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9 11:29최종 업데이트 22.01.2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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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노동자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2021년 8월 29일.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에서 '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장으로 선출된 윤설은 힘주어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현장에는 최서현 위원장과 이은하 초대위원장 등 스무명 정도만 참석했지만 "고마워요, 수고해요"라는 격려가 넘쳐났다.


90년생 윤설은 울산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록밴드 활동으로 보냈다. 밴드연합회 회장을 맡아 '파이프'를 엮어 직접 무대를 설치하면서 록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자우림과 레이지본을 좋아했고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나 여성민우회 행사에도 초대받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행복하고 즐거운 10대였다.

수원에서 대학을 마친 윤설은 학원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보낸 10대 시절에 비춰 괜히 미안했다. 봉사라도 하자는 마음에 이런저런 청소년 지원단체를 쫒아다녔다.

2016년 그때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던 열아홉 살 김군이 숨졌다. 이듬해인 2017년엔 서귀포산업고의 이민호군이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특성화고 아이들이 당한 이 사건이 윤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는 2017년 시민단체인 '특성화고 권리연합회'에 들어가 아이들의 멘토 노릇을 시작했다. 

특성화고 아이들을 인정하기까지
 

특성화고 노동조합 경기지부장 윤설 사무실에서 그의 모습을 담았다. ⓒ 민병래

 
활동 초기 그는 아이들과 부딪혔다. 진로상담을 한다면서 윤설이 늘어놓은 얘기가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니?" 같은 말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고졸 학력이 멍에가 됨을 알면서도 특성화고를 선택한 아이들은 '대학' 얘기를 싫어했다.

"어떻게든 대학은 마쳐야 한다"고 부모가 특성화고 진학을 반대한 경우도 있고 형편이 어려우니 네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고 떠밀린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열다섯, 중학교 3학년 나이에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특성화고에 대한 화려한 학교 홍보와 달리 대기업과 공공기관 취업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현장실습처는 최저임금에 걸쳐있는 사업장이 대부분이었고, 현장에 나가면 어른들의 반말과 욕지기를 들어야 했다. "공부 못해서 특성화고 들어갔냐, 지금이라도 맘 잡고 공부해라"라는 모욕도 당해야 했다.

아이들은 때때로 "대학보다 큰 인생공부를 하고 있다"고 윤설에게 말했다.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윤설은 생각을 바꿨다. 아이들의 특성화고 결정을 존중하고, 이 선택이 상처받지 않게, 특성화고를 나와도 차별받지 않고 안전한 일터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그래서 윤설은 특성화고권리연합회 회원으로서 아이들을 옆에서 돕는 것을 넘어 당사자 조직에 직접 참여하기로 한다. 

마침 특성화고노동조합도 2020년부터 졸업생은 물론 고등학교 재학생까지 조직대상을 확대해 노동조합의 취지에 동의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문호를 열었다. 윤설은 기꺼이 가입했고, 아예 경기지부장까지 맡게 된 것이다.

윤설이 지부장이 되고 가장 크게 맞닥뜨린 일은 홍정운 군의 죽음이었다. 당시 고3이었던 홍 군은 2021년 10월 여수에서 현장실습 중 물에 빠져 죽었다.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라고 지시를 받고 이를 작업하다 그만 변을 당한 것이다. 물을 무서워하고 잠수자격증도 없는 아이였다.

윤설은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또 서명운동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 문제로 가벼운 충돌도 있었다. 수원 삼일공고 앞에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8대 요구'와 '최저임금미달 현장 실습처 제보' 서명운동을 시작했을 때 몇몇 교사들이 다가왔다.

교사 중 한 명이 "학생들의 학적이 학교에 있으니 학생들에 대한 '소유권'을 우리가 갖고 있다. 허락 없이 서명받지 말라"며 행사를 가로막았다. 아침도 거르고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종종거리며 왔건만 이날 서명 작업은 중단되었다.

윤설과 경기지부 조합원들은 며칠 후 "학생들에 대한 소유권은 교사가 갖고 학생들은 자기 결정권이 없다니요?"라는 펼침막을 들고 항의 방문을 했다. 그는 삼일공고 교장을 만난 자리에서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그간 윤설이 노조활동을 하며 겪어보니 삼일공고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특성화고 교사들이 노동자로 살아갈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노동조합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특성화고 조합원들인 학생들은 늘상 학교현장에서 '탄압'받거나 제재를 받는다.

