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2 20:01최종 업데이트 22.03.1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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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말]
[소셜 코리아 연속기획 : 존엄한 노후를 위한 연금개혁]
① 지속가능한 연금을 위한 개혁 방안
② 공포가 아닌 신뢰 기반의 연금개혁


연금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누가 집권하든 차기 정부의 핵심 화두가 될 것입니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소셜 코리아가 연금개혁 방안에 대한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를 여는 첫 글은 공론장에 새로운 연금개혁안을 제안한 박선민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 보좌관이 작성했습니다. 다음 필자로 나서는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연금개혁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이들 제안 외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열린 플랫폼을 지향하는 소셜 코리아는 여러분의 이견이나 반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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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생 아이의 꿈은 승무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항공업계는 얼어붙었고, 당장 취업을 할 수 없어 카페에서 하던 아르바이트 시간을 더 늘렸다. 매일 총총거리며 출퇴근하던 어느 날 "이게 뭐야?" 깜짝 놀라 묻는다. 국민연금으로 월급에서 5만 6700원을 공제했다는 것이다. 6시간 시급을 떼갔으니 눈이 휘둥그레질 만하다.

생애 첫 가입자가 된 아이에게 국민연금이 얼마나 멋진 제도인지 설명해 줬다. "노동자 납부액만큼 고용주도 낸단다. 그러니 11만 3400원을 납부한 셈이고, 실은 5만6700원을 더 번 거야. 10년 동안 9만 원을 내면 65세 이후에 매달 18만 원을 받을 수 있지. 가입 기간이 길수록 더 받을 수 있어."

하지만 딱 한 달 만에 아르바이트 시간은 다시 줄었고, 사업장 가입자 자격 상실과 동시에 지역가입자 자격 취득 안내문이 왔다. '납부내역 1개월'이 눈에 밟힌다. 계속 납부할 것을 권했지만 아이는 망설인다. 이제 전액 본인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질문이 달라졌다. "90년대생부터는 못 받을 수도 있다는데?"
 

국민연금은 우리 세대와 미래 세대의 공존을 상징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 셔터스톡


오늘 글은 이에 대한 답변이자 국민연금을 위한 변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연금은 노후소득 보장의 핵심 기둥이고, 반드시 지급되어야 한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그 책임을 누가 언제 어떻게 나눠질 것인가의 문제다. 재정의 지속가능성, 높은 노인빈곤율에 대응하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연금이 고차방정식인 이유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세대 문제라고 하는데 이때 세대는 '노인과 청년' 둘이 아니다. 현재 노인인 세대, 미래에 노인이 될 현재의 청장년 세대, 현재의 아동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로 구성될 미래의 청장년 세대 모두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우리세대와 미래세대의 공존을 상징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재정 건전성 유지의 필요성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받는 급여에 비해 내는 기여가 낮아 수지불균형이 무척 크다. 게다가 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면 미래세대는 수지불균형 문제와 초고령화 부담을 함께 지게 된다. 국민연금법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재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를 조정하라고 법에 명시하고 있다.

재정 계산은 5년에 한 번 이뤄지고 현재의 법·제도가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70년 전망치를 제시한다. 2003년 이후 4차례 실시됐고, 올해 5차 재정 추계가 시작될 예정이다. 지난 4차 재정 추계 결과 2042년부터 재정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2057년 적립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 2020년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재정수지는 2039년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기금은 2055년 소진될 전망이다.

재정 분석은 인구 변수, 거시경제 변수, 제도 변수 등을 반영하는데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상 5차 재정 추계 결과는 이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장할 것도 없고 축소할 것도 없다. 수지불균형은 사실이고, 아무런 변화 없이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약 30여 년 뒤 적립금이 소진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재정건전성 유지는 중요하다. 연금개혁 방안에 대해 생산적 토론을 하려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 재정수지 및 적립금 전망(2020~2090년) ⓒ 국회예산정책처


장기재정 전망을 하는 이유는 대규모 연금지출이 발생하기 전 재정을 점검하고 그에 맞춰 조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연금개혁은 급여 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만 이뤄졌다. 보험료율은 직장가입자의 경우 1998년 제도 도입 이후 9%에서 한 번도 조정된 적이 없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두 가지 방법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 조정' 중 하나는 미뤄왔던 것이다. 만약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방식으로 연금개혁을 해왔더라면 지금의 갈등은 다른 국면이었을 것이다. 연금 선진국들은 비슷한 급여를 적용받으며 우리보다 2배 안팎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 이들 나라 역시 연금개혁 과정이 있었다.

