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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의 농민과 시민이 힘을 합쳐 만든 '진주텃밭협동조합'은 '진주텃밭'이라는 이름의 로컬푸드 매장을 운영한다. 사진은 진양호점3매장.
 경남 진주의 농민과 시민이 힘을 합쳐 만든 "진주텃밭협동조합"은 "진주텃밭"이라는 이름의 로컬푸드 매장을 운영한다. 사진은 진양호점3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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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딸기는 친환경인데, 왜 '쓰레기'를 입혀놨을까 http://omn.kr/1xglu

지역 농민들이 피땀 흘려 친환경농업과 로컬푸드의 가치를 일궈냈다. 이제 우리는 내가 먹는 것이 어떻게 나를 이루고, 이웃과 지역 공동체에 영향을 주는지 안다. 그런데, 이런 가치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자본이 끼어들었다. 이제 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와 대형유통체인에서 '로컬푸드', '친환경 농산물'을 만나는 것은 별난 일이 아니다. 보다 편리하게 건강한 농산물을 만날 수 있음을 좋아해야 할까? 조금이나마 그 가치가 확산됐음에 기뻐해야 할까?

자본이 만든 다단계 유통망 안에서 착취당하던 농업이, 자본이 낳은 환경 파괴에 맞서던 농민이 찾은 숨구멍 중 하나가 로컬푸드와 친환경농업이다. 지금의 풍경에 씁쓸한 입맛을 감출 수 없는 이유다. 여기에 하나 더, '제로웨이스트'가 유행이 되자 이 역시 '무포장' 혹은 '친환경 포장'이라는 이름으로 마케팅 수단이 됐다.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친환경 포장 농산물'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앞서 충북 옥천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 로컬푸드 매장이 친환경 포장 혹은 무포장 도입을 추진하기 어려운 배경을 훑었다. 이것이 비단 옥천만의 일은 아닐 터. 현실의 벽 앞에 '무포장 로컬푸드 매장'은 요원하기만 한 일일까? 우리 삶을 지탱하는 생명의 텃밭이면서도, 시설과 인력이 부족해서 혹은 재정이 없어서, 그 가치를 제대로 '포장'하지 못하는 일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까?

포장에 있어서도 '친환경'을 고민하는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천주머니 등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하거나 무포장 방식을 도입하는 사례가 적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 그중 경남 진주텃밭 이야기를 살펴봤다. 또 다른 무포장 매장인 대구 '농부장터' 소개도 이어진다.

로컬푸드매장의 무포장 실험
     
경남 진주의 농민과 시민이 힘을 합쳐 만든 '진주텃밭협동조합'은 '진주텃밭'이라는 이름의 로컬푸드 매장을 운영한다. 이 매장에 붙은 또 다른 이름은 '녹색실천매장'. 로컬푸드 유통 과정에서 포장재 사용을 최소화하는 활동을 진행 중인데, 진주시 내에 있는 3곳의 매장이 모두 무포장 운영을 도입하고 있다.

진주텃밭의 무포장 운영이 시작된 건 2020년. 로컬푸드 매장인만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부 조합원과 농민 사이에 공유됐고 이를 바탕으로 경상남도 리빙랩 사업 지원을 받아 무포장 매장 실험을 진행했다.

물론 농산물이나 가공품 특성상 모든 상품을 무포장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쉽게 상하는 농산물에 한해 포장을 허용하고 포장 여부 역시 개별 농가가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진주텃밭의 활동 성과는 매장 비닐 구매량 50% 이상 감소, 아이스팩 전량 재사용(아이스팩 재구매 예산 0원) 등 실제 수치로도 확인된다.

이제 3년차에 접어든 진주텃밭의 무포장 매장은 지역사회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개별 농가가 각 상품을 포장해 판매하는 로컬푸드 매장 특성상 무포장 운영에 대한 반발이나 어려움은 없었을까? 무엇보다 비닐 포장을 하지 않을 경우 2~3배 가량 더 빨리 떨어지는 농산물 선도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진주텃밭협동조합 소희주 이사장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진주텃밭의 비결을 들여다보자.
 
