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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사막이 흔들리고 버섯구름이 솟구친다. 관광객들은 전망 좋은 호텔 루프탑에 앉아 거대한 폭발 현장을 감상한다. 한 손에는 호텔에서 개발한 특제, '원자력 칵테일(Atomic Cocktail)'을 꼬나쥐고서 말이다.

1950년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는 원자력 도시(Atomic City)라 불렸다. 네바다주가 연방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핵폭탄 실험을 유치한 것이다. 호텔 업계는 원폭 실험을 화려한 폭죽놀이처럼 광고했다.

이에 덩달아 상공인 협회는 원자력 미인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비키니 모델이 버섯구름과 함께 찍은 사진을 달력으로 인쇄해 팔았다. 호텔과 핵실험장은 불과 100킬로미터. 핵실험은 1963년 핵실험 금지 조약이 생기기 전까지 900건 정도 이뤄졌다. 관광객들은 나중에야 자신이 피폭돼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미 동부에서 이어진 대륙 횡단 철도가 로스앤젤레스에 1905년 연결되면서 라스베이거스는 정거장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31년 후버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노동자들이 몰려 들었고 마피아들은 카지노와 스트립쇼가 열리는 극장을 지었다.

인구는 5000명에서 2만 5000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다 1966년 항공업계 큰손이었던 사업가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가 라스베이거스에 놀러 온 뒤, 막강한 권력 네트워크를 이용해 마피아를 쫓아내고 이곳을 가족 친화형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후버댐이다. 이곳을 경계로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가 나눠진다.
 후버댐이다. 이곳을 경계로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가 나눠진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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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병 주의' 금욕도시의 협곡 트레일

이번에 소개할 자연 온천은 라스베이거스 가까이에 있는 골드 스트라이크 온천(Gold Strike Hot Springs)이다. 한 해 수백 만명이 라스베이거스를 찾지만 이 온천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온천은 라스베이거스 배후 도시인 볼더시티(boulder city)에 있다. 불야성 관광지에서 차로 30분 거리다.

볼더시티는 정부가 기획해 만든 금욕 도시다. 후버댐 건설(1931~1935)이 한창이던 시기, 미국은 볼스테드법(1920~1933) 때문에 술 판매가 금지돼 있었다. 이런 와중에 정부 관료가 후버댐 건설 현장을 시찰하다 댐 건설 노동자에게서 술 냄새를 맡은 것이다. 

이에 정부는 노동자들이 라스베이거스로 가지 못하도록 마을을 만들어 그들의 퇴근 후 일상까지 통제하려고 했다. 그 기획 도시가 볼더시티다. 그 때문인지 여전히 볼더시티는 소도시 풍경이다. 화려한 간판도 없고 주민들 옷차림도 소박하다. 느리게 걷는다. 물가도 체감적으로 라스베이거스보다 5% 이상 저렴하다. 카약이나 하이킹, 암벽 등반을 하려는 동호인과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우리는 볼더시티에 있는 카지노 호텔에 하루 묵고 아침 6시 30분쯤 하이킹을 시작했다. 온천이 있는 트레일은 '골드 스트라이크 트레일'이라고 불린다. 골드 스트라이크(Gold Strike)는 '노다지를 캐다'라는 뜻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조명과 자극적인 쇼, 밤샘 카지노에 신물이 났다면 이곳에서 내 안의 노다지, 평온을 찾을 수 있다.
 
골드스트라이크 캐년. 온천으로 가는 길이다
 골드스트라이크 캐년. 온천으로 가는 길이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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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구간은 왕복 7.6킬로미터다. 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하이킹 전문 웹사이트들은 이곳을 난이도 최고로 꼽는다. 경사 285미터를 오르내려야 하는데, 그 사이 밧줄 8개를 타야 한다. 밧줄은 약 4~6미터쯤 된다. 신체 건강한 성인남녀라면 누구나 도전할 만하다.

문제는 더위다. 여름철 낮 기온이 40도를 쉽게 넘는다. 이 때문에 5월부터 9월까지 하이킹이 금지돼 있다. 2003년 6월에는 하이커 두 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출발지에서 불과 1.5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그들을 발견한 하이커들이 물을 나눠주려고 했지만 희생자들은 고함을 지르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걸었다고 한다. 이는 전형적인 열사병 증상이라고 한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지역지 <라스베가스 선>은 희생자들이 온천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당시 구조대장 클린트 바셋은 "뜨거운 햇빛은 하이커를 15분 내로 숨지게 할 수 있어요. 아마도 남성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지친 상태에서) 돌아오다 사고가 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당시 낮 최고기온이 46에서 48도였다고 한다.
  
