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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삼선동의 골목.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성북구 삼선동의 골목.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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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 어반스케쳐스의 8개 선언문 중 첫 번째를 소개했다(관련 기사 :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은 어반스케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는 실내 혹은 실외에서, 직접적 관찰을 통해 본것을 현장에서 그린다' 였다. 이번에는 그 다음 조문을 알아볼까 한다.
 
2. 우리의 드로잉은 우리의 주변, 즉 우리가 사는 장소와 우리가 여행하는 곳에 대한 이야기다.

3. 우리의 드로잉은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다.

4. 우리가 본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요즘 <오마이뉴스>에 어반스케쳐스에 관한 연재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기사 거리가 있는 이름난 곳이나 특색 있는 곳을 그리게 된다. 하지만 원래 어반스케치는 꼭 그런 곳만 그리는 것이 아니고, 그냥 자신의 주변을 그리면 된다. 자기 집 창밖을 보면서, 카페에서, 직장에서 아무 곳이나 그리면 된다.

누구나 자기만의 역사가 있다. 남에게 평범해 보이는 장소가 자신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어반스케치는 그런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이다.

원래 서양의 그림은 인물화가 중심이다. 성경과 신화에 나오는 인물을 그린다. 유명한 만종을 그린 밀레는 현실에 있는 소박한 사람들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예전에는 그림이란 현실을 그리는것이 아니었다. 동양화는 산수화가 중심인데, 현실에 있는 산과 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상화된 관념을 그리는 것이다.

지금도 그림이라고 하면 우리가 사는 현실과 멀리 떨어진 그 무엇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어반스케쳐스는 멀리 가 있는 우리의 시선을 주변으로 돌리라고 한다. 복잡한 상상력도 필요 없고, 어슴프레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다. 그냥 주변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회화가 장편 극영화라면 어반스케치는 다큐멘터리다. 사진과 결별한 회화는 작가의 상상력과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현대 미술은 그것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미술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작가들은 시각 예술의 최첨단에 서 있는 전위부대다.

그들에게 평범함과 진부함은 독이다. 시각예술의 중위(中位) 부대 쯤에 속하는 어반스케쳐들이 그들과 같이 생각할 수도 없고 그들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반스케쳐들은 삶에 더 치중한다. 다큐멘터리 정신으로 기록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를 그렸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를 그렸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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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삼선교 골목길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골목에 내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살던 집이 있다. 지금은 그 집은 없어졌고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네도 많은데 그래도 이 골목은 예전 집들이 좀 남아 있다. 이 골목에서 뛰놀던 때가 엊그저께 같다.

어느날 지금은 작고하신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이 골목에 이사를 왔다. 우리 골목이 다른 골목에 비해서 가장 먼저 아스팔트 포장이 됐는데 그것이 그의 덕이라는 말이 돌았다. 

내가 초등학생 때 중학생 형들이 이 골목에 많이 살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경동고등학교, 삼선초등학교, 한성여고까지는 내가 노는 구역이었는데, 한성여고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돌산이 있었다. 그 돌산이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 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간이 의자에 앉아 스케치를 시작했다. 이 골목에서 이런 의자를 놓고 그림을 그리는 건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다. 스케치만 후딱하고 채색은 집에 가서 해야겠다.

내가 살던 집은 사도(私道)가 있는 집이라 대문만 보이고 집은 보이지 않는다. 전선 줄이 너무 많이 보인다. 새로 건축하는 아파트 단지나 주택 단지는 전선 줄이 지하로 들어가 있는데, 여기는 옛날 동네라 기존 전기선에다 인터넷 선, 통신 선 등등 각종 선이 증설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제 낮에는 춥지 않다. 이렇게 봄이 오는가 보다. 골목 끝에 통창이 있는 작은 카페가 생겼다.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다.

태그:#어반스케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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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스케쳐 <오늘도 그리러 갑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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