경남 '진주텃밭' 매장. 상추나 깻잎 등 상하기 쉬운 잎채소는 일부 비닐 포장을 허용하고, 포장하지 않았을 때 시들기 쉬운 품목은 별도 투명 상자에 담아 진열한다. 소비자가 구입을 원할 경우 상자 뚜껑을 열어 담아가는 식이다.
 경남 "진주텃밭" 매장. 상추나 깻잎 등 상하기 쉬운 잎채소는 일부 비닐 포장을 허용하고, 포장하지 않았을 때 시들기 쉬운 품목은 별도 투명 상자에 담아 진열한다. 소비자가 구입을 원할 경우 상자 뚜껑을 열어 담아가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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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별 농가가 판매자가 되는 로컬푸드 매장 특성상 무포장 운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진주텃밭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이 궁금하다.

"모든 품목을 무포장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가공품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어 가능한 선에서 도입하고 있다. 상추나 깻잎 등 상하기 쉬운 잎채소는 일부 비닐 포장을 허용하고, 포장하지 않았을 때 시들기 쉬운 품목은 별도 투명 상자에 담아 진열한다. 소비자가 구입을 원할 경우 상자 뚜껑을 열어 담아가는 식이다. 감자나 양파, 당근, 잡곡류는 농가별 판매 일정이나 진열 공간을 구분해 벌크 판매가 가능하다. 농가별로 신문지나 종이, 호박잎으로 신선채소를 감싸 내놓기도 한다."

- 호박잎으로 싼 농산물은 '로컬푸드 매장에서만 볼 수 있는 기발함'인 듯하다. 그럼에도 무포장 도입 시 매장이나 농가의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농가의 반발도 많았다. 일단 시든 농산물로 인한 손실이 정말 컸다. 그때는 거의 모든 품목을 무포장으로 시범 운영했을 때라 더 그랬다. 공기 접촉으로 인한 시듦은 물론 소비자들이 들었다 놨다 하는 과정에서 상하는 것도 많았다. 시들어 판매하지 못하고 회수해야 하는 농민들의 안타까움도 컸다.

고추장을 팔 때도 소비자가 개별 용기에 담아가도록 했는데, 번거로움과 수고가 곱절이 아니라 몇 배로 늘어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일부 품목은 포장을 허용하고 몇 가지를 보완해 현재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억지로 무포장을 늘려도 안 되겠지만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온 만큼 올해는 좀 더 확대해볼 생각이다."

- 무포장 매장 운영에 있어 필요한 행정 지원이 있다면.

"잡곡 디스펜서(분배기)나 채소류를 담는 진열 상자 등은 경남 리빙랩 사업 예산으로 구입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무포장 매장 운영에 필요한 시설, 자재 마련에 지원이 있다면 좋지 않겠나. 진열 품목별로 저울이 필요하기도 하고, 운영 초반에는 농산물 손실율(시들어서 판매하지 못하는 농산물 비율)도 높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행정에서 지원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테다. 진주텃밭의 경우 무포장 도입 당시 발생한 농산물 손실분을 모두 매장이 감당해야 했다."

'소비자 자부심 높아졌다' 응답 97%가 말하는 것
     
- 소비자 반응이 궁금하다.

"초기부터 반응은 좋았다. 무포장 매장 도입하면서 소비자 교육도 많이 실시했는데 이 덕분에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소비자 회원이 많다. 이용자 설문조사에서는 '무포장 매장 전환 이후 소비자로서 자부심이 높아졌다거나 매장에 자주 오게 됐다, 일상에서의 환경 의식이 높아졌다'는 응답이 97%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곳에서만 쓰레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포장을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게 됐다는 거다. 그래서 저희는 '억수로'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재는 포장도 일부 허용하고 있다 보니 '할 거면 좀 더 제대로 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 진주텃밭의 자체 평가는 어떤가.

"잘 시작했고, 이렇게 가는 방향이 맞다. 또한 부족한 것을 계속 메워가야 한다. 소비자들은 '시든 농산물도 사가야죠'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잘 안 사간다. 이를 보며 무포장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보조금 제도 같은 게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매장 쿠폰 지급 등 시든 농산물 구입을 유도하는 것을 고민 중이다. 이외에 종이봉투 사용시 환경부담금 부과도 고려하고 있다. 진주텃밭의 활동이 더 많은 시민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제 3년차에 접어든 진주텃밭의 무포장 매장은 지역사회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3년차에 접어든 진주텃밭의 무포장 매장은 지역사회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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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러미 발송이나 선물 등 포장을 피치못할 품목도 있을 텐데, 이 경우 어떻게 친환경을 실현하는지 궁금하다.

