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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자라 수확되기까지 친환경이던 이 먹거리들은 소비자를 만나러 나서는 길에 '쓰레기'를 뒤집어쓴다.
 들판에서 자라 수확되기까지 친환경이던 이 먹거리들은 소비자를 만나러 나서는 길에 "쓰레기"를 뒤집어쓴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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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을 살펴보자. '건강'이 식탁 위의 주요 의제가 된 지 오래. 여기에 코로나19로 '안전'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는 전에 없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목말라있다. 하지만 그 바탕이 돼야 할 환경에 대한 책임이 지금 우리 식탁 위에 함께 있을까?

로컬푸드는 이런 고민에 해답이 될 수 있다. 지역 농민이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먹거리인 로컬푸드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체계 구축과 지역 경제의 선순환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돼왔다. 장거리 이동과 다단계 유통과정이 없어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점에서도 '기후위기 시대의 식탁'에 가장 적합한 먹거리로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들판에서 자라 수확되기까지 친환경이던 이 먹거리들은 소비자를 만나러 나서는 길에 '쓰레기'를 뒤집어쓴다. 바로 '포장'이다. 비닐부터 랩·플라스틱·스티로폼 상자 등이 기본, 경우에 따라서는 알알이 완충재 옷(스티로폼 개별 포장)도 입는다.

결국 지역 농산물 자체의 탄소 저감 효과를 상쇄하는 것은 아닐까? 가뜩이나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 굳이 하나를 보태야 할 필요가 있을까? 로컬푸드 매장이나 친환경 농산물 코너 앞에서 잠시나마 고민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런 포장에도 불구하고 로컬푸드를 이용하는 것이 탄소배출 저감 효과는 더 확실하다. 다만 기후위기와 '플라스틱산(山)'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그냥 놓을 수는 없다.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우리 먹거리 유통 과정에서 완전히 빼버릴 순 없을까.

이런 문제 의식은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 농가 역시 마찬가지로 공유하고 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만큼 농민들로선 그 위기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 건강하게 길러낸 농산물을 갖가지 포장재에 싸 내는 것은 이들에게도 '마음의 짐'이 된다.

충북 옥천로컬푸드직매장의 인기 품목 중 하나인 딸기를 생산하는 한백베리농장(동이면 평산리) 한현수씨는 "기후위기 피해는 우리 농민에게 직격탄"이라며 "그런 만큼 농민들이 먼저 환경을 생각하는 농업과 농산물 유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친환경포장재의 경우 일반 포장재에 비해 단가가 2.5~3배가량 더 높고 포장 일손이 더 필요하다는 점 등 모든 농가 도입이 어려운 부분도 명확하다. 포장재 비용 지원이나 농가 현실에 맞는 친환경포장법 개발이 시급한 것이다.

"딸기 1kg 스티로폼 상자가 개당 200원이에요. 그런데 종이 상자는 500~600원까지 하거든요. 아무래도 비용 부담이 크죠. 또 친환경포장재라고 하면 종이상자 정도만 떠오르는데, 종이상자가 적합하지 않은 농산물도 분명 있거든요. 이런 부분까지 고려해 포장재 개발이 필요할 거 같아요. 더 나아가자면, 무포장으로 판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대봐야 할 거고요."
 
옥천로컬푸드직매장, 종이상자 포장 시범 운영 예정


옥천푸드(옥천산 지역 농산물을 일컫는 말)가 모이는 옥천로컬푸드직매장 역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농업과 생태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만큼 친환경 포장 전환에 대해 내부에서 다양한 형태로 논의가 진행돼왔다. 이를 바탕으로 직매장 농산물 카페인 '뜰팡'은 지난해부터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고 라벨 스티커를 종이 띠지로 교체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정작 농산물 포장에 있어서는 진척이 없던 상황. 지난해 딸기에 한해 종이상자 포장을 추진했으나 내부 협의가 충분히 진행되지 못해 보류해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직매장을 위탁 운영하는 옥천살림협동조합은 올해 종이상자 포장에 다시 도전한다. 품목 역시 산딸기, 자두, 대추 등 소과류까지 확대해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직매장 최승일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이를 통해 지역 농가와 로컬푸드 매장의 어려움을 돌아보고 소비자인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을 고민해 보자.
 
"농산물 포장은 생산자도 마찬가지지만 소비자 인식 역시 함께 변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농산물 포장은 생산자도 마찬가지지만 소비자 인식 역시 함께 변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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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품목이라도 종이상자 포장이 진행된다는 것은 소비자로서 무척 반가운 일이다. 확대 계획은 없나.

"일단 딸기를 비롯한 소과류를 먼저 내보고 이후 다시 논의해봐야 한다. 포장재와 관련해 고민이 많은데, 현실적으로는 비용 문제가 가장 크고 종이 외에 다양하게 포장을 할 수 있는 친환경 재료를 찾기가 만만치 않다. 더불어 생산자와 소비자 인식을 함께 바꿔나가는 것에 대한 과제도 있다."
 