보험료율 인상은 기금을 직접적으로 증가시켜 재정수지를 즉각적으로 개선하면서도 연금급여 지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에 의하면 2021년 기준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현행 9%에서 12%로 상향될 경우, 적립금 소진 시점은 8년 늦춰진다. 13%라면 11년이 늦춰진다. 그런데 시기가 늦어지면 이만한 효과를 얻지 못한다. 만약 상향 시점이 2040년이라면 12%가 되어도 3년, 13%가 되어도 5년 늦춰질 뿐이다. 늦어질수록 필요 재정이 커진다.

물론 적립금이 소진된다 하더라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적립방식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고,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고, 국가보전금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 결국 보험료를 한꺼번에 올리거나 세금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말인데 어느 쪽이든 미래세대에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우리나라는 노인부양비가 2020년 23.6에서 2050년 78.8로 급증하여 전 세계 최상위권이 될 전망이다. 노인부양비는 근로연령(20~64세) 100명 당 노령(65세 이상) 부양가족의 수를 의미한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현 세대가 나눠지는 방법을 찾아가길 바란다.
 

보험료율 변화에 따른 적자전환 및 적립금 전망 ⓒ 국회예산정책처

 
불안정한 노동시장 영향 최소화해야

재정 불균형에 이은 국민연금의 두 번째 문제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다. 국민연금은 18세 이상 60세 미만 소득자를 대상으로 한다. 2020년 12월 말 기준 가입자는 2158만 명이고, 이 중 소득이 없어 납부 예외를 신청한 가입자는 309만 8천 명(14.4%)이다. 소득신고자 1848만 2천 명 중 103만 5천 명(5.6%)은 13개월 이상 장기체납자다.

특히 장기체납자는 2018년 98만 명에서 5만 5천 명 더 증가했는데, 이는 코로나 영향으로 보인다. 대부분은 임시·일용직 근로자,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이거나 소득파악이 어려운 영세사업장 근로자와 자영업자일 가능성이 높다. 체납자 열 명 중 일곱 명은 최저임금 미만이다. 이들은 불안정한 소득과 고용상태로 인해 안정적으로 납부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과제 중 하나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불안정계층이 노인이 되었을 때 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의 연금액이 상향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 셔터스톡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국민연금의 비율)은 기본적으로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다. 가입자가 완전고용·정규직·전일제 노동자라는 가정하에 설계된 제도다. 현재의 노동시장에서는 일부만 이 조건을 충족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장 국민연금 가입률은 30% 후반이다. 정규직의 경우 2014년 82.2%에서 2021년 88.8%로 꾸준히 높아졌지만 비정규직의 직장 국민연금 가입률은 2014년 38.5%에서 2021년 38.4%로 변화가 없다. 2020년엔 오히려 37.8%로 낮아진 바 있다. 가입기간은 앞으로 70년 동안 평균 18~27년으로 전망되며, 실제 받게 될 급여액 수준을 보여주는 '실질 소득대체율'은 평균 22~24%에 불과하다.

급여액은 가입기간과 소득 수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에 명목 소득대체율과 차이가 크다. 근로연령층이 노동시장의 불안정 계층으로 남아 있을 경우 노인이 되었을 때 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들이 실제로 받는 연금액이 상향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다만, 연기금의 장기 재정부담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현시점에서 다양한 가입 지원을 위해 국가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가입지원으로 실질보장성 강화 필요

첫째, 도시지역 가입자에 대한 연금보험료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는 사업주가 절반, 농어민 가입자는 국가가 대략 절반을 지원하고 있다. 도시지역 가입자만 전액 본인이 부담하고 있어 저소득층의 부담이 크다.

도시지역 가입자에게도 농어민 수준으로 보험료를 지원하여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 영세자영업자들, 불안정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대체율이 오르도록 해야 한다. 또, 저소득 노동자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대상도 늘려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보완해야 한다.

