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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기 전 복수초
 꽃을 피우기 전 복수초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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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전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옛날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 도로가 뚫리기 전에 이곳은 어땠을까? 저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에 저 땅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만약 지금처럼 도시가 발달되지 않았을 때, 냇가 물이 깨끗한 물로 흐르고 있었을 때, 산업 발달로 인한 오염원들이 자연의 산과 들에 뿌려지지 않았을 때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극적인 궁금함은 '생물학적 다양성이 얼마나 있었을까'이다. 요즘 멸종위기 식물, 희귀식물이라 일컫는 식물들이 흔하게 들판에 살고 있었을까? 궁금한 것이다.

지금은 식물원이나 국립공원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복수초, 바람꽃, 얼레지, 깽깽이풀 따위가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을까? 냉이, 꽃다지, 토끼풀처럼 말이다. 상상만 해도 황홀해지는 풍경이다.

봄이 오고 있어 더욱 보고 싶은 꽃이 있다. 우리나라 야생화 중 가장 일찍 꽃을 피운다는 복수초다. 아직 차가운 눈과 얼음이 남아있어 이른 봄보다 늦은 겨울이라 느껴지는 이맘때 노란 꽃이 아주 강렬하게 피어나는 키 작은 풀이다.

눈 속에 핀 연꽃이라 해서 '설연화', 얼음 사이에 핀다고 '얼음새꽃'이라고도 부른다. 복수초라는 이름이 주는 어감이 크기에 사람들은 엉뚱한 상상을 한다.

예전에 <노란 복수초>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대충 들리는 얘기로는 배신을 당한 한 여자의 처절한 복수가 주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좀 황당했다. 복수초의 모습 어디에서도 그런 처절하고 무서운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는데 단지 이름 때문에 그렇게 쓰이지 않았나.

복수초의 복수는 그런 복수가 아니라 '복'과 '장수'를 뜻한다. 추운 겨울 얼음을 뚫고 피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그 해 찾아올 복과 오래 사는 장수를 기원하는 꽃이다.
 
쌓인 눈을 뚫고 올라온 복수초
 쌓인 눈을 뚫고 올라온 복수초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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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복수초를 만난 건 한택식물원이었다. 제주 식물원에서도 보았다. 그 외 전국의 많은 식물원에서 복수초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복수초는 식물원에만 사는 식물인줄 알았다. 많은 인터넷 자료에서도 식물원이나 국립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이 올라왔다.

그러다 용인의 마구산(말아가리산), 부아산 등 여러 곳에서 복수초가 자생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소식만 들었을 뿐 직접 보지 못했는데 용인중앙공원에서 복수초를 보았다.

식물원처럼 손길이 많이 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공원 한 구석 골짜기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에 반가움을 넘어 감동이었다.

'설마 자생? 에이 누군가가 심어놓았겠지'라고 소극적 결론을 내렸지만, 온실과 화단이 아닌 숲에서 본 복수초는 정말 멋졌다. 그 후로 다른 공원에서 무심하게 피어있는 몇 송이를 보며 이름 모를 외래꽃보다 우리 꽃 복수초를 알아봐주는 것에 그저 관계자들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노란 복수초
 노란 복수초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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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풀이다. 여러해살이풀로 한번 뿌리로 자리를 잡으면 매년 그 자리에서 나온다. 필자는 2007년경 한택식물원에서 단돈 천원에 복수초 화분 하나를 사서 집 마당에 심어놓았다. 그 후로 이사를 두 번이나 다니면서도 항상 최우선으로 데리고 다녀 현재의 마당까지 오게 되었다.

작년 봄까지 예쁘게 꽃을 피웠는데, 작년 가을에 자리를 옮겨 햇빛이 더 잘 드는 곳으로 옮겨주었다.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고개를 내밀까 설렘으로 기다리고 있다. 아직 소식은 없다. 뿌리를 옮겼으니 몸살처럼 앓이를 하려나 걱정이다.

복수초는 밝게 빛나는 노란 꽃을 피운다. 줄기는 채 한 뼘도 안되게 자라지만 꽃은 민들레보다 크게 핀다. 키는 작은데 꽃은 그에 비해 커서 땅바닥에 노란 꽃들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잎의 안쪽이 햇빛을 받으면 눈이 부신다. 사진을 찍게 되면 반사되어 제대로 색이 나오지 않는다. 이 반짝거리는 노란 꽃잎은 마치 둥근 안테나 접시처럼 안으로 둥글게 모여 태양광조리개의 반사판처럼 햇빛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꽃잎 안쪽과 바깥쪽 온도 차이까지 생기게 한다.

이른 봄 간신히 날갯짓을 하며 찾아온 부지런한 벌들을 유혹한다. '이불 밖은 위험해' 하듯이 오랫동안 꽃 안에 머물게 꼬드긴다. 그렇게 핀 꽃은 봄이 무르익을 때 쯤 열매를 만들어내는데, 건빵 안에 들어있는 별사탕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이 열매는 갈라지며 하나하나 씨앗들이 떨어져 벌레들의 도움을 받아 멀리 퍼진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잎도 줄기도 모두 사라지고 땅위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하고 사라져 뿌리 속에 모든 것을 품고 기다린다. 이듬해 봄이 오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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