- 포장재를 회수해서 다시 쓰거나 무포장 등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 직매장은 농산물을 전량 매입해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가가 개별 출하하는 방식이다. 참여 농가가 직접 판매하다 보니 벌크(개별 포장이 아닌 한꺼번에 섞어 판매하는 것) 처리가 어렵다. 각 농산물이 개별 포장돼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다만 감자류는 종이봉투에 넣어 판매하거나 늙은 호박 등은 포장 없이 판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정적이다. 생산 기획 및 판매 주기를 정하면 벌크 판매도 가능할 듯한데, 그만큼 생산자 협조와 매장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

병이나 플라스틱 통을 다시 회수해 쓰는 것도 세척과 보관 등 재사용 체계가 필요하다. 직매장 자체적으로 이를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 농가별 구역을 나눠 무포장을 도입하는 방법은 어떤가.


"농산물에 따라 가능한 것도 있고 불가능한 것도 있을 거 같다. 감자나 고구마, 당근 같은 것은 가능하지만 대파나 잎채소 등은 금세 시들기 때문에 비닐 포장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공기에 닿으면 시들기 시작하는데 소비자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당장 농가 수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 '뜰팡'이 플라스틱 컵을 친환경 컵으로 바꿨다는 소식도 있었다.

"옥수수 전분이 주원료인데 사실 이런 데 사용되는 옥수수는 지엠오(유전자 조작 식품, GMO)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먹는 건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지엠오 제품이라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 이렇게 대체제가 많지 않기 때문에 철저한 분리배출 시스템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소비자들이 텀블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 올해 종이상자 도입 외에 직매장이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이 있다면.


"포도나 복숭아는 기존에 나가던 종이상자를 계속 쓰면서 재사용 가능한 것은 모아 농가로 다시 보내는 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이외에 친환경 세제 등을 무포장 방식으로 도입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 이런 활동이 직매장을 찾는 소비자와 생산자 인식을 바꾸고 친환경 포장 활성화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지역 농산물 이용은 다른 먹거리 구입보다 훨씬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탄소 저감에도 도움이 된다. 더 많은 소비자가 지역 농산물을 이용하며 이런 인식을 함께 확산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생산자-소비자-행정 관계자 만나는 공론장 만들자
 
감자류는 종이봉투에 넣어 판매하거나 늙은 호박 등은 포장 없이 판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정적이다.
 감자류는 종이봉투에 넣어 판매하거나 늙은 호박 등은 포장 없이 판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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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친환경포장재의 경우 일반 포장재에 비해 단가가 2.5~3배가량 더 높고 포장 일손이 더 필요하다는 점 등 모든 농가 도입이 어려운 부분도 명확하다.
 하지만 친환경포장재의 경우 일반 포장재에 비해 단가가 2.5~3배가량 더 높고 포장 일손이 더 필요하다는 점 등 모든 농가 도입이 어려운 부분도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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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농산물의 '친환경 유통'을 위해서는 예산 마련이나 시설 확충 등 산재한 과제가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지역 농민은 왜 이런 방식으로 농산물을 낼 수밖에 없는지, 또 소비자는 어떤 부분에서 불편과 우려를 표하는지 말이다.

안내면에서 잎채소, 허브류 등을 재배하는 아르아르농장 한은미씨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론장을 제안한다. 실현 가능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면서 다양한 친환경 유통방식을 실험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개별적으로 농산물 꾸러미를 판매하는 그는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 등 포장재로 인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 신문지와 일반 종이 상자를 활용해 꾸러미를 발송한다. 배송 과정에서 다소 시들거나 상하는 부분이 있어도 이 취지를 충분히 이해한 소비자는 오히려 이 방식을 선호한다는 게 한은미씨의 설명.

"농산물 포장은 생산자도 마찬가지지만 소비자 인식 역시 함께 변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이야기하면서 이런 인식의 차이를 줄일 수 있을 거고요. 실제로 다양한 포장법을 시도해보고 이에 대한 보완점을 주고받으며 실천법을 모색할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채소류를 신문지에 싸거나 끈으로 묶어서 내보고 이를 소비자가 구입했을 때 쓰레기 처리나 농산물 상태는 어떠했는지, 어떤 걸 고쳐야 할지, 또 서로 양해해야 할 부분은 뭔지를 이야기 해보는 거죠."

한씨는 여기에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친환경은 이제 정말 피할 수 없는 중요한 흐름"이라며 "이를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직매장 관계자와 옥천군 관계자가 모두 모여 논의해야 하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행정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것을 한 번 한다고 포장재 문제가 해결될 것은 아니고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경험과 사례를 쌓아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해 직매장 출하 물품의 친환경포장재에는 총 4천만원(군비 80%, 자부담 20%)의 예산이 지원된다. 옥천군 농촌활력과 로컬푸드팀 박민 주무관은 "지난해 2천만원의 예산으로 친환경포장재 도입이 계획됐지만 생산자 협의 문제로 실제 추진되지는 못했다"며 "올해 역시 높은 포장재 단가로 인해 한 번에 모두 바꾸지는 못하지만 생산 농가와 협의해 차츰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음기사] "장보기 스트레스 해소" 주부들 반응 뜨거운 이 가게의 비결 http://omn.kr/1xgni

월간옥이네 통권 56호(2022년 2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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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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