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0일 경기 양주시의 삼표산업 석재 채취장 내 토사 붕괴 현장에서 관계 당국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2022.1.30 [소방청 제공]
▲ 양주 채석장 실종자 수색 작업 30일 경기 양주시의 삼표산업 석재 채취장 내 토사 붕괴 현장에서 관계 당국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2022.1.30 [소방청 제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자마자 이틀 뒤인 1월 29일 경기도 양주의 삼표산업 채석장이 붕괴해 작업자 3명이 매몰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며칠 뒤인 2월 8일엔 경기 성남시 판교 건물 신축 공사 현장에서 승강기 설치 작업을 하던 작업자 2명이 추락하여 사망했고, 11일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여천 NCC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지만 전국 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질적인 예방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에서 사후 처벌에 중점을 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 예방 효과가 의심스럽고 산업 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사망 사고 예방은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사고가 일어난 현장에서 사고 예방의 길을 찾아야 한다. 많은 언론과 국민들은 지금 당장 발생한 사건 자체에만 관심을 둔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지역과 종류가 다를지라도 공통점이 있다. 사고 예방 대책 수립의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는데도 간과되고 있다.

-  2019년 7월 서울 잠원동에서 빌딩 철거 중 붕괴로 도로 옆 차량 3대를 덮쳐 1명 사망, 3명 부상자 발생.

- 2020년 8월 전남 곡성 산 중턱에서 도로 확장 공사 중에 계곡부 성토사면이 붕괴해 아랫마을을 덮쳐 5명 사망.

- 2021년 7월 전남 광양에서 산 위쪽 건물 부지 터파기 공사 중에 산사태가 발생해 하부 주택을 덮쳐서 1명 사망.

- 2021년 6월 전남 광주 학동에서 철거 중 건물 붕괴로 도로 옆 버스를 덮쳐 17명 사상자(9명 사망, 8명 부상) 발생.

- 2021년 1월 초 전남 광주 화정동에서 신축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작업자 6명 사망, 올해 1월 29일 경기도 양주에서 채석장 굴착면이 붕괴해 3명 사망.

사고 현장에서 똑같은 일이
 
2020년 8월 전남 곡성에서 마을 윗산 도로 공사 중 붕괴로 5명이 사망했다.
 2020년 8월 전남 곡성에서 마을 윗산 도로 공사 중 붕괴로 5명이 사망했다.
ⓒ 이수곤

관련사진보기

 
2019년 7월 서울 잠원동 빌딩 철거 시 작업자들은 붕괴 위험을 느끼고 미리 대피했다. 2021년 6월 전남 광주에서도 건물 철거 중 붕괴 직전에 작업자들이 먼저 대피했다. 2021년 1월 광주 화정동 신축 아파트 건물 붕괴 직전에는 작업자가 콘크리트 타설 작업 시 거푸집 파손으로 콘크리트가 흘러내리는 동영상까지 찍었다.

5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2020년 8월 전남 곡성 사고는 아랫마을 주민들이 상부의 도로 확장 공사에서 성토사면이 붕괴할 위험을 사전에 수차례 제기했다. 2021년 7월 전남 광양의 산 하부 주택 공사에서도 주민들이 상부의 터파기 공사장이 위험하다며 수차례 민원을 넣었다.
 
2020년 8월 전남 곡성에서 도로 공사 중 붕괴로 토사가 아래 마을을 덮쳐 5명이 사망했다.
 2020년 8월 전남 곡성에서 도로 공사 중 붕괴로 토사가 아래 마을을 덮쳐 5명이 사망했다.
ⓒ 이수곤

관련사진보기

 
중대재해처벌법 제1호로 예상되는 경기도 양주의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한 작업자가 사전에 위험을 알렸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바닥 쩍쩍 갈라져" 삼표산업 채석장 현장 경고 '묵살'>(<뉴스1> 2022년 2월 7일)에 따르면 한 작업자가 사고 4일 전에 붕괴의 초기 징후인 인장균열(상부 지표면에서 나타나는 둥근 모양의 균열)을 확인해 사진을 찍어 회사 측에 붕괴 위험을 알렸지만 무시당했다고 보도했다. 이 제보가 사실이라면 4일간 골든 타임이 있었다. 그러나 삼표산업은 이를 무시하고 굴착면 하부의 천공 작업을 지시함으로써 결국 3명의 매몰 사망자가 발생했다.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면. 지표면이 길게 갈라진 인장균열 현상을 볼 수 있다.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면. 지표면이 길게 갈라진 인장균열 현상을 볼 수 있다.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작업자들은 사전에 붕괴 위험을 알고 피했고, 심지어 동영상과 사진까지 찍기도 했으며, 공사장 인근 주민들은 민원을 제기했다. 사건 현장마다 작업자들과 인근 주민들은 붕괴 위험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의 사전 인지를 수렴할 실질적이며 효율적인 사전 예방 시스템이 부재해서 붕괴를 막지 못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가 재난의 컨트롤 타워가 되겠다고 했다. 국민은 당연히 정부가 안전을 다 책임져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이 노력한다고 해도 모든 재난을 미리 막을 수 없다.
 
