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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돌봄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현장을 바꿨다. 내 삶의 모든 부분이, 그리고 내 자신을 떳떳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산 적은 없지만 돌봄노동자들을 위해서 목소리 낼 때는 앞장설 수 있기에 학위, 직업적 장래, 퇴직금까지 포기하고 노동조합에 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공공분야, 운수산업, 사회서비스 등 25만 명이 가입해있는 대규모 노동조합이다보니 한국사회를 유지하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으나 그 사이 괴롭힘, 해고, 산업재해, 차별(임금, 인종차별까지) 등 다양한 문제들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 이러한 문제들을 노동자들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인데 자본과 권력에 기울어진 한국사회에서 이런 문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복지관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노조탄압을 경험해봤지만 이제는 현장 두루두루 발생하는 노조탄압과 일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회 부조리에 맞서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몸과 마음을, 내 자신을 돌봐야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평범한 삶을 위해 선택한 취미
 
아버지는 꽃을 다루는 일을 오랫동안 하셨다. 꽃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집에 화분을 두고 식물을 키우셨고 나는 그걸 늘 무심하게 지나치곤 했다.

사회복지현장에 있을 때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자라나는 생명을 별로 볼 일이 없는 어르신들께 식물을 나누는 그런 프로그램, 하지만 내가 식물에게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이 죽고, 해고되고,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터 속에서 뭔가 어딘가에 마음을 둬야 했다. 생각해보라. 누군가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탄압하고 왜곡하고 그런 일터의 노동자들과 함께 권력에 맞서는 일들은 매우 힘든 일이다. 무언가에 마음을 두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내 마음 속에서 솟구칠 때 아버지께서 내 생일을 맞이하여 선물로 주신 개운죽이 집 한 켠에서 무던히 자라는 게 보였다.
  
집에 있는 식물사진 중 일부. 이 중 개운죽이 가장 오래 되었다. 개운죽 뒤로 레옹이 키웠던 아글라오네마가 있다. 겨울철이 되어 일부는 노조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다.
 집에 있는 식물사진 중 일부. 이 중 개운죽이 가장 오래 되었다. 개운죽 뒤로 레옹이 키웠던 아글라오네마가 있다. 겨울철이 되어 일부는 노조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다.
ⓒ 김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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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죽은 작은 대나무처럼 생긴 식물인데 대부분의 환경에서 잘 생존한다. 물만 채워줘도 푸른 잎들을 잘 내는 개운죽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이후로 틈이 나면 중고거래, 양재 꽃시장 등을 통해 다양한 식물들을 구했다. 해충의 위험 및 관리의 용이함 등을 고려해서 수경재배를 택했는데 뿌리를 다듬는 수고도 가끔씩 필요했다. 뿌리 하나 내리고 잎 하나 올리는 모습들이 하루하루가 신기했다.
 
모든 식물들이 모두 소중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식물 종류를 꼽자면 아글라오네마를 꼽고 싶다. 아글라오네마를 알게 된 건 영화 레옹을 보면서부터다. 레옹과 마틸다 일행이 들고 다닌 아글라오네마는 두 사람의 삶을 상징하는 장치였다. 킬러에게 아글라오네마 화분으로 상징되는 '일상'이라는 것이 노조활동가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래서 레옹이 키우던 아글라오네마를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영화 <레옹>의 한 장면. 레옹에게 아글라오네마 화분은 '일상'이었다.
 영화 <레옹>의 한 장면. 레옹에게 아글라오네마 화분은 "일상"이었다.
ⓒ 고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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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감명을 받아 영화에 나온 아글라오네마 외에도 다양한 아글라오네마 종들을 구했고 회사와 집에 몇 개씩 두고 키우고 있다. 이외에도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거나 영양제를 주거나 과산화수소수를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겨울철 식물이 냉해를 입지 않도록 화분을 포장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면서 초보 식물집사가 되어갔다.
 
겨울철 실내온도가 급격하게 낮아지면 냉해를 입기에 요새는 전기장판 머리맡에 저온에 조금 더 약한 열대식물들을 두고 잔다.
 
죽는 식물과 죽는 노동자… 구조가 문제다
 
겨울철이 되다 보니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한 몇 식물들이 금방 유명을 달리했다. 깜빡하고 물을 못 줘서 말라버리거나 추운 환경 속에서 냉해를 입고 죽는 식물들이 있었다.
 
결국 원인은 식물집사인 내 탓이다. 식물들은 죄가 없다. 그저 물이 필요하고, 따뜻한 온도가 필요할 뿐이었다. 식물은 물, 바람, 햇빛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식물이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탓이고 관리를 소홀히 했던 내 탓이다.
 
노동자들도 그렇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은 노동자들이 죽는 일터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켜내는데 있다.
 
죽는 식물이 죄가 없듯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도 죄가 없다. 나는 식물이 한번 말라죽은 경험을 한 뒤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모든 화분을 점검하고, 명절을 앞두고는 물을 충분히 주고 간다. 온습도 조절을 위해 온습도계도 사서 설치했다. 물이 마르지 않게 하고 온습도계를 체크하면서 대책을 마련하니 그 이후부터 유명(?)을 달리하는 식물은 없어졌다.
 
일터의 노동자들의 안전도 마찬가지다 필수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시 엄한 벌을 준다면 되지 않을까? 내가 온습도계를 구입하고 영양제나 과산화수소를 주는 법을 배운 것은 식물들이 보다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은 생명과 직결된다. 어떤 비용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과 바꿀 수 없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2022년을 위해
 
2022년 설 명절도 지났고 벌써 1달이 훌쩍 넘었다. 올해 나의 작은 소망은 노동자와 식물, 그리고 내 스스로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 식물들이 사계절 동안 잘 살아남아 건강히 자랐으면 좋겠고,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차별당하고, 무엇보다 죽지 않기를 원한다. 그리고 식물과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나 역시도 잘 지내길 원한다.
 
한때 평범한 노동자였지만 노동조합에 오게 되었고, 식물을 키우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식물을 통해 노동자들과 일터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책상 위에 작은 화원. 식물에게 겨울철은 고된 계절이지만 꾿꾿하게 살아남아 봄을 기다리고 있다.
 책상 위에 작은 화원. 식물에게 겨울철은 고된 계절이지만 꾿꾿하게 살아남아 봄을 기다리고 있다.
ⓒ 김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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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수경식물을 보면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흙 속은 아니지만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되게 살아가는 갖가지 식물들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노동자들도 일터에서 잘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해 죽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 자신의 노동을 존중받으며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식물을 키우는 초보 식물집사면서도 노동자들과 함께 일터를 바꿔나가는 나 역시도 몸과 마음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식물도 노동자들과도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 테니까.

태그:#식물,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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