루트를 가리키는 화살표다. 이것만 잘 찾아가면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루트를 가리키는 화살표다. 이것만 잘 찾아가면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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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을 시작할 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충분히 챙겨야 한다. 출발하기 전 본인이 어디로 여행 가는지 주변에 알리고 국립공원관리청(NPS) 웹사이트에 들어가 유의사항도 살펴보자. 날씨에 따라 4월 중순부터 트레일이 차단될 수 있다. 트레일에 온천수 등 물이 있으니 마른 신발을 하나 더 챙기면 더욱 좋다. 오지이지만 트레일에서 인터넷이 연결된다는 점은 희소하다.

고대인의 땅, 붉은 협곡이 품은 온천

트레일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안내판을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면, 서서히 마천루 같은 붉은 협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판타지 게임 속 던전을 들어가듯, 맨발에 맨손인 레벨1의 캐릭터가 모험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골드스트라이크 캐년이다. 붉은 암벽 사이 좁은 길이 나 있다
 골드스트라이크 캐년이다. 붉은 암벽 사이 좁은 길이 나 있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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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 때 크레바스였을 이곳은 모든 존재를 삼키고 있는 공룡의 뱃속 같다. 좌우 협곡 사이 외길만 존재한다. 거대한 절벽 높은 곳에는 곰보처럼 작은 동굴이 다닥다닥 박혀 있다. 단층은 칼로 베어낸 듯 사선으로 깎여, 영겁의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바늘 같다. 

협곡에 비가 내리면 곧 홍수로 돌변한다. 흙이 수시로 쓸려 내려가 화산암인 각력암과 심성암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곳은 팜트리(Plam Tree) 단층과 솔트세다(Salt Cedar) 단층이 만나는 곳이다. 이 단층선이 화산암으로 붉게 솟아오른 절벽을 부수고 균열을 일으킨다. 이때 발생한 틈으로 지구 깊숙한 곳에 온천수가 올라온다.
 
하이커들이 밧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하이커들이 밧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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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킬로미터쯤 걸었다 싶으면 첫 밧줄이 나온다. 하이킹의 시작이다. 구간마다 경사진 암벽 구간이 나오는데, 밧줄이 없다면 그건 길이 아니다. 무리해서 내려가면 사고가 날 수 있다. 협곡 외길이라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 돌 위에 트레일을 나타내는 화살표도 그려져 있다. 돌 틈에 캘리포니아 왕뱀(California kingsnake)이 똬리를 틀고 있을 수 있다.

이곳은 마지막 빙하기였던 후기 홍적세, 아시아계 수렵 민족이었던 페일리오 원주민(Paleo-Americans)이 살던 곳이다. 기원전 4만 5000년에서 1만 2000년 사이, 북아시아 대륙과 북미 대륙을 연결하던 베링육교(beringia)로 페일리오 원주민은 이주를 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짐승을 사냥하며 채집 생활을 했고 벽화 등 고고학적 문화유산을 남겼다. 골드스트라이크 온천에서 목욕과 치료도 했다고 한다.
 
골드스트라이크 온천에서 만난 온천.
 골드스트라이크 온천에서 만난 온천.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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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플레잉 게임의 임무를 수행하듯 밧줄을 하나둘 타고 내려오다 보면 바닥을 타고 흐르는 온천수가 보인다. 첫 번째, 두 번째 만나는 온천탕은 대부분 말라 있다. 세 번째 탕부터 물이 제법 가득 차 있다. 
   
나는 네 번째 탕에서 몸을 녹이며 에너지바로 허기를 채웠다. 실내 수영장 크기의 온천탕에 작은 온천 폭포가 콸콸 흘렀다. 수온은 30도에서 41도로 다양하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곳은 없다.
 
트레일에서 만난 네번째 온천. 작은 온천 폭포가 흐른다.
 트레일에서 만난 네번째 온천. 작은 온천 폭포가 흐른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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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미터쯤 더 걸어 내려가면 콜로라도강이 나온다. 왼쪽 멀리 보이는 고가다리는 2010년 완공된 '마이크 오캘라핸-팻 틸먼 기념 다리(Mike O'Callaghan–Pat Tillman Memorial Bridge)'다. 후버댐 우회 도로로 저 다리 위에서 후버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콜로라도강을 따라 카야커들이 노를 저어 내려간다. 이 지역은 연방정부가 2014년 미 남서부 최초로 선정한 국가물길(National Water Trail)이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물길로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후버댐 인근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카약을 탈 수 있다. 다양한 코스가 있으며 4~5시간 운행에 성인 기준 약 200달러 이상이 든다.
 
콜로라도강에서 관광객들이 카약을 타고 있다. 멀리 후버댐 우회도로인 마이크 오캘라핸-팻 틸먼 기념다리가 보인다.
 콜로라도강에서 관광객들이 카약을 타고 있다. 멀리 후버댐 우회도로인 마이크 오캘라핸-팻 틸먼 기념다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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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온천, #라스베이거스, #골드스트라이크 온천, #골드스트라이크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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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LA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 폭력 생존자를 돕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기방송에서 기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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