2021년 7월 전남 광양의 어느 마을 위쪽 산에서 건물 부지 터파기 공사 중 붕괴로 1명이 사망했다.
 2021년 7월 전남 광양의 어느 마을 위쪽 산에서 건물 부지 터파기 공사 중 붕괴로 1명이 사망했다.
ⓒ 이수곤

관련사진보기

 
지자체 공무원 중에 재난 관련 공무원은 몇 명 되지 않으며, 행정에 치우쳐 전문성이 부족한 편이다. 지자체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사업장들이 많고, 사업장별로 안전상태도 수시로 변한다. 아무리 공무원이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심지어 문제점을 안다 할지라도 정부 수립 후 77년간 고착화된 부처별 칸막이와 관련 법규, 관련 이해 당사자들로 인해 개선이 쉽지 않다. 이 병폐 고리를 끊어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원인을 알면서도 매년 똑같은 사고가 전국 도처에서 계속 반복되는 이유다.

재난 사고 예방 시스템

현실적으로 정부가 모든 안전을 관리해줄 수 없다. 국민 스스로 안전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각성이 필요하다. 나는 2가지 방법의 효율적인 재난 사고 예방 시스템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5천 만 국민이 함께하는 재난 시스템 구축을 제안한다. 각 지역의 재난을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지킨다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그 지역 주민들이 단결해야 한다. 각 지역의 사정은 지역 주민들이 제일 잘 알며 안전은 주민 각자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 60년간 급격한 산업화로 각 분야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있고, 일반 국민의 교육과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재난은 골든 타임이 중요하다. 사업장 상황이 수시로 바뀌므로 119와 같이 각종 재난을 총괄하는 지역별 민간 주도의 안전관리 조직이 필요하다.
 
2021년 7월 전남 광양에서 산 위쪽 건물 부지 터파기 공사 중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2021년 7월 전남 광양에서 산 위쪽 건물 부지 터파기 공사 중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 이수곤

관련사진보기

 
지역마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대학교와 관련 회사들도 있다.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재능 기부 형식으로 자발적 참여자를 모집하자. 학위를 받은 전문가들보다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종사한 기술자들이 현장의 문제점들을 더 잘 알고 있고,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현장 응급처방 권한을 지역 조직에 줄 필요도 있다. 그물망과 같이 실시간으로 2중, 3중으로 안전을 촘촘히 챙기는 하부 풀뿌리 조직은 공무원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사업자들이 제대로 일을 하도록 견제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둘째, 지역별로 민간 주도의 공익 제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공익 제보자를 직장에서 쫓아내고 동종업계에서 매장시키는 게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공익 제보자를 우대하는 사회 인식의 변화와 함께 공익 제보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신분을 확실히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지역의 사업장마다 공익 제보 연락처를 의무적으로 붙이게 해서 작업자가 쉽게 지역 사회에 공익 제보를 하도록 해야 한다. 공익 제보의 국가 주관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행정 조직이라 골든타임을 다투는 안전 분야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사고 조사 보고서 공개

발생 원인 조사 보고서가 비공개되는 경우가 많다. 사고를 예방하고 관계자들이 보고 배워 타산지석으로 삼도록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국가 안전 관리 제도를 개선하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 비공개로 하면 이해 당사자의 영향을 받아 편향된 보고서가 작성될 우려가 있다. 보고서는 재판에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되므로 공정해야 한다.
 
2012년 광산 붕괴로 3명의 매몰자가 발생한 라파즈한라시멘트 붕괴 현장.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보공개 요청을 해도 관련 기관의 조사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2012년 광산 붕괴로 3명의 매몰자가 발생한 라파즈한라시멘트 붕괴 현장.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보공개 요청을 해도 관련 기관의 조사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 동부광산안전사무소

관련사진보기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효율적인 재난 예방을 위해 새로운 법규, 전문학자들의 추가 연구, 더 많은 국가 예산, 공무원 증원 등이 필요한 게 아니다. 5천만 국민이 함께하는 안전 관리 시스템과 공익 제보자 보호 제도를 제대로 구축하면 재난 사고와 이로 인한 인명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 필자 소개 : 전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전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기술위원회 한국대표(2009~2018).

태그:#삼표, #채석장 붕괴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