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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울기만 하는 아이들 덕분에 진땀을 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눈물이 터지기 시작하면 입이 열리지 않는 아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어찌 된 일인지 요지부동으로 입도 달싹거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눈동자엔 두려움과 슬픔이 배어있는데 나는 또 어찌 된 일인지 걱정보단 답답함이 더 크게 밀려온다. 아... 아직 내 마음이 아이의 눈물을 받아 줄 정도로 넓어지지 못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말없이 울기만 하는 아이. 걱정보다 답답함이 더 크게 밀려온다.
 말없이 울기만 하는 아이. 걱정보다 답답함이 더 크게 밀려온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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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무슨 상황이라도 펼쳐져 있으면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추리를 시작해야 한다. 사건 해결엔 당사자와 목격자의 진술 그리고 정황증거가 필수인데 이 모든 것이 모호한 상황에선 당사자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까딱하면 미제사건이 될 일이 수두룩하다.

길고긴 기다림 끝에 알게 된 이유라고 해봐야 방에 볼 일이 있는데 불이 꺼져 있어 무서웠다거나 숙제를 하다 모르는 문제를 만나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정도다. 도움을 청하면 바로 해결됐을 일. 이런 경우, 대부분의 의문은 의아함으로 바뀌고 뿌듯함 보다는 허탈함이 밀려온다. 대체! 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말 못할 슬픔을 해소해주고픈 나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코딩 세계의 스무고개

할 말을 '읽게' 만드는 자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프로그램이다. 잘 돌아가던 프로그램이 좀 이상하다 싶더니 어느 순간 문제를 일으킨다. 좀처럼 원인이 짐작되지 않는다. 울먹이고 있는 아이를 눈앞에 둔 것 같다. 평소 손 아파 낳은 자식이라며 애지중지해서인지 말 못하는 것도 똑 닮았다.

컴파일 단계(자연어를 0과 1의 기계어로 변환하는 단계)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원인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 역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웅웅대며 울고 있을 뿐이다.
  
잘 돌아가던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키면 마치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 있는 것 같다.
▲ 프로그램 에러 잘 돌아가던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키면 마치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 있는 것 같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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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printf 구문을 넣어 속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름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 필요한 정보를 화면에 출력하기 위해 사용하는 코딩 구문이다. 흔히 출력문이라고 하는데, 이를 이용해 스무고개를 넘듯 문제가 예상되는 지점을 하나씩 점검한다.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중간 중간에 "여기가 문제니?", "저기는 괜찮아?" 하고 물어보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점검은 바뀌었어야 할 값이 잘 변했는지, 그대로여야 할 값이 그대로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화면에 출력되는 값이 예상과 다르면 문제가 있다고 짐작하며 조사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프로그램을 잘 알고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구문을 코드에 삽입해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일반적인 출력문 이 구문을 코드에 삽입해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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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이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찾아 헤매곤 한다. 그래서 이런 분석을 위해선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가 핵심이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프로그램을 조금 더 알게 된다.

아이와의 스무고개

열리지 않는 아이의 입 대신, 보일 듯 말 듯한 고개 짓에만 의지해 눈물지을 법한 일을 하나씩 짚어 간다. 아이와의 스무고개가 시작됐다. 한 고개 한 고개 넘어가며 그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아 간다.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을 수정한다. 갖가지 사건들을 어렵사리 해결하다 다섯 번째 고개에서 원인을 찾은 날, 이 아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조금은 자신하게 됐다.

"속마음을 드러내라!"

printf 같은 능력이 뛰어났으면 좋겠다. 누군간 이런 능력에 무척 뛰어나다. 자연스럽게 속마음을 읽어 내거나 드러내게 만든다. 살살 구슬려 도통 알 수 없던 속마음을 알아채고 걱정을 집어낸다. 적시 적소에 print문을 속속 넣어주는 것만 같다.

아마 아이가 저도 확신할 수 없는 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데에는 나의 printf 능력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따뜻한 말투로 조금 더 세심하게 스무고개를 넘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여유가 없는 나는 아직 거칠고 투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자신의 속마음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데 남의 속이야 오죽하겠나 싶다.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 이런 처지에 다른 이의 마음을 쉽게 헤아리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의무감과 책임감에 취한 과욕인 것도 같다.

자신과의 스무고개

printf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사용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지 적만 생각하며 내가 어떤지 돌아보지 않을 땐, 필시 쉽지 않은 승부가 될 테다.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된 날, 스무고개의 두 번째 고개에서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던 것은 어찌 보면 정해진 패배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자신도 알 수 없는 마음을 printf 하는 데는 글만한 것이 없다. 끼적이다 보면 어느새 속이 딸려 나온다. 나도 몰랐던, 짐짓 짐작만 했던 혹은 애써 모른 척 했던 불안, 걱정, 두려움 같은 문제가 눈앞에 놓인다. 해결된 것은 없지만 속에 있던 문제를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속이 편해진다. 그리고 생각보다 작고 가벼운 문제들이 어느새 눈 녹듯 저 혼자 사라지기도 한다.

적다 보면 별것 아닌 일, 글로 내려놓고 골똘히 들여다보면 이걸 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는 것투성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이걸 문제라고 생각해서 문제구나...' 그렇게 진짜 문제를 확인한다. 문제가 사라졌다.

글이 아닌 어떤 방법이라도 괜찮을 테다. 혹자는 그림을 그리고 혹자는 명상을 할 수도 있다. 잘 모르는 프로그램의 문제를 찾기 위해 printf를 남발하듯, 뭐가 됐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도움이 된다.

힘이 들 때나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의 이런 노력은 해결법을 찾든 찾지 못하든 그 과정에서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더 나아가 '나'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다음엔 분명 조금 더 쉽게 문제를 헤아리고 해결방안을 찾아 조금은 더 빨리 편안해질 거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네 아이들에게 printf를 찍어 넣는다. "쉬 마려워?", "무서워?", "배 아파?", "배고파?" 아... 힘들다. 그래도 버틸 만한 것은 매일 새벽 적어나가는 이 글들이 printf가 되어 "이게 행복일 수도?", "아빠 손이 필요할 때가 좋은 거겠지?", "애들이 다 그렇지..." 하는, 저 바닥에 가라앉았던 마음을 드러내준 덕분이다. 끽해야 5년. 아이들이 아빠에게 의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코딩하랬더니철학하고앉았네, #코딩의세계, #우는아이, #내속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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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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