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뉴스의 단골 주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몇몇 조사 수치를 내세우며 피상적인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기는 힘들다.
  
구인회, <21세기 한국의 불평등>, 사회평론아카데미, 20,000원.
 구인회, <21세기 한국의 불평등>, 사회평론아카데미, 20,000원.
ⓒ 사회평론아카데미

관련사진보기

 
이 책, <21세기 한국의 불평등>은 21세기 한국의 소득 불평등을 역사적·국제적으로 비교한 포괄적 연구서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불평등 구조를 적실하게 분석함과 동시에 증세를 통한 전반적 복지체계의 향상을 주장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빈곤도 불평등도 악화된 한국 사회

기존의 학계에서는 1990년대 이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사회가 빈곤은 악화되었지만 불평등은 심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소득분배 실태를 분석할 수 있는 다른 조사자료들(가계금융복지조사 등)이 등장하면서 기존 의견은 무너졌다. 기존 의견은 가계동향조사의 분석 결과 도출된 것이었는데 가계동향조사는 고소득자의 소득 비중이 실제보다 낮게 포착되었다는 사실이 새로운 조사자료들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새 조사자료에 기반해 지니계수(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를 추정한 결과 한국의 지니계수는 0.31에서 0.37로 높아졌다. 전자는 OECD 평균 수준이지만 후자는 남유럽 국가들보다 높고 미국과 근접한 수준이다. 즉 한국은 90년대 이후 빈곤뿐 아니라 불평등 역시 악화되었다는 의미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현대 사회의 불평등은 자본이 그 주된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자본소득의 비중이 전체 소득 불평등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 보기 힘들다. 이는 오랜 기간 자본이 축적되어온 서구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해방 후 일본인 적산의 불하, 한국전쟁으로 인한 대량 파괴, 농지개혁 등으로 자산의 소유 분포가 하향 평준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근로소득에 초점을 맞추어 불평등을 분석하였다.

서구 비해 가구 단위 불평등은 적었지만

한국의 소득 분배의 특징은 근로소득의 분배는 국제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평등
하지만 가처분소득(소득 중 세금이나 의료보험료를 제외한 소득)의 분배는 매우 불평등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가구 단위에서의 근로소득 분배이기 때문이다.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에서의 근로소득 분배의 경우 지니계수는 0.64로 브라질, 아일랜드, 그리스 다음 수준으로 미국, 영국과 더불어 불평등도가 가장 높은 수준에 속했다.

개인 단위에서의 근로소득 분배는 80년대 이후 90년대 전반까지 크게 개선되었다가 그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자영업자의 지위 하락, 고용여건 하락으로 비취업인구 증가 등이 근로소득 분배를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정부와 대기업은 성장주의 논리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축소나 비정규 고용 제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희생시켰다. 특히 규제 완화 등 재벌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이 지속되면서 경제력 집중은 심화되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되었다. 이런 근로소득분배 악화는 자연히 가구 근로소득 분배와 노인의 소득분배 악화로 연결되었다.

이와 같은 개인 단위에서의 근로소득 분배가 악화일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구 단위에서의 근로소득 분배가 양호한 까닭은 가구구성효과이다. 가구구성효과에 따르면 근로소득을 버는 능력이 약한 개인들은 가족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두 가지 혜택을 본다. 첫째로 소득능력이 큰 가족 구성원이 벌어온 소득에 접근해 실제 소득자 이외에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가구소득을 동등하게 향유할 수 있다. 둘째로 소비에서의 규모경제 효과로 혜택을 본다.

특히나 한국의 경우에는 한부모가구의 비중이 서구에 비해 훨씬 적고 저소득 가구주의 배우자 근로소득이 높은 수준이다. 때문에 타 국가들에 비해 가구 단위에서 합쳐진 근로소득 분배가 개인 단위 근로소득 분배보다 크게 개선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최근 들어서 부부가구의 비중은 줄어들고 성인 단독가구 등의 가구유형이 증가함으로써 약화되었다. 가구유형의 변화는 노인의 소득분배 악화에서 훨씬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에서 성인자녀와 동거하는 노인의 비중이 급속히 줄어들고 독립가구를 이룬 노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노인의 소득분배는 매우 악화되었다.

해법은 증세 통한 복지 정책 확장

이 같은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90년대 이후 전개된 여러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복지체제의 노동배제적 보수체제로서의 성격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고 본다.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1990년 GDP의 2.7%에서 2019년 12.2%까지 상승했으나 20.0%의 OECD 평균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2019년 기준 OECD 38개 회원국 증 35위라는, 국제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렇기에 증세 전략으로의 전환을 통해 복지 정책의 확장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정책의 구체적 부문으로는 ▲ 노인빈곤의 해소와 노후소득보장제도의 구축, ▲ 근로연령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확대, ▲ 여성고용과 일/가족 양립 지원을 통한 소득격차 완화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내세운 증세라는 해법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유력 당선후보로 점쳐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모두 여러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재원 조달 방안으로 명확히 '증세'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해 유튜브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기본시리즈를 지키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언급하는데 그럼 증세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증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건 무책임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또, 지난 22일에는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후보의 토지이익배당이 증세 공약이라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비판에 "심 후보가 증세가 정의라는 좌파적 관념을 많이 가져서 그렇다"고 대응하기도 했다.

한편,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유승민 전 의원과의 경선 토론에서 "국가부채가 증가하기 때문에 복지지출을 임시적으로 줄일 수 있고, 증세도 필요하다"며 증세 항목으로 법인세와 소득세를 거론했으나 최근에는 증세를 대신해 세출 및 재량지출 구조조정, 예산 비율 조정 등을 주요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선 후보 중 한국 사회의 불평등 해결에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떤 해결방안이 시급한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불평등 해소만을 외친다는 이는 그야말로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21세기 한국의 불평등 - 급변하는 시장과 가족, 지체된 사회정책

구인회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2019)


태그:#21세기 한국의 불평등, #사회평론아카데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