"선물 포장은 코팅되지 않은 종이상자를 쓰고 이 상자는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한다. 플라스틱 용기의 경우 매장에 비치해둔 살균기로 소독해 재사용하고 있다. 물론 가격표 접착제 자국이 남아있거나 보관 등의 어려움이 있긴 하다."

- 이외 진주텃밭이 친환경 관련 진행 중인 사업이나 정책이 있다면.

"무엇보다 농민들이 친환경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친환경 농업 전환이 쉽지 않아서 지난해부터는 인증 전환을 준비하는 농가를 따로 모아 집중 교육 중이다. '다 함께 인증으로 가자'는 식으로 서로 격려하는 셈이다. 올해 매장에 들어오는 잎채소 농가 모두 친환경 인증 전환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 끝으로 소비자와 다른 지역 농가에 전하고 싶은 말.


"로컬푸드가 무포장으로 운영하기에는 참 힘든 방식이다. 더 많이 확산되길 바라지만, 방식 자체가 가지는 한계가 있어 어렵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하지만 작은 지역 단위에서 공동체를 중심으로 활성화되는 로컬푸드 매장의 가치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전국의 로컬푸드 매장이 더욱 활성화되고 이런 식의 시도가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
 
또 다른 지역 이야기, 대구 농부장터


2009년 대구에 문을 연 '농부장터(대구 북구 태전동)'는 생산자와 소비자, 직원이 모두 조합원인 형태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다. 여느 로컬푸드 매장처럼 지역 농민이 낸 농산물로 매장을 채우는 이곳은 2020년부터 제로 웨이스트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곡물이나 호박 등 포장이 필요 없는 품목을 무포장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 쌀이나 찹쌀, 수수 등은 디스펜서로 소비자가 원하는 양을 직접 조절해 담아갈 수 있다. 포장이 필요한 경우엔 재생용지 상자나 종이봉투를 활용한다.

이곳에 생산품을 내는 농가는 약 160여 농가. 이 중 현재 무포장 판매에 동참하는 농가는 15농가 정도이지만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오고 있다고. 무엇보다 장을 보고 나면 구입한 물건 만큼 배출되는 비닐·플라스틱 쓰레기에 스트레스를 받던 주부들의 반응이 뜨겁다.

농부장터 기획팀 박지연 팀장은 "무포장 방식을 고민을 하던 차에 대구환경교육센터의 자원순환 지원사업을 받아 디스펜서 설치와 샴푸바·밀랍 만들기 워크숍 등을 진행했다"며 "현재 소비자 조합원들이 모여 생태동아리를 만들고 천주머니 제작이나 캠페인 등을 함께 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직원들의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박 팀장은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일상 속 실천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또한 무포장 운영이 공익적 활동인 만큼 관련 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남 진주텃밭 매장에서 세제를 무포장 판매하는 모습
 경남 진주텃밭 매장에서 세제를 무포장 판매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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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그린워싱', 친환경 포장재

최근 플라스틱, 비닐 사용 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포장재'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농산물에도 이 친환경 포장재를 활용했다는 홍보가 종종 눈에 띈다. 궁금하다. 이 포장재는 정말 친환경일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역시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자연 상태에서 분해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 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맹점이 있는 것.

친환경 포장재의 대표 주자로 이야기되는 것이 'PLA(피엘에이)'. 옥수수 전분 추출 원료로 만든 PLA는 온도와 습도 등 특정 조건이 갖춰질 때 미생물에 의해 자연적으로 분해된다는 것이 강점.

그러나 애초에 이 분해 환경(섭씨 56~60도 정도의 토양에서 6개월 이상)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갖춰지기 어렵다. PLA의 원래 목적을 실현하려면 별도 분해시설이 마련돼야 하지만 이 역시 국내엔 없다. 매립을 해도 썩지 않는 것은 일반 비닐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PLA 플라스틱이 일반 플라스틱과 함께 배출되는 경우 기존 재활용 공정을 망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 즉, PLA 친환경 포장재라도 버리는 것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일반 쓰레기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PLA가 '무(無)쓸모'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이 일반 플라스틱보다는 60%가량 낮다. 하지만 폐기와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역시 마음 놓고 써서는 안 될 물건이다. 결국 생산과 유통은 물론 수거와 폐기, 처리까지 전 과정에 걸쳐 환경을 고려해야만 진짜 '친환경'이 될 수 있음을, PLA는 보여준다.
 
월간옥이네 통권 56호(2022년 2월호)
글 박누리 사진 진주텃밭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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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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