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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럴싸한 노동 공약도 제시되지 않고, 이를 둘러싼 공방 또한 보이지 않는다. '노동존중 사회'를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비정규직 감축을 위한 공공부문 상시 일자리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차별금지법 제정,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 축소와 같은 노동 공약이 제시되었던 19대 대선과 비교하면, 20대 대선을 '노동 없는 대선'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오히려 비정규직 규모가 늘어나고 위험의 외주화 등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데다 코로나19와 겹쳐 자본/노동소득 분배율과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불평등이 악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2022년 대선에서 노동 의제는 오히려 주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노동 공약을 발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은 노동 공약을 그리 부각시키려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초기 추진된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의 반발을 불러왔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공정성 논란을 야기한 이른바 '인국공 사태'를 거치면서 청년층의 이반을 가져와 여당으로 하여금 노동 이슈 자체를 꺼리게 했다. 이재명 후보가 말을 꺼내 봤자 표 획득에 도움이 안 되는 노동을 부각할 이유가 없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월 26일 "비록 제 팔은 굽었지만, 굽고 휜 노동 현실은 똑바르게 바로 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내 머리 위해 이재명', '내 집 마련 위해 이재명', '코인·주식 대박 위해 이재명'이 선거구호로 제시된 것과는 달리, '노동자 위해 이재명'이라는 말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엄청난 규모의 노동 전문가들이 캠프에 모여 있지만, 눈에 띌만한 노동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노동 공약도 53번째 소확행 공약이 페이스북에 게시된 날 발표됐다. 이재명 후보에게 노동 공약은 그 정도 수준인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주 120시간 노동", "주 52시간 상한제 폐지", "노동자가 원하면 월 150만 원을 받고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등 반노동 발언을 하면서 시대착오적 노동관을 드러냈다. 노동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도 발표하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또한 페이스북에 "강성 귀족노조 혁파!" 운운하며 4자 대선후보 TV토론에서도 윤석열 후보보다 더 저열한 노동관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이면 소년공 출신임을 강조해왔던 이재명 후보가 나서서 노동 의제에 대한 자기 입장을 구체화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데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반노동 발언이 문제 있음을 지적하는 것에 그쳤다.

노동 정책 공약들의 이행 가능성을 따져볼 때 윤석열 후보보다는 이재명 후보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노동 공약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노동 정책들보다 더 진전된 부분이 보이지 않고, 방향성 측면에서도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설사 획기적인 노동 공약이 제시된다 해도 이런 공약이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역대 정권을 보면 노동 공약은 내용보다는 실천 의지가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 또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슬로건과 달리 임기 초반부터 임기가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노동자를 기만하는 위선적인 노동 정책으로 일관했고, 노동기본권 보장에 인색했다. 아니 노동에 적대적일 때도 많았다. 이렇게 쌓인 민주당 정권에 대한 불신이 과연 사탕발림 노동 공약 몇 개로 해소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고 소속 국회의원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한 법안을 포함하여 노동 이슈로 부각된 법안들은 논의 테이블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의지만 있으면 대선 전에라도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안들을 통과시킬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여전히 제대로 통과된 노동 법안들은 없다.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없는 상태에서 겉만 번지르르한 노동 공약을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노동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였다면 여야 대선 후보들이 앞을 다퉈 노동을 위한 공약과 정책을 내세우면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했을까? 국민이 노동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야 대선후보들에게 노동 공약을 요구하였을까?

물론 대선 공간에서 노동 공약과 정책을 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 사이에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게 되면 국민의 관심이 높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높아진 관심이 노동에 호의적인 방향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경제 사안에 밀려 사라진 노동 이슈가 가끔 대선판에 등장하지만 대부분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되고 있다.

더욱이 여야의 대선 후보 모두 문재인 정부가 노동 공약 이행을 위해 실현한 것조차 비난하고 부정하기에 바쁘다. 노동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공약과 국정과제로 제시된 노동 이슈들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비난하고, 나아가 최저임금 1만 원, 주 52시간 상한제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ILO 기본협약 비준, 노동기본권 행사 보장 등 노동 공약과 노동 관련 국정과제 자체를 문제 삼고 부정하고 있다. 이런 식의 '노동 있는 대선'이라면 노동 없는 대선이 낫다.

근본적으로 과연 이번 대선만 노동 없는 대선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실을 보면 이번 대선은 물론 역대 대선에서 노동은 별다른 쟁점이 되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노동 이슈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노동 정책이 중요했던 선거는 과거에도 없었다.

노동 공약은 항상 대선 당락과 무관한 수많은 정책 중 하나였을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여러 노동 공약을 제출했던 것은 노동 정책이 중요해서라기보다는 촛불항쟁을 주도했던 노동계의 요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노동 없는 대선'이라는 말은 노동 공약이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노동 이슈가 주변화되거나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 없는 대선'은 노동자의 정치가 대선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노동 공약에 대해, 정의로운 노동 전환에 대해,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제에 대해 노동의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선판을 흔드는 운동이 없다는 의미다. 어쩌면 보수정당 후보들이 주도하는 대선판에 노동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 자체가 노동 정치의 부재와 실종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6년 촛불항쟁에서 민주노총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노동의 요구가 대선 공약에 반영되도록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노동의 정치가 있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노동 공약을 제대로 평가하고 '노동 없는 대선'을 비판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 추진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민주노조운동이 제대로 된 노동계급의 정치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필요하다. 그래야 향후에 노동 있는 대선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정책칼럼'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20대 대선, #노동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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