둘째, 크레디트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크레디트 제도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연금 가입기간을 추가 인정해주는 제도다. 많은 나라에서 연금수급권 보호와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 다양한 크레디트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출산, 군복무, 실업 크레디트(credit)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둘째부터 적용하는 출산 크레디트를 첫째 자녀부터 적용하고, 군복무 크레디트는 현행 6개월에서 복무기간 전체로, 실업 크레디트도 생애 1년에서 실업 기간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셋째, 기초연금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기초연금의 급여 수준은 상시고용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7.8%로 OECD 회원국의 최저보장연금 평균 급여 수준 19.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초연금을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인상하여 현세대 노인 빈곤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공적 노후소득보장 제도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2005년 이전까지 일반 국민에게는 국민연금이 유일한 공적연금이었으나 2006년 퇴직연금, 2007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면서 한국의 법정 연금체계는 3층이 됐다. 향후 기초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고, 퇴직연금은 연금제도로 성숙시키는 종합개혁이 필요하다. 연금을 둘러싼 불안을 해소하고 계층별로 적절한 노후를 보장하는 중장기 '다층연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공적 노후소득보장 제도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 셔터스톡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틀을 넘어서자

지금까지 공적연금을 강화하자는 주장의 핵심은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이었다. 적정 노후소득 보장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노인빈곤율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시점에서 명목소득대체율만 인상하면 수지 적자는 심화된다. 40년 가입자 기준 소득대체율 40%를 45%로 인상할 경우 적립금 소진 시점은 2년 빨라지고, 50%가 될 경우 3년 앞당겨질 전망이다.

지금도 국민연금 수지불균형이 크고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가 보험료율 인상이 수반되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과연 최선의 대안일까 생각해봐야 한다. 비단 재정부담뿐만 아니라 소득대체율 인상이 노후빈곤 개선에 실제로 효과적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5%, 50%로 인상하면, 25년 가입 평균소득자 기준으로 연금액이 각각 월 7만 원, 14만 원 증가한다. 하지만 이는 평균이고, 소득이 낮은 가입자일수록 가입 기간이 짧다는 현실을 반영하면 인상액은 차이가 난다.

예컨대 소득대체율 50%가 되면 15년을 가입한 100만 원 소득자의 연금액은 6만 원이 늘어나는 반면, 20년 가입한 300만 원 소득자의 연금액은 20만 원이 늘어난다. 소득과 가입기간의 격차를 최대치로 대비하면 10년 가입 100만 원 소득자는 4만 원이 늘고, 40년 가입 최고 소득자는 35만 원이 늘어난다.

국민연금은 애초 하후상박 형태로 저소득 가입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설계됐지만 노동시장 문제 때문에 가입 기간이 긴 정규직·고소득·안정적 가입자가 더 큰 혜택을 받도록 작동하고 있다. 만약 보험료율이 높아지고 가입기간이 늘어난다면 격차는 줄어든다.

따라서 소득대체율 인상이 세대 내 형평성을 저해하지 않고 효과를 발휘하려면 가입기간을 늘리기 위한 지원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질소득대체율 인상은 가입 지원에 방점을 두고 있다. 현재의 재원을 투입하여 노동시장에서 발생한 격차를 줄이고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50%일 때 소득·가입기간별 월수령액 (괄호안은 소득대체율 40% 대비 인상액, 2028년 가입 기준, 2018년 현재가 기준) ⓒ 국민연금공단

 
'공적연금 보장성 강화'를 추구한다는 점은 동일하나 그 방법에 있어서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만, 생산적 토론을 위해서는 가능하면 공통의 전제를 넓혀야 한다.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해보자는 것이 제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거나, 세대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거나, 공적연금 축소 및 사적연금 확대 주장으로 치부되어서는 곤란하다. 연금개혁은 단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재정안정과 노후소득 보장은 함께 갈 두 바퀴이며 이를 통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도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박선민 / 국회 이은주 의원실(정의당) 보좌관 ⓒ 박선민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박선민은 2004년부터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중 12년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했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합니다. 민주주의가 튼튼할수록 우리 삶이 편안하고 행복해진다고 믿으며, 정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지은 책으로 <스웨덴을 가다>, <불편할 준비>(공저),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내 손으로 만드는 내 삶을 위한 정치>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url.kr/jikh9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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