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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대부분이 파괴된 아막성 모습으로 1500여년전 신라와 백제가 국운을 걸고 싸운 전투현장이다
 성의 대부분이 파괴된 아막성 모습으로 1500여년전 신라와 백제가 국운을 걸고 싸운 전투현장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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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7세기 초반 신라와 백제가 국운을 걸고 싸웠던 아막성을 방문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인 아막성은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있다. 남원 장수군 번암면과 경계를 이루는 봉화산(해발919.6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정상부(해발 697m)와 주변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은 둘레 640m의 자그마한 성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사이에 격렬한 영토전쟁이 벌어진 곳으로 신라에서는 '모산'이라고 불렀다. 성터는 대체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서·북쪽 테두리에 성문터가 있다. 북쪽 성벽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하게 쌓아 정교함을 보여준다. 북문터 부근에는 직경 1.5m의 돌로 쌓은 둥근 우물터가 있다.

아막성은 소백산맥 동서를 관통하는 요충지이다. 두 나라가 국운을 걸고 싸운 이유는 운봉고원과 장계분지의 거대한 제철산지를 차지하기 위함이다. 철은 예로부터 국력을 상징하는 요체이다. 전북 동부지역에서는 200여개소의 제철유적이 발견됐다. 아막성 주변의 지형은 '동고서저'로 신라군은 서편에서 공격해오는 백제군을 막는데 유리한 입장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대병 동원한 백제군 패전... 승리한 신라군 서진 기틀 다져

신라가 4성을 축조해 백제 영역을 먼저 침공하자 602년 8월 백제 무왕이 4만 병력을 동원해 4성을 공격했고 신라 진평왕이 정예기병을 동원해 방어에 성공했다. <삼국사기> '귀산전' 내용이다.
 
"602년 백제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아막성을 포위했다. 이 싸움에서 백제 좌평 해수는 무려 4만명을 지휘해 신라 4개 성을 공격했다. 신라화랑 '귀산' '추항'이 이곳에서 죽었다"
"616년 겨울 10월 백제가 모산성을 공격했다"
 
아막성 전투에 승리한 신라는 백제가 소백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고 옛 가야 지배를 공고히 했다. 백제가 대군을 동원해 아막성을 공격한 배경은 신라의 소백산맥 방어체계를 와해시킬 수 있는 군사적 비중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아막성 전투 승리가 준 의의는 아래와 같다. 

▶신라의 승리로 백제의 소백산맥 동쪽으로의 진출이 저지됐고 옛 가야 지배를 공고히 했다.
▶아막성 전투 결과 백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줬다. 뿐만아니라 당분간 신라에 대한 공격 의지가 약화 됐다.
▶아막성 전투 승리로 신라는 전북 동부 지역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으며 운봉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백산맥 서쪽 지역으로 진출이 본격화 됐다.

 
성이 축조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발굴 조사 중이다
 성이 축조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발굴 조사 중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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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막성은 가야 백제, 신라 유물이 공존하는 보물창고

아막성은 백두대간 치재에서 멀지 않은 복성이재 남쪽 산봉우리에 있다. 아막성은 가야와 백제, 신라 유물이 공존하는 보물창고이다. 운봉고원에 있던 가야가 처음 터를 닦고 현재의 성벽은 신라 때 다시 넓게 고쳐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발굴조사 중인 집수정 모습.
 발굴조사 중인 집수정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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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에서 발굴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산성 내 북쪽 기슭 가장 하단부에서 동서로 긴 장방형의 집수시설이 조사됐다. 집수시설은 두께가 얇은 흑운모 편마암을 가지고 수직으로 벽석을 쌓았는데 그 규모는 길이 950㎝, 너비 710㎝, 높이 250㎝이다.

벽석은 계단식으로 북쪽을 제외하고 사방에 도수로를 둘렀고 집수시설 동쪽에서 목주열이 확인됐다. 유물은 집수시설의 자연 퇴적층에서 토기류와 기와류, 목제유물, 슬래그와 노벽편 등 다양한 동물유체 등이 출토됐다.
    
아막성에서 발굴된 백제유물들
 아막성에서 발굴된 백제유물들
ⓒ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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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막성에서 발굴된 신라토기 모습
 아막성에서 발굴된 신라토기 모습
ⓒ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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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류는 신라 토기가 유물의 절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가야토기와 백제토기가 일부 섞여 있다. 옻나무 수액이 바닥에 붙은 상태로 신라토기가 나와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유물은 남원의 주요특산품인 남원목기와 전통 옻칠 공예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경주 월성 유적에서 나온 곰을 중심으로 소, 개, 고라니, 두루미, 백제 제사유적에 나온 자라 뼈도 출토됐다. 목간, 목검 등 목제유물의 출토량도 상당하다.
  
아막성에서 발굴된 토기와 슬래그 모습
 아막성에서 발굴된 토기와 슬래그 모습
ⓒ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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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막산성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아영평야가 보이고 반대쪽을 바라보니 급경사진 산자락에 우거진 나무들이 겨울 찬바람에 윙윙 소리를 낸다. 나뭇가지를 세차게 흔들며 윙윙소리를 내는 바람 소리가 1500여 년 전 목숨걸고 싸웠던 군인들의 아우성소리처럼 들린다. 거의 다 무너져 버린 성벽을 보며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가고 없다'는 시구가 생각나 허전함을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아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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