만든 작은 골목상권이다. '이웃 관계가 지속되는 공동체'라는 달동네의 가치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니 단순한 언어유희는 아니다.​

'달'을 좋아하는 친구들, 배다리에 뜨다

문화기획자 청산별곡과 반려묘 '반달이'가 운영하는 '생활문화공간 달이네_나비날다 책방', 미니어처 작가 '록산'이 작업하는 '미니어처 공방 달리(dolly)', 요리사 '달쉡'이 음식을 만드는 '식당 달쉡(Dal chef)'이 배다리 우각로 골목길에 이마를 마주하고 있다.

세 친구가 '달'이란 음절에 꽂힌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달이네' '반달이' '달리'는 모두 '배다리'라는 말에서 연유한 이름들이다. '다리'에서 '달이' 혹은 '달'로 소릿값이 바뀌고, '달이'는 다시 '달이네' 혹은 '반달이'로 변주됐으며, '달'은 인형을 의미하는 영어 '달리(dolly)'로 변용됐다. '달쉡'의 '달(Dal)'은 요리사 본인의 이름 '박영달'에서 가장 독특한 음가를 가진 마지막 음절을 딴 것이다.

재미난 배다리 친구들의 지극한 우연과 필연이 만들어낸 배다리 '달'동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배다리에 떴지."
 
조흥상회는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지만 1948년 미군이 촬영한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어 그전에 지어진 게 분명하다. 사진은 예전의 조흥상회와 현재 조흥상회 모습
 조흥상회는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지만 1948년 미군이 촬영한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어 그전에 지어진 게 분명하다. 사진은 예전의 조흥상회와 현재 조흥상회 모습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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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달동네 세 친구의 인연은 배다리 헌책방 초입에 있는 오래된 가게 '조흥상회'로 거슬러 간다. 조흥상회는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지만, 1948년 미군이 촬영한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그전에 지어진 건물이 분명하다.

배다리 일대 상권이 엄청났던 시절, 가장 좋은 목에 자리 잡은 이 건축물은 살림 채와 상가의 원형이 잘 보존된 근대유산이다. 1980년대부터 방치돼 오던 건물을 2012년에 문화기획자 청산별곡이 '생활문화공간 달이네'로 바꾸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쳤다. 안채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독립책방 '나비날다'와 공유공간 '요일가게'를 운영했다.

배다리 지하 공예 상가에서 가죽공방을 하던 록산은 더 넓은 가게를 찾다가 우연히 들른 책방 나비날다에서 청산별곡과 인연을 맺게 됐다.

"재미난 일을 함께 궁리할 친구가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었거든요. 건물주와 록산을 설득해서 비어있던 옆 가게에 공방을 차릴 수 있도록 했죠."

청산별곡의 도움으로 록산은 조흥상회 한켠에 가죽공방을 차렸다. 문화기획자와 가죽공방지기는 이웃사촌이 되어 재미난 일을 모의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다.

역시 우연히 친구를 따라 록산네 가죽공방에 놀러 온 요리사 달쉡은 조흥상회 건물을 둘러보다가 공유공간 '요일가게'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데, 오래된 붉은 벽돌과 목제 트러스에 반했다.

"공간이 너무 좋은 거예요. 여기에서 아는 사람들이 모여 홍합탕을 끓이고 파스타를 해 먹는 상상을 했죠."
             
달쉡은 마침 서울에서의 요리사 일을 잠시 멈추고 쉬고 있었고, 요일가게는 요일별 주인을 찾고 있던 터였다. 달쉡은 토요일 주인이 되었고, 매주 토요일마다 요일가게에서 '달쉡의 파스타' 식당 문을 열고 손님들에게 요리를 해주며 사계절을 보냈다.
 