그렇다고 특성화고 교사들을 마냥 탓할 수만도 없다. 이들은 아이들에 대한 교육만이 아니라 고3 학생들의 실습처를 구하는 일까지 떠맡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나 고용노동부가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하는 셈이다. 물론 일부 지역에는 취업지원관이 있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이어서 전문성도 떨어지고 취업과 관련한 자료가 쌓이지 않는다.

담임선생이나 취업부장교사가 현장실습처에 나가도 현장을 맘 편히 둘러볼 수 없다. 가령 반도체 관련 공장 같은 경우는 아예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아이들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다음해 현장실습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특성화고 교사들이 대놓고 노동인권을 강조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장려할 수 없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다행히 삼일공고는 교사들의 발언과 노동조합활동 저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학교는 사과문을 가정통신문으로 발송하고 홈페이지에도 게재했다. 또 18세 이상 참정권이 보장되어 있는 현실이나 '경기학생인권조례'에 맞지 않는 사회단체 활동 제한, 머리 길이 같은 규정도 고치기로 했다. 삼일공고 교사들을 상대로 '노동인권교육'까지 하기로 했으니 윤설이 경기지부장으로서 이뤄낸 작지만 큰 성취였다.

계속 반복되는 현장실습의 문제

1월 12일, 윤설은 특성화고 노동조합 간부들과 전북 장수에서 1박 2일로 2022년 새해 워크숍을 마쳤다. 수원시 인계동에 있는 경기도지부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윤설의 마음은 무거웠다.

"토요일인데 사장이 집으로 와서 김장 담그는 거 도우래요."
"실습 나갔는데 밥만 지으래요. 벌써 일주일 됐어요."
"고졸은 정규직이 안 된다고 현장에 소문이 돌아요."


새로운 건 아니지만 이번 워크숍에서 보고된 현장실습의 문제는 여전했다. 법적으로 금지인 야간노동을 버젓이 시키고, 이름 대신 "야, 임마" 하고 부르는 건 예사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이 지긋지긋한 '현장실습'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현장 실습 말고도 워크숍에서 공유된 아이들의 취업 상황은 마음을 더 우울하게 했다.

코로나로 특성화고 아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2021년도 1월 졸업생들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 학년에 취업한 애들이 소기업이든 5인 이하든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몇백 명이 졸업하는데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을 정도였다.

2022년 1월 졸업생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 녀석은 취업을 못해 특성화고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부실대학'이어서 학자금 융자가 안 된다고 윤설에게 넋두리 전화를 해왔다.

그나마 취업이 된 동준이(가명)의 소식도 마음을 쓸쓸하게 하는 건 마찬가지. "취업장려금으로 나온 500만 원을 아빠가 달래요." 그런데 녀석은 "아빠하고 엄마가 저 때문에 힘들었으니 드릴려구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윤설은 동준이 말을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조합비만으로는 생활 어려워... 적금 들고 깨고
 

특성화고 노조 사무실에서 윤설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의 한 귀퉁이를 얻어쓰고 있다. ⓒ 민병래

 
조합원인 아이들 가정형편은 대부분 딱했다. 부모가 신용불량자여서 아이 이름으로 카드를 발급받거나 오랫동안 무직 상태로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경우, 온 가족이 원룸에서 사는 경우 등등.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 밀려 겨우 최저 시급을 주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들 사업장은 대부분 수원 외곽이나 화성 들판에 퍼져 있다. 자연히 교통편이 좋지 않아 기숙사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마저도 컨테이너로 지은 간이숙소가 대부분이다. 이래저래 아이들이 힘들다.

이번 워크숍에서 2022년 힘찬 조직 확대를 결의했지만 현실은 팍팍하다.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략 23만 명, 배출된 졸업생들까지 치면 몇 백만 명이 될 것이다. 거기서 조합원이 380명이니 조직화율은 정말 미미하다. 조합비는 월 3000원, 학생들이 도제현장실습에 나가 받는 월급이 한 달 30만~40만 원 정도, 그래서 1%인 3000원으로 정했다.

수입이 없는 경우는 조합비를 면제해준다. 그렇게 모은 조합비 일부를 중앙에서 경기도지부에 교부금으로 내려주는 데 한 달에 고작 10만 원이다. 그러니 사업비는 말할 것도 없고 윤설에게 상근비조차 지급되지 않는 실정이다(사실 이는 특성화고 노동조합 상근일꾼들이 모두 겪는 고통이기도 하다). 그나마 화성시 LH 임대주택 당첨으로 월세 부담은 덜었다.  

