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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 말, 몸짓을 섞어가며 구연하는 국악이다. 광대 집단에 의해 시작된 판소리는 소리꾼과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판소리 전승 지역은 전라도·충청도 서부와 경기도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이르므로, 판소리는 지역적 특성과 전승 계보에 따른 파가 생겼다. 전라도 동북 지역에 해당되는 운봉·구례·순창·흥덕 등지 소리제를 동편제라 하고, 전라도 서남 지역인 보성·광주·나주 등지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를 서편제라 불렀다. 한편, 경기도·충청도의 소리제를 중고제라 한다.
 
동편제 시조 송흥록 생가 앞에는 이곳이 "동편제 마을"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동편제 시조 송흥록 생가 앞에는 이곳이 "동편제 마을"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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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남원향토사학자 김용근씨와 함께 동편제 시조인 송흥록 생가를 방문했다. 동편제는 조선 순조 때 명창 송흥록의 소리제에서 시작해 송광록·박만순·송우룡·송만갑·유성준으로 계보가 이뤄졌고, 1934년 <홍보가><춘향가><심청가> 등을 취입해 큰 성공을 거둔 박초월 명창에게로 이어진다.

송흥록은 1780년경 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 마을에서 태어났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질을 가지고 태어나 소리는 극히 청미하며, 성량이 풍부하였고 부친이 한두 번 선창하면 그대로 따라했다. 부친 송첨지는 초대 명창 권삼득의 수행고수였다.

12살 때 백운산으로 들어가 소리 공부에 전념하고 밤이면 글을 배우며 입산한 지 5년 만에 소리를 터득하였다. 또한 소리를 정리하고 집대성하였으며 10년 만에 득음 대성하였다. 1859년(철종 10년) 봄, 의정부좌찬성 김병기의 부름을 받고 왕 앞에서 여러 차례 소리를 하였다. 이에 철종은 송흥록에게 정삼품인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하였다.

끈질긴 노력 끝에 숨어 있던 동편제 시조 발굴
 
동편제 시조 송흥록 생가 모습.
 동편제 시조 송흥록 생가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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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간 남원 인근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과 향토사를 연구한 김용근씨가 동편제 시조 송흥록 생가를 발굴해 낸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선팔도의 만석꾼들은 자기들만의 풍류단을 가졌어요. 부자들끼리 교류할 때 각자가 가진 집안의 우월한 문화공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운봉 만석꾼은 나라 세금인 조곡을 함열 웅포의 금강 나룻터로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거기서 송씨 집안의 북치는 고수를 운봉으로 오게 했고 그 이가 송첨지였습니다. 송첨지는 비전 마을에 살면서 이 지역 소리꾼 권삼득의 수행고수로 활동하면서 송흥록을 낳았고 그가 자라서 동편제의 시조가 된 것입니다."

운봉 만석꾼은 '운악정'이라는 풍류방을 만들고 그곳을 동편제 소리청으로 활용함으로써 수많은 명인 명창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 지역의 판소리 문화를 정착시켰다. 운봉에서 시작한 동편제는 소리꾼을 따라 구례, 곡성, 순창 같은 인근 고을로 퍼져 나갔다.

동편제 시조 송흥록 명창의 실체를 구전으로만 들었던 김용근씨는 본격적으로 동편제 명창 찾기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 8대 명창으로 판소리 명창이자 논리에 밝았다는 장재백 명창 무덤과 후손들이 그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내친김에 일제 강점기 시절 최고의 여류 명창 이화중선의 일대기와 삶이 저장된 기록물을 찾게 됐다. 이화중선의 실체는 호적에 있었지만 그가 거주했다는 열 한 곳에서 호적 찾는데 8년의 세월이 걸렸다. 남자가 호주로 기재된 호적의 색인부에 여자인 이화중선의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편제 명창들에 대한 뿌리 찾기에 나선 그를 가장 조바심 나게 한 건 동편제 시조 송흥록 명창의 뿌리를 찾는 것이었다. 어느 날 송흥록의 후손들이 수원 지역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은 그를 힘들게 했다. 매 주말이면 남원에서 수원행 기차를 타고 올라가 후손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동네를 탐문 답사했다. 마을이 개발되어 때로 아파트가 되기도 했다.

상가 틈새에 보이는 단독주택 대문간에 송씨의 문패가 보이면 초인종을 눌렀다.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고 육두문자가 섞인 욕설을 듣기고 하며 때론 수상한 사람으로 몰려 파출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초인종을 누른 지 86번째가 되던 날 드디어 동편제 시조 가왕 송흥록 명창의 후손을 만났다. 운봉 읍사무소에 근무할 때 송흥록 가계에 대해 조사했던 구전과 공적 자료이던 토지대장, 지적도 등기부등본, 농지대장과 송흥록 집안의 족보가 일치되던 날은 온통 날아갈 것만 같았다.

김용근씨의 끈질긴 노력으로 그동안 숨겨져 있던 송흥록에 대한 자료가 빛을 보자 집안 사람들이 남원시를 방문했고, 운봉 비전마을의 송흥록과 동생 송광록의 동상과 생가는 정체성을 찾게 됐다. 그의 끈기와 노력으로 되찾은 송흥록 생가는 이제 세계문화유산 판소리의 성지로 우뚝 섰다.
 
무려 86번의 노력 끝에 동편제 시조 송흥록의 뿌리를 찾은 남원향토사학자 김용근씨가 송흥록(왼쪽) 송광록(앉아있는 이)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했다.
 무려 86번의 노력 끝에 동편제 시조 송흥록의 뿌리를 찾은 남원향토사학자 김용근씨가 송흥록(왼쪽) 송광록(앉아있는 이)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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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동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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