'침은 놓지 않는' 동성한의원 문화상점은 책, 친환경 제품, 뜨개작품, 빵으로 처방하고 치유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화공간이다.
 "침은 놓지 않는" 동성한의원 문화상점은 책, 친환경 제품, 뜨개작품, 빵으로 처방하고 치유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화공간이다.
ⓒ 박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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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별곡은 오랫동안 비어있던 '동성한의원' 건물을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문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청산별곡은 오랫동안 비어있던 "동성한의원" 건물을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문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박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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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서 공동체로

201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근대 역사를 간직한 조흥상회 건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지역문화 자산으로 보전·관리하기 위해 매입했다. 그리고 지난해, 보수·복원 계획에 따라 조흥상회 건물에 임대하고 있던 청산별곡과 록산은 가게를 빼고 새로운 터를 마련해야 했다.

청산별곡은 오랫동안 비어있던 '동성한의원' 건물을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문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상점에는 독립책방 '나비날다', 제로웨이스트샵 '슬로슬로', 손뜨개 가게 '실꽃', 빵과 쿠키를 굽는 '지유오븐'이 사이좋게 입점해 있다. '침은 놓지 않는' 동성한의원 문화상점은 책, 친환경 제품, 뜨개작품, 빵으로 처방하고 치유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화공간이다.​

"각박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곳은 서로 나누고 비우는 공간이기를 바라요." 청산별곡의 소박한 바람이 만든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행복한 잠을 늘어지게 자는 반려묘 반달이처럼, 누구나 천천히 숨 고르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곳이니, 출입문 상단에 붙은 '요양기관' 표시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곧이어 록산이 우각로를 사이로 동성한의원 바로 건너편에 미니어처 공방을 새로이 마련했다. 미니어처 공방은 가죽공방을 하기 훨씬 전부터 꿈꿔온 공간이었다.

"미니어처를 만든다는 건 그 물건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만을 담아서 표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집중해서 작업하는 시간이 참 행복해요."
 
우각로 사이 동성한의원 바로 건너편에 록산이 운영하는 미니어처 공방을 새로이 마련했다. 미니어처 공방은 가죽공방을 하기 훨씬 전부터 꿈꿔온 공간이었다.
 우각로 사이 동성한의원 바로 건너편에 록산이 운영하는 미니어처 공방을 새로이 마련했다. 미니어처 공방은 가죽공방을 하기 훨씬 전부터 꿈꿔온 공간이었다.
ⓒ 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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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로 사이 동성한의원 바로 건너편에 록산이 운영하는 미니어처 공방을 새로이 마련했다. 미니어처 공방은 가죽공방을 하기 훨씬 전부터 꿈꿔온 공간이었다.
 우각로 사이 동성한의원 바로 건너편에 록산이 운영하는 미니어처 공방을 새로이 마련했다. 미니어처 공방은 가죽공방을 하기 훨씬 전부터 꿈꿔온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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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크기로 축소하고 엑기스만을 모아 꾹꾹 눌러 담는 작업은 무척이나 섬세하고 까다롭다. 점토, 천, 나무, 가죽, 레진, 안료 등 사용하는 재료도 다양해서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오랫동안 손으로 만들어 온 작은 신발, 가방, 인형, 가구, 음식, 건물 미니어처 작품들이 공방 안에 빼곡하다.

건물 미니어처 작품들로 꾸민 멋진 간판 앞에서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사진을 찍고, 쇼윈도 너머로 공방을 기웃거리다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는다. 지금은 전시 작품 위주로 작업하고 있지만, 곧 합리적인 가격의 달리 공방 미니어처 상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록산이 얻은 가게 옆이자 동성한의원 바로 건너편에 식당으로 안성맞춤인 가게가 나와서 달쉡도 곧바로 합류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공간이 넓어서 고민을 좀 했는데, 청산과 록산이 옆에 있어서 마음을 정했어요. 빚이 좀 더 늘었지만요."

