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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 효목동, 평일 오후의 동촌유원지 식당가는 한산하였다. 1월의 한파에 코로나19의 여파까지 겹쳐 행인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고충이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것과 별개로 최근 대선 정국을 맞아 이들의 시름이 사회적으로 연일 조명받는 측면은 있다. 이로인해 그들에 대한 관심이 유지되는 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식당가 끄트머리로 가다보면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있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의 소중한 근대문화유산, 조양회관
 
동촌유원지 식당가 끄트머리에 조양회관 표지판과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동촌유원지 식당가 끄트머리에 조양회관 표지판과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 권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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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켠에 세워진 표지석에는 '조양회관'이라 적혀있었다. 이곳은 2002년에 등록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근대문화유산이다. 사실 길가에서는 45m 높이의 탑에 가려 조양회관의 전면이 제대로 보이진 않는다. 탑 옆에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아래로는 소규모 광장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겨우 몇 걸음 차이로 순간 이동한 듯 유원지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진다. 유원지 안에 이질적으로 자리잡은 채 우뚝 솟아있는 탑은 지역의 애국지사를 기리기 위해 2006년에 완공한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 기념탑이다. 이 일대가 인파로 붐빌 때에도 공간의 맥락이 뚝 끊긴 듯한 이곳에 얼마나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이 닿았을지 의문스러웠다.
 
조양회관 앞에는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 기념탑과 대형 태극기가 있다.
 조양회관 앞에는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 기념탑과 대형 태극기가 있다.
ⓒ 권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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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 뒷편으로 가면 조양회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항일민족운동을 펼쳤던 서상일(1887~1962)을 비롯한 민족 지도자들이 민중과 청소년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할 목적으로 건립한 교육 시설이었다. 조양회관이라는 이름은 '아침 해가 비치는 곳'이라는 뜻으로 지역 청년들에게 계몽운동을 펼쳤던 이곳의 역할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조양회관의 내부는 주중에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하고 있는데, 항일투쟁과 관련된 사진과 유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지역 문화유산과 시민 일상과의 거리
 
조양회관은 원래 있던 달성공원 자리에서 현재 망우당공원으로 이전 및 복원되었다.
 조양회관은 원래 있던 달성공원 자리에서 현재 망우당공원으로 이전 및 복원되었다.
ⓒ 권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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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양회관은 지역민들에게 익숙하거나 친근한 공간이라 보기는 힘들다.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를 체험할 수 있고, 근대건축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하고 의미있는 장소임에도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도심에서 근대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유리한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인지도나 활용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장소를 매입한 대구시나 위탁 관리하는 대구경북광복회 연합지부에서 정책적 관심이나 사업적 의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으로 운영의 한계가 있고, 문화유산을 홍보하는 데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조양회관 건립의 주역인 서상일 선생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조양회관 건립의 주역인 서상일 선생의 동상을 볼 수 있다.
ⓒ 권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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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역사일 때, 가치가 생겨나

현 위치에 자리한 조양회관은 원래 1922년 달성공원에 세워졌던 것으로 1983년 망우당공원 내에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위치나 모습이 원래의 것은 아니나, 그 의미마저 바뀌거나 훼손되는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곳은 그 역사적인 보존 가치로 인해 건물을 없애는 대신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이전한 경우이다. 대구에서 근대건축을 이전․복원하여 보존하는 건 현재 조양회관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원래 건립 시기를 따지면, 올해는 조양회관 100주년이 되는 셈이다.
 
조양회관 내부는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양회관 내부는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 권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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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회관으로서 의미있는 해를 맞이한 만큼 기념행사나 관련 홍보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쉽지만,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듯 했다. 물론 모든 곳에서 몇 주년 기념을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나,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는 여러 의미를 빌어서라도 지속적인 관심의 환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에게 점차 존재감을 잃어가는 지역 문화재라면, '100주년'이라는 의미가 여러 면에서 유용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양회관이 있는 망우당공원 일대는 항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들이 도보로 5~10분 간격으로 모여 있어 역사·문화 테마코스로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망우당공원의 항일역사 코스는 주위의 동촌유원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가족 단위 방문 장소로 큰 이점을 갖고 있다.

당장 시민의 외출을 독려하거나 대면 행사를 개최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지역사의 가치를 창출하여 지속하는 건 긴 호흡이 필요한 만큼 문화유산 콘텐츠로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하는 역사일 때 가치가 생긴다는 점에서 지자체나 관리단체가 '조양회관 100년'의 호재(好材)를 무심하게 놓치지 않고, 현 상황에 대응한 다양한 홍보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조양회관이 자리한 망우당공원은 항일 역사 테마코스로 손색이 없다.
 조양회관이 자리한 망우당공원은 항일 역사 테마코스로 손색이 없다.
ⓒ 권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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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회관 100년, 가치 창출의 주체

조양회관과 같은 항일 문화유산의 경우에는 지자체나 광복회뿐만 아니라 문화재청이나 지방보훈청, 관광 및 문화재단, 관련 시민단체 등 여러 기관·단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문화유산의 관리 및 운영 차원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지역사 학습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 측면에서 본다면 교육청 차원의 역할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양회관 100주년에 관심을 가질 기관·단체가 많을수록 주체가 분산되고 책임이 모호해질 수도 있다. 또한, 아무도 제 역할과 책임에 성의를 다하지 않더라도 별 문제없이 지나갈 공산도 크다.

주체가 어느 곳이 되었건 조양회관 100주년 사업에 대해 보다 꼼꼼하게 확인하고, 좀 더 발빠르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예산 부족이나 방역 상황 등 여러 고려사항이 있겠으나, 이러한 일들은 결국 의지의 문제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양회관 100년의 의미가 시민들과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조양회관 100년의 의미가 시민들과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 권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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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壬寅年)이 이제 막 기지개를 켠 만큼 조양회관 100년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릴 시간은 남아있다.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조금이라도 모일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태그:#조양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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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기본을 생각하며 교육의 해법을 찾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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