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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마른 국수가락을 한 움큼씩 쥐고 끊어내듯이 자르면 자로 잰 듯 일정한 길이가 나온다. 30여년 동안 몸에 밴 감각이 그 비결이다.
 잘 마른 국수가락을 한 움큼씩 쥐고 끊어내듯이 자르면 자로 잰 듯 일정한 길이가 나온다. 30여년 동안 몸에 밴 감각이 그 비결이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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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국수를 '후루룩' 소리와 함께 빨아올리면 탄력있는 식감이 일품이다. 적당히 간이 된 면발은 육수와 어우러져 깊은 맛을 더한다. 일반 국수가락보다 쫄깃해 잘 붇지 않아 젓가락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변함없이 즐길 수 있다. 차진 면을 찬물에 헹궈 고추장 양념장을 넣어 비벼도 맛깔스럽다. '예산국수를 한 번 먹어본 사람은 다른 국수를 못 먹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충남 예산사람이라면 예산상설시장과 역전 근처에서 흰 국수면발을 대나무줄기에 나란히 걸어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손으로 직접 뽑아 햇살과 바람에 말리는 과정이다. 예산읍내 국수가게는 모두 6곳, 지금은 매연과 미세먼지 때문에 대부분 실내에서 건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예산국수의 시작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30여 년 전 상설시장에 '예산전통국수'를 차린 김성칠(71) 대표의 말이다.

"부모님이 나 태어나기 전부터 방앗간하며 국수가게를 같이 했슈. 그 당시에 파는 집이 없어 시작했던 것 같아유. 그게 '쌍송국수'예유. 누님허고 형님허고 같이 일을 배웠쥬. 시장에서 삶아 팔던 국수를 다 우리집에서 댔어유. 장날만 되면 리어카(손수레)에다 국수를 가득 싣고 영업집마다 갖다줬슈. 그때는 장이 컸어유. 직원을 여럿 두고 할 만큼 장사가 잘 됐쥬. 쌍송국수는 형님이 맡았고 누님은 '버들국수'를 차렸어유. 나는 여기서 다른 가게를 하다 국숫집을 냈구유."

쌍송국수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성산씨 아들 민균씨가 대를 이었고, 버들국수는 김영선 여사의 사촌동생 성근씨가 운영하다 아들 명국씨에게 물려줬다. 김 대표 아들 동환씨 부부도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예산국수는 상설시장과 역사를 같이 한다. '예산읍지' 등에 따르면 1926년 개장한 예산장(상설시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예산지역은 교통이 편리하고 너른 농토에서 난 농산물이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충남 내륙지역과 인천·서울에서 오는 물자가 만나는 곳이어서 일찍부터 장이 발달했다.

각지에서 모여든 보부상과 직접 키운 작물을 내다 팔러 온 농민들이 한 끼를 해결하던 음식 가운데 하나가 국수로, 당시에는 우시장 근처 도축장에서 뼈와 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어 고기육수를 내고 파와 고추를 썰어 넣어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고 한다. 시대가 변화하며 깔끔한 국물을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상설시장 맞은편 국숫집들은 멸치를 우린 육수에 국수를 말아 애호박과 당근, 계란지단 등 고명을 올린다.
 
갓 뽑아 대나무줄기에 건 면발이 나란히 걸려 있다.
 갓 뽑아 대나무줄기에 건 면발이 나란히 걸려 있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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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칠(오른쪽) 대표와 아내 정연순(67)씨가 국수 뽑는 작업에 한창이다. 30년 넘게 사용한 기계가 함께 전통을 잇고 있다.
 김성칠(오른쪽) 대표와 아내 정연순(67)씨가 국수 뽑는 작업에 한창이다. 30년 넘게 사용한 기계가 함께 전통을 잇고 있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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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 말을 빌리면 작업은 '반은 기계, 반은 손'으로 한다. 옛날에는 손으로 직접 돌려 면을 뽑는 국수틀을 사용했지만, 모터를 달며 자동화가 이뤄졌다. 일손을 덜었다고는 하나 반죽을 준비하는 것부터 건조, 포장 등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국수에 들어가는 재료는 밀가루와 소금, 물, 전분이다. 날씨에 따라 들어가는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반죽할 때 배합 비율을 잘 맞추는 게 관건이란다. 예산국수의 가장 큰 특징인 쫄깃함을 살리는 비결은 롤러로 납작하게 눌러 뺀 반죽을 겹친 상태로 한 번 더 기계에 넣어 누르는 것이다. 반죽을 치댈수록 탄력이 더해지는 원리다. 세 번 이상 빼면 면발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두 번이 적당하단다. 

흰 광목천 같은 반죽이 썰려 나오면 일정한 길이에 맞춰 손가락 두께 정도 되는 대나무줄기를 걸고 서로 달라붙지 않을 정도로 굳혔다가, 실내에서 하루 동안 숙성시킨 뒤 꺼내 건조한다. 대형 국수공장은 열을 가해 짧은 시간 안에 말려 상대적으로 푸석푸석한 감이 있지만, 예산국수는 숙성을 거쳐 바람으로 자연건조하기 때문에 더 차지다고 한다. 습기가 많은 여름이나 추운 겨울은 잘 마르지 않아 봄과 가을이 국수를 만들기 좋은 계절이다.

건조를 마친 면은 손으로 뚝뚝 잘라 무게를 잰 다음 아무 무늬가 없는 투박한 갱지로 포장한다. 화려한 광고를 하지 않아도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온다고 하니 그 명성을 알 만하다. 서울과 대전, 아산 등에는 '예산국수'를 내걸고 영업하는 식당이 있을 정도다.
 
멸치육수에 고명을 올린 예산국수.
 멸치육수에 고명을 올린 예산국수.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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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야할 과제는 밀가루다. "40년 전까지는 우리밀로 했지만 지금은 안 돼유. 양이 국수할 만큼 안 나와. 우리밀로 하는 게 맛은 더 좋아유". 김 대표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국내 밀 자급률은 1%도 채 되지 않아, 수입밀보다 수 배는 더 비싼 우리밀을 사용해 단가를 맞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예산장터 삼국축제 대표콘텐츠이기도 한 예산국수의 지역성을 살리고 품질을 높일 수 있으려면, 군행정이 나서 우리밀 재배단지를 조성한 덕산농협과 연계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수는 우리네 삶 속에 친숙하게 녹아있는 음식이다. 일이 많아 부지깽이 손도 빌린다는 농번기에는 금방 삶아 새참으로 후루룩 들이켜고, 겨울엔 따뜻한 아랫목에서 잘 익은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잔치국수'라는 이름처럼 경사가 있는 날 함께한 것도 바로 국수다.

오늘 저녁,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쫄깃한 예산국수와 함께 추억을 소환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예산국수, #국수, #국내밀,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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