요리사가 되면서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식당의 모습을 하나씩 구현했다. 벌써 오래전에 점 찍어두었던 가구, 직접 그림을 그려 하나하나 준비한 식기, 요리별로 적합한 도구 등으로 식당의 품격을 높이고, 많은 고민과 연구로 음식 메뉴를 정했다.

밝고 경쾌한 공간에서 단순하면서도 풍미 가득한 샐러드, 파스타, 양갈비, 이베리코스테이크와 직접 만드는 달달한 디저트로 손님을 맞는다. 달쉡은 테이블을 치우면서 깨끗하게 싹 비워진 접시를 볼 때마다 '뭘 쫌 아는 손님들' 덕분에 행복해진다.
 
요리사 박영달씨는 식당 달쉡을 열면서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식당의 모습을 하나씩 구현했다. 벌써 오래전에 점 찍어두었던 가구, 직접 그림을 그려 하나하나 준비한 식기, 요리별로 적합한 도구 등으로 식당의 품격을 높이고, 많은 고민과 연구로 음식 메뉴를 정했고 손님들과 소통하고 있다.
 요리사 박영달씨는 식당 달쉡을 열면서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식당의 모습을 하나씩 구현했다. 벌써 오래전에 점 찍어두었던 가구, 직접 그림을 그려 하나하나 준비한 식기, 요리별로 적합한 도구 등으로 식당의 품격을 높이고, 많은 고민과 연구로 음식 메뉴를 정했고 손님들과 소통하고 있다.
ⓒ 박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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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박영달씨는 식당 달쉡을 열면서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식당의 모습을 하나씩 구현했다. 벌써 오래전에 점 찍어두었던 가구, 직접 그림을 그려 하나하나 준비한 식기, 요리별로 적합한 도구 등으로 식당의 품격을 높이고, 많은 고민과 연구로 음식 메뉴를 정했고 손님들과 소통하고 있다.
 요리사 박영달씨는 식당 달쉡을 열면서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식당의 모습을 하나씩 구현했다. 벌써 오래전에 점 찍어두었던 가구, 직접 그림을 그려 하나하나 준비한 식기, 요리별로 적합한 도구 등으로 식당의 품격을 높이고, 많은 고민과 연구로 음식 메뉴를 정했고 손님들과 소통하고 있다.
ⓒ 박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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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다른 가게를 운영하는 달동네 친구들은 각자의 지인과 SNS를 통해 서로를 홍보하고, 창 너머로 서로를 보살핀다. #자칭홍보대사 #앞집은달쉡이죠 #인천배다리 #동성한의원 앞집 #달리 옆집... 이웃의 정이 뚝뚝 묻어나는 해시태그다.

다시 뭉친 이들은 한가한 시간이 찾아오면 서로의 가게로 마실을 가고 함께 먹고 마시며 재미난 일을 궁리한다. "잘 들어봐"로 시작하는 배다리 달동네 세친구의 '달달모임'은 요즘 '달달마켓'에 꽂혀있다. 남의 공간으로 성큼 들어서지 못하는 수줍은 방문객과 배다리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웃들과 교류하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가게 문을 활짝 열고 각자 문 앞에 작은 마켓을 펼치는 주말 골목길을 상상하며 머리를 맞대고 살을 붙이는 중이다.

■ 나비날다 책방_청산별곡

○ 인천 동구 서해대로 513번길 9
○ T: 010-9007-3427
○ 영업시간: 11:00~20:00
○ Instagram@kesime1019

■ 미니어처 공방 달리(dolly)_록산

○ 인천 동구 서해대로 513번길 6
○ T: 0507-1396-8393
○ 영업시간: 10:30~19:00 (일요일 쉼)
○ Instagram@ryun032

■ 달쉡(Dal Chef)_달쉡

○ 인천 동구 서해대로 513번길 8
○ T: 010-4740-4224
○ 영업시간: 11:30~21:00 (Break Time 15:00~17:00, 월요일 쉼)
○ Instagram@dal.chef1

글·사진 박수희 I-View 객원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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