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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실업상태에 놓일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과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낮은 임금, 사각지대가 넘쳐나는 불완전한 사회안전망,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인 노동관계법 적용 차별.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이주민·여성·청년·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노동자가 놓인 노동현실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취약계층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이 취약노동 문제를 외면하면서 취약노동자를 위한 노동 공약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대선 후보자들에게 취약노동자들을 위한 공약 마련을 요구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맞아 2021년 12월 19일 보신각 광장에서 기념행사를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맞아 2021년 12월 19일 보신각 광장에서 기념행사를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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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기준은 무엇인가. 경제 수치만 높으면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빈곤과 불평등, 인권보장 체계, 사회복지 수준 등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필자는 가장 취약한 계층의 권리, 그중에서도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에 대한 법·제도적 사회·문화적 처우 수준이 리트머스 시험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장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 주요 정당 가운데 이주노동자나 이주민 정책공약을 내놓은 데는 정의당밖에 없다. 집권당과 제1야당에서는 이주민 관련한 어떤 공약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실상 없는 사람 취급, 유령 취급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무정책 무공약을 넘어 반이주민, 반중 혐오 정서를 선동하거나 이에 올라타서 표를 끌어모으려는 저열한 정치행태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선진국은 개뿔 기본도 안되어 있다는 한탄이 절로 날 지경이다.
  
아무리 역대급 네거티브 대선 경쟁이라고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제1야당 후보가 '건강보험에 밥숟가락 얹는' 이주민, 특히 중국 출신 이주민이 피부양자로서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혐오발언을 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부정 혹은 외면하고 차별받는 집단을 되려 혜택받는 집단으로 바꿔치기해서 대중의 반감을 조장하고 부정적 감정을 표로 동원하려는 나쁜 정치, 전형적인 '약자에게 책임 뒤집어씌우기'다.

즉 ▲ 건강보험에 외국인 가입자의 보험재정은 5천억 이상 흑자 ▲ 피부양자 등록은 내국인의 절반 이하 ▲ 농어촌 사업자등록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이주노동자는 직장건보 가입이 안 되는 것 ▲ 이들은 지역가입 해야 하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 받으며 13만 원 넘는 '평균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것 ▲ 지역가입자는 '세대 합가'가 잘 안 되어 한가족이 여러 장의 지역보험료 고지서를 받는 것 ▲ 한 달이라도 보험료 체납하면 내국인과 달리 체납 다 낼 때까지 보험적용 정지 ▲ 체납 시 체류자격에 불이익 부과 ▲ 저임금 장시간 휴일 없는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움 등 차별 상황을 외면한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이런 차별적 제도를 민주당 정부가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2019년 7월부터 직장가입자가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입국 6개월 이후 지역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끔 했고 이후 위와 같은 문제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측이 국민의힘에 대해 혐오 조장이라고 비판하려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제도가 어떤 차별을 낳고 있는지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코로나 시기에 혐오범죄가 급증했고 외국인 대상 폭력이 그 가운데 40퍼센트가 넘는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여야 정치권의 이런 중국 출신자 및 이주민 때리기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요구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앞 농성에 참여하여 2021년 12월 1일 하루 농성을 진행한 이주인권단체 활동가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앞 농성에 참여하여 2021년 12월 1일 하루 농성을 진행한 이주인권단체 활동가들
ⓒ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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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가 한국사회에 들어와서 3D 업종에서 고된 노동을 하여 한국경제를 밑바닥에서 떠받치며 희생해 온 지 30년 넘었다. 이주노동자는 쓰다가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짧은 기간 쥐어짜내지고 쫓겨났고 새 노동자가 들어와서 그 자리를 채웠다. 이주노동자 목소리에 정치가 귀 기울인 적은 거의 없다.

그 사이 한국은 인구와 노동력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주민 인구가 5%에 달하는 이민사회가 되었다. 차별과 배제, 혐오와 폭력, 무권리의 수십 년 세월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운동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희망을 찾기 어려운 대선판이지만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요구를 제기해 본다.

첫째,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를 위해 우선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고,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짧게는 4년 10개월, 길게는 9년 8개월 노동하지만 사업장을 그만두고 옮길 자유가 없다. 이것은 같은 노동자로서 직업 선택의 자유, 평등권, 강제노동 금지에 어긋난다.

사업주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고 노동자 권리를 박탈하는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계약 갱신권 보장, 장기체류에 따른 영주자격 신청권 허용, 가족결합권 인정 등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둘째, 농축산어업 노동자의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 농축산어업에서는 근로기준법 63조로 인해 근로기준법의 휴게, 휴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농축산어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초장시간 휴일 없는 노동을 하고, 초과근로 수당도 적용되지 않아 착취가 심각하다. 근로기준법 63조를 근본적으로 개정하여 차별을 없애야 한다.

셋째, 이주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를 보장해야 한다.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임시시설, 작업장 부속시설 등 열악한 비주거용 임시가건물 기숙사를 금지해야 하고 사업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 지자체 등이 함께 공공기숙사를 각 지역별로 확대해야 하며 기존의 '이주노동자 숙식비 징수지침'을 폐지하고, 안전하고 인간다운 기숙사 가이드라인을 새로 제정해야 한다.

넷째, 임금체불 대책과 산재 대책을 마련하고, 건강보험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 코로나로 이주노동자 숫자는 줄었지만 임금체불 액수는 사상 최고가 되었고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 사망률은 여전히 내국인에 비해 몇 배나 높다. 건강보험 체납 시 불이익, 지역가입자들은 높은 보험료 문제 등 차별이 크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다섯째, 미등록 이주민 체류자격 부여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최근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서 체류자격을 인정하는 정책이 실시되었는데, 이러한 정책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도 확대해서 기본적 인권 보장을 해야 한다.

여섯째, 코로나 재난지원정책 차별과 배제를 중단해야 한다. 공적 마스크 구매 차별, 코로나 정보 다국어 제공 부실, 재난지원금 배제, 잠재적 바이러스 전파자 취급 등 이주민들이 코로나 시기에 더욱 인종차별에 노출되고 있다. 평등한 지원정책이 실시되어야 한다.

일곱째, 이주여성노동자 성차별, 성폭력 근절과 권리 보장이 시급하다. 이주민으로서 여성으로서 이중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안전한 숙소가 제공되어야 하고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장에 대한 정기적인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이 철저히 시행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취약노동, #이주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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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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