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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나는 하루에 한 개씩 '기사 정독하고 댓글 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하루에 한 개씩 "기사 정독하고 댓글 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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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신문 기사를 이런 식으로 보고 있는 나를 자각하고 뜨끔했다. 혹하는 제목의 기사를 클릭한다. 기사의 첫 문단을 읽는다(귀찮으면 첫 문장만 읽는다). 스크롤을 쭉 내려가며 기사의 중간 제목, 사진, 눈에 들어오는 단어나 문장만 본다. 마지막 문단을 읽는다(귀찮으면 건너뛴다). 좋아요, 화나요 개수를 본다. 댓글을 본다.

그렇다 보니 클릭한 기사는 많아도 나에게 남는 건 별로 없었다. 이럴 거면 왜 읽는 걸까? 이와 같은 피상적 읽기는 나의 문해력을 계속해서 떨어뜨릴 게 분명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책을 볼 때 양적 독서보다 질적 독서를 추구한다. 좀 적게 읽더라도 깊이 있게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밑줄을 긋거나 인덱스 테이프를 붙이고, 페이지 빈 곳이나 수첩에 내 생각이나 느낌을 적어 놓기도 한다. 그러면 책의 내용이 금방 휘발되지 않고 내 안에 좀 더 오래 남는다. 신문도 이렇게 읽어보면 어떨까?

대화하듯 댓글을 달았습니다 

나는 하루에 한 개씩 '기사 정독하고 댓글 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먼저 신문을 둘러보고 가장 끌리는 기사 하나를 고른다. 기사 전문을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는다. 읽은 후에는 기사에 대한 내 의견을 댓글로 남긴다. 지난 1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나는 서른 개 이상의 기사 댓글을 달았다.

댓글 쓰기는 문해력과 관련이 깊다. 내 생각을 댓글로 쓰려면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학교 현장에서 작년 한 해 동안 4학년 아이들과 매일 함께 책을 읽고 e학습터 게시판에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달아보는 활동을 했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의 문해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관련 기사 : 문해력 떨어지는 요즘 애들?... '댓글'만 써도 달라집니다).

그럼 댓글은 어떻게 쓸까?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은 300자까지 쓸 수 있도록 설정되어있다. 나는 매번 300자를 거의 꽉 채운 댓글을 달았다. 댓글에는 내 이름이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 나누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예의와 형식을 갖추어 썼다. 그렇다고 대단히 반듯한 글을 쓴 건 아니다. 기사를 읽고 인상적이었던 부분, 소감, 의견, 관련 경험 등을 자유롭게 말하듯 썼다.

수많은 기사 중 무엇을 읽으면 좋을까? 나는 주로 신문의 칼럼을 많이 읽었다. 서론, 본론, 결론의 구성을 갖춘 글을 읽는 것이 문해력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칼럼은 부드러운 어조로 시의성을 담아 쓴 글이라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 좋았고, 읽기에도 수월했다. 또한 특정 신문만 보지 않고 신문사 별로 골고루 보려고 노력했다.

아마 신문 기사 댓글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논리나 근거 없이 비난, 조롱, 인신공격 등의 글이 많은 게 사실이다. 나 또한 그동안 댓글란이 정글처럼 느껴져 선뜻 써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40대가 된 지금은 댓글을 본연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써서 내 목소리를 내 보고 싶은 용기와 의지가 생긴다. 어릴 적 내가 생각했던 40대는 성숙한 어른으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지식과 교양을 갖춘 나이였다. 현재 내 모습은 그것과 많이 달라 부끄럽고 당혹스럽지만 노력해나가고 싶다.

'읽는 인간'에 가까워진 시간 

기사 댓글 쓰기를 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나에게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평상시 긴 텍스트를 읽을 때 훑어보던 버릇이 전보다 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읽어내는 텍스트가 많아졌다. 기사 주제와 내용을 파악하고 댓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도 갈수록 짧아진다. 꾸준히 하다 보니 조금씩 문해력 근육이 생기는 듯하다. 문해력이 떨어져 고민인 성인과 초등 고학년 이상의 학생들에게 이 활동을 추천하고 싶다.

기사를 많이 읽진 않았더라도 깊이 읽은 기사는 확실히 내 것이 되어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박웅현(<책은 도끼다>의 저자)은 읽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 속에서 어떤 변화를 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문 기사를 읽고 쓴 댓글입니다.
 신문 기사를 읽고 쓴 댓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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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문제, 코로나 이후 추위와 배고픔에 더 취약해진 사람들, 평택 화재로 인한 소방관 순직,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등을 다룬 기사나 칼럼을 읽고 댓글을 썼다. 예전에는 이런 뉴스를 접하면 잠시 안타까워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댓글 쓰기를 하면서는 멈추어 생각해보고 기사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입장과 처지를 공감하고 헤아려보게 됐다. 개선이나 해결 방안은 없는지 관련 기사를 더 찾아보며 고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댓글을 쓰면 쓸수록 보이지 않았던 이웃의 아픔과 고통이 눈에 들어왔고 내가 속한 사회의 일들이 점점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였다.

기사가 내 생활 속으로 들어와 일상이 풍요로워지기도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모여 허허벌판을 문화 성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남양성모성지에 관한 기사를 읽고 댓글을 썼더니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 실제로 방문하게 됐다. 단순히 둘러보는 것을 넘어 그 장소의 의미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 이육사의 현존하는 유일한 서명이 확인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날에는 이육사의 시를 오랜만에 다시 읽고 시인의 뜨거운 마음을 느끼며 힘과 위로를 얻었다.
 
신문 기사를 읽고 쓴 댓글입니다.
 신문 기사를 읽고 쓴 댓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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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책에서 저자는 읽는 인간이란 스스로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 관심 갖고 그 가치와 의미를 나날이 갱신해나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사 정독하고 댓글 쓰기'가 나를 읽는 인간에 좀 더 가까워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정성껏 댓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나도 매번 미루고 미루다 잠들기 전에서야 쓸 때가 많다. 하지만 계속하고 싶다. 나를 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읽고 생각하며 네모난 댓글 칸을 채운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태그:#문해력, #신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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