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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연휴를 기점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기존 델타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종의 여파로 설 이후 하루 확진자가 2만 명을 넘어섰고 조만간 10만 명 이상 감염될 것이라는 예측이 공공연히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상당수 가정에서 설 차례를 지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도 설 차례 문화는 여전히 우리 전통으로서 살아 있고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덜 모이고 덜 차리는 등으로 많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명절 차례 문화와 더불어 돌아가신 조상님을 기리는 제사, 제례 문화도 오래된 우리의 전통이다. 조선 시대 각 가정의 기제사는 언제부터 지냈을까? 제사가 일반 서민에게까지 보급된 것은 조선 후기로 알려져 있다.

즉, 18세기 후반 영·정조 때부터 일반 서민들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이때 제례 문화와 함께 족보 문화, 장남 위주의 상속 문화 등도 조선 초기 양반가에서 행해지던 관습이 점차 서민층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럼 우리가 익히 들어온 4대 봉사도 그럴까? 조선 초기인 성종 대에 제정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면 '6급 이상의 관리는 3대 봉사, 7급 이하는 2대 봉사, 일반 서민은 부모 제사만 지내도록' 명시하고 있다.

4대 봉사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최초로 명시되면서 조선 중후기 성리학에 심화한 일부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확대 보급된 관행이라고 한다. 4대 봉사는 부모와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로 8명이지만 작은할머니가 계시면 10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즉 일 년 제사가 최소 8번에서 10번 이상이라는 얘기다.

조선 시대 후손 대부분이 한 마을과 그 이웃 마을에서 거주하면서 조상을 기리던 시대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지금은 4대 봉사를 제대로 지키기는 불가능하다. 연간 자주 돌아오는 제사로 이해 가족 간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제례 전문가인 한국국학진흥원 김미영 박사는 최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생전에 면식이 있는 부모와 조부모로 축소해서 제사를 모시는 게 바람직하다. 뵌 적도 없는 증조부모와 고조부모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는 현대 사회 풍조와는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내도 일 년에 4번 제례를 거행하고, 설과 추석 명절을 합하면 6번을 봉행해야 하는데 서울, 대구, 부산 등지로 흩어져 있는 후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제례를 올린다는 건 사실상 힘들다.

퇴계 이황의 형 온계 이해 선생의 종가인 안동시 도산면 온계 종택이 현재 봉행하고 있는 제례 문화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제례 문화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온계 종택은 지난 2012년부터 4대 봉사를 한날한시로 정해 거행하고 있다.

온계 선생 17대 종손인 73살 이목씨는 2012년부터 4대 봉사하던 기제사를 5월 셋째 주 토요일 하루에 후손들이 모여 합동으로 지낸다. 온계 선생에 대한 불천위 제례도 9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올린다고 한다.

종손 이목씨는 기자와 전화에서 "4대 봉사를 5월로 정한 것은 어버이날이 든 가정의 달을 맞아 후손들이 부모님을 뵙기 위해 하루쯤은 고향을 방문하기 때문이고 토요일로 정함은 휴일이라 더욱더 많은 후손이 모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4대가 넘어도 제사를 없애지 않고 봉행한다는 불천위 제례도 더 많은 후손이 모이자는 취지에서 음력도 아닌 양력 특정한 날에 모이기로 하면서 집안 대소사가 더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정신문화 수도로 자부하는 안동에서도 제례 문화가 점차 달라지고 있다. 기제사를 이른바 '합사'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할아버지 제사와 할머니 제사, 아버지와 어머니 제사를 한 날로 정해 한 번만 지낸다든지, 아니면 온계 종택처럼 특정한 날이 아니더라도 설날이나 추석 명절 차례에 합사해서 지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여러 제사를 합사만 해도 연간 봉행하는 기제사의 횟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기제사 때 제물의 가짓수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올리는 제사음식은 과연 우리의 전통일까?

"전문가들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주자가례>를 보면 제사 때 올리는 진설 음식에는 총 19가지 제물이 나온다. '과일 6종류와 나물 2종, 포 1종, 젓갈 1종, 어육 각 3종, 면 1종, 떡 1종, 밥 1종, 국 1종, 간장, 초醋 등'이다.
 
주자가례 제례 진설도
▲ 주자가례 "제례 진설도" 주자가례 제례 진설도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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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각 가정의 제사음식은 여기에다 다양한 과일이나 생고기, 전, 꼬치 등등 30가지 안팎으로 늘어난다. 물론 조상님을 모신다는 의미로 다양한 음식을 올리는 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많이 차리면 조상님이 기뻐하실까?

많은 음식을 차려 제사에 찾아온 친지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체면과 허례 의식 때문에 조선 시대는 물론 현대로 오면서 음식 가지 수가 크게 늘었다는 게 제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진짜 전통사회에서는 제사음식의 가지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국과 밥, 간장 등을 합해 19가지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제사음식을 잘 차려놓으면 제례 의식은 남성만이 참여하고 즐기는 향유물로 전락하는 것도 문제다.

여성들이 만들고 잘 차려놓은 제사상을 앞에 놓고 남성들은 여성들을 배제한 채 절을 하고 음복을 한다. 그리고 음복이 끝나면 여성들은 설거지까지 도맡고 있는데 이런 현재의 제사 문화가 전통에 맞을까?

조선 시대 예법 지침서였던 <주자가례>를 보면 "조상 제사를 지낼 때 제물 진설을 가장과 주부가 함께 한다. 특히 술을 올릴 때 첫 잔(초헌관)은 가장이 올리고, 두 번째 잔(아헌관)은 주부가 올린다"라고 돼 있다.

조상을 모신다는 제례 문화가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가 음식 만들기부터 음식 차리기, 설거지까지 대부분 여성만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남성은 제례를 향유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노동력 착취이다.

여성들에게 아헌관 역할을 부여하고 제물 장만부터 진설과 설거지까지 가족 남성들이 함께 공유한다면 조상제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유교 사상의 잔재물로 여겨지는 제례 문화가 앞으로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조상을 기리기 위한 제례 문화는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외국에도 '추도식' 등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 등을 추모하는 의식이 남아있고 그 날이 아니더라도 특정한 날 가족 간 모임이 있는 만큼 제례 문화는 유교 의식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시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제사음식을 간소화하고, 부모님이나 조부모가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차리고 제례 날짜도 후손들이 편한 날과 시간으로 조정하고, 장소도 장손 가정만이 아닌 다양한 곳으로 확대되는 등 현대화 한다면 이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제사는 서양의 추도식으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이지만 이대로는 제례 문화가 전승되기는커녕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설 연휴였던 지난 1월 30일 안동 MBC에서 방영한 '食자해지, 밥 묵니껴?' 웹드라마는 우리의 제례 문화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현실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종손과 결혼한 후, 집안 살림과 일 년에 12번의 제사 등을 말없이 도맡아온 종부가 '이번이 마지막 제사'라고 선언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게 우리의 제례 문화이다.
 
 ‘食자해지, 밥 묵니껴?(안동MBC 방영)
▲ ‘食자해지, 밥 묵니껴?  ‘食자해지, 밥 묵니껴?(안동MBC 방영)
ⓒ 안동MBC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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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 문화는 예부터 '가가호호家家戶戶 다르다'고 했고, 퇴계 선생도 "시류를 따르라"라는 교훈을 남겼다. 남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우리 가정만의 제례 문화'를 만들어 실천하는 게 바람직하다.

덧붙이는 글 | 안동MBC '제례문화 변해야 한다' 선행 보도 있었음,(2020~2021년)


태그:#제례 문화 , #주자가례, #제물, #온계종택, #식자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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