윤설은 근무중에 수시로 알바천국과 알바몬을 들락거린다. 업무를 마치고 저녁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기 위해서다. 며칠 전 다녀 온 은행 창구 직원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조금만 더 부으면 되는데 왜 깨세요."

윤설은 학원 강사를 하며 주택부금에도 가입하고 착실하게 적금을 부었다. 2017년 '특성화고 권리연합회' 경기도지부 사무국장이 되면서부터는 돈 버는 게 뒷전이 되었다.

모자란 생활비는 부었던 적금을 하나씩 헐면서 해결했다. 그동안 부었다 깼다를 반복했는데 이번 해지가 아마 열 번째였으리라. 그날 은행 문을 나설 때 "너 앞으로 어떡할래"라는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래도 틈틈이 들어오는 후원금이 가뭄에 단비다. 조합원으로 있다가 취직해서 새로운 회사의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면 특성화고 노동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 이제 눈도 띄이고 경험도 쌓여 제대로 활동할 즈음이면 떠나야 하는 게 특성화고 노동조합원의 숙명이다.

윤설은 떠나가는 아이들에게 "어디서든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삶을 위해서 노력하라"고 등 두드리면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후배들 생각하는 마음 잊지 말라고... 그 아이들 중에는 첫 월급을 탔다고 무려 백만 원을 내놓는 친구도 있고 후원금 자동이체를 등록해 준 아이들도 있다.

특성화고 아이들을 위한 공약은 무엇인가요
 

수원역에서 열린 홍정운군 추모문화제에서 윤설 ⓒ 윤설 제공


멀리 경기도지부사무실이 눈에 들어온다. 퇴근시간이 다가와서인지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라디오에선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하루 일정이 나왔다. 많은 공약들이 쏟아지는데 어느 캠프에서도 특성화고 아이들을 위한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 중 그나마 이명박이 특성화고에 신경을 썼다. 2010년 그가 주도하여 공업계고교를 마이스터고로 바꾸며 특성화고 정책을 펼쳤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전문기술인력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무늬만 그럴 듯한 구호에 그쳤는데 그 후 박근혜 정부는 물론 민주정부 3기라는 문재인 대통령도 특성화고를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은 바가 없다. 

교육감들도 마찬가지다. 2018년 치러진 전국의 모든 교육감 선거 공약집을 분석했을 때 "직업교육의 수준을 높이겠다"는 막연한 한 줄이 대부분이었다. 고졸 일자리 확대나 산업의 변화에 맞게 전공교육수준을 높이고 안전한 현장실습을 보장하라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요구한 바는 눈에 띄지 않았다.

2022 대선에서 윤설이 바라는 바는 소박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다.

- 특성화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것
- 학력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것


오후 늦게 윤설은 사무실 주차장에 도착했다. 인터뷰 일정이 하나 잡혀 있고 밤 8시에는 경기지부 조합원들과 워크숍 결정을 공유하는 회의를 해야 한다. 저녁 먹을 시간이 애매한데 지금 김밥이라도 한 줄 먹을까? 망설이는 윤설의 어깨 뒤로 해질녘 얼음장같은 1월의 어스름이 다가왔다.
  
<못다한 이야기>

① 이 글은 전문이 A4 5쪽인데, 여기선 지면관계상 4쪽으로 줄였습니다. 전문은 본 기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pmsigni)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② 특성화고등학교는 1997년에 신설된 「초·중등교육법」의 특성화학교 조항에 따라 인가를 받은 학교로 시작하여 인성교육 중심의 학교로 대안학교와 직업교육을 주로 다루는 특성화고교로 나뉜다. 최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전문계 고등학교 등이 특성화 고등학교로 전환되고 있다. 2016년 기준, 직업교육 특성화 고등학교는 472개 학교가 운영 중이다.

③ 도제형 실습은 일학습 병행법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데 이 법은 현장 실습생을  사실상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실습중에 근로기준법도 적용받고 최저임금도 받는다. 물론  근로계약서도 작성한다. 그래서 도제형실습은 특성화고에서 엘리트코스로 인정받고 이에 선정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3학년 2학기부터 나가는 현장실습과 구별되고, 산업재해는 대개 이 '현장실습'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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