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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노동자, 시민들은 자본의 이익이 중심인 사회가 아니라, 상호 돌봄하며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하고 있지만, 현재 대선 국면에서는 상호 돌봄은 커녕 또 다시 성장 중심, 자본 중심의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공약들만 난무한다.

노동자도, 여성도 보이지 않는 대선을 앞두고 여성노동자회는 기획기사 <성평등노동 없는 대선, 여성노동자가 말한다>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7회의 기획 연재 기사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대선 의제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편집자말]
지난 2020년 3월, 20대 여성 12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그 다음으로 40대, 50대, 30대 순으로 일자리를 잃어, 그해 고용통계 중 전체 취업자 감소의 61.5%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고용 위기와 실업 위기에 대해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사이 20대 여성의 자살 사망률은 전년 대비 43%가 증가했다(출처 : 슬랩<'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겠으나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시급했다.

지난해 2030 여성노동자들과의 집담회를 통해 성차별적 상황들이 노동 현장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서비스 업종에서 입직과 퇴직을 반복했던 D씨의 이야기를 통해 해당 업종의 성차별 문제를 좀 더 면밀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통계, 숫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90년대생 여성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고발하고, 동시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음은 지난 2월 말 진행한 D씨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직할 때마다 발생하는 채용성차별

- 현재 노동을 하고 있고 4번째 일터라고 하는데, 어떻게 4번째 일터까지 오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직 사유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근로조건이 좀 더 좋은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업장이 작은 곳에서는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직을 하면서 '그래도 좀 더 큰 사업장에서는 여성노동자가 육아휴직 후 복귀는 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성차별은 있더라고요."

- 그동안 면접도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채용 성차별을 직접 경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채용성차별은 면접 볼 때마다 있었어요. 면접 당시 남자 지원자도 함께 있는데, 기본적인 면접 질문들이 오가고, 여성인 저에게만 오는 질문이 있었어요.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은 언제쯤 할 건지, 임신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이게 성차별적인 질문인지 알았지만 어쩌겠어요. 취업은 해야 하고 면접 질문에는 답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리고 성차별적 질문을 하는 것도 상당히 불쾌했지만, 더 불쾌했던 것은 면접관들이 저를 앞에 두고 "근데,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두지 않나?" 등으로 잡담하고, 비아냥대는 거였어요. 결혼과 임신 계획이 없다고 대답했기 때문인지 합격은 되었지만, 저는 입사하지 않았어요. 입사를 한다 해도 뻔히 보였어요. 앞으로 더한 성차별적인 상황들이. 그리고 합격 안내를 받았을 때 성차별이 일어난 상황을 얘기했고, 해당 사유 때문에 입사를 취소한다고도 말했지만 어떠한 사과의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어떠한 조치도 없었어요.

면접을 볼 때마다 결혼·임신·출산의 질문들을 받은 경험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결혼·임신·출산의 계획에 따라 합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너무 잘 알았죠. 제가 면접을 보면서 후회스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비출산'을 제 무기처럼, 장점처럼 어필했던 적이에요. 합격에 대한 간절함과 불합격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저도 모르게 '출산의 계획이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계속 근무가 가능하다'라고 어필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후회스러워요. 그리고 면접을 볼 때 나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순간이에요."
 
2018년 4월 금융권 채용성차별을 규탄하기 위해 KEB하나은행 앞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한<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의 모습. 한국사회에 만연한 채용성차별은 2018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2018년 4월 금융권 채용성차별을 규탄하기 위해 KEB하나은행 앞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한<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의 모습. 한국사회에 만연한 채용성차별은 2018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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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성차별, 입사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채용성차별이라는 성차별적 관문을 뚫고 회사에 들어가서 이제 겨우 한 숨 돌리나 싶은데, 사실 회사에서 일하는 도중에 많은 성차별이 발생하잖아요?
"네, 맞아요. 일을 하면서는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성차별이구나' 했어요. 여성 1명, 남성 1명, 이렇게 신입으로 입사를 했을 때, 직원들끼리 인사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저를 소개해 줄 때 여자 신입사원에게는 "D 선배님이세요"라고 소개해 줬고, 남자 신입사원에게는 저를 소개해 주지 않았어요. 그 후 여자 신입사원은 저를 "D 선배님"이라 불렀고, 남자 신입사원은 "D 씨"라고 불렀어요. 그러고 나서 후 팀장님과 호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팀장님은 가볍게 "남자가 가오가 있지, 여자한테 선배라고 하면 안 되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이건 단순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황당했어요. 그 팀장님도, 그 남자 신입사원도 이해가 안 됐어요."

- 일터에서 일하면서 비혼, 비출산을 결심하게 되는 성차별적 조직문화를 겪었다고 들었는데, 좀 더 이야기 해주실 수 있나요?
"이 계열에서 일하면서 적어도 팀장까지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팀장이라는 직급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물어봤어요. 돌아오는 답변은 "글쎄, 여자가 팀장을 할 수가 있나?" 였어요. 이유는 결혼과 임신, 출산이었어요. 그래서 "결혼을 안 하면요?"라고 또 물어봤어요. 그러자 "에이~ 여자가 어떻게 결혼을 안 해"였어요. 이후 나름 응원의 말을 덧붙였는데 "그럼 대리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대리까지는 해봐"였어요. 전 단지 팀장까지 빨리 이루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한계만 느꼈고, 내 결혼에 대해 계획까지 부정당했어요. 그리고 팀장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답변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어요.

여주임님과 남주임님이 계셨어요. 같은 주임님이셨지만 입사는 여주임님이 1년 더 빨랐죠. 하지만 승진은 남주임님이 먼저 했어요. 그것을 보고 '얼마나 능력이 뛰어나면 1년 늦게 입사했는데 빠르게 승진했지?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팀장님께 어떻게 해야 빨리 승진할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제 곧 아기 아빠가 되잖아. 아기랑 가정도 책임져야 하는데 승진해야지." 너무 황당했어요. 그리고 더 황당한 것은 그때 승진 누락이 된 여주임님이 임신을 했는데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 때 느꼈어요. 이게 말로만 듣던 바로 성차별이구나. 그리고 그 일로 전 비출산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전 일을 오래 하고 싶고 승진도 하고 싶거든요.

여직원이 그만두었는데 그 자리를 남직원으로 채용하라는 얘기가 있었어요. 일을 하면서 여성 상사들이 없어졌어요. 제가 봤을 때 꼭 남직원으로 채용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상했어요. 그래서 물었어요. 답변은 "여직원한테는 야간근무를 못 시키잖아." 였어요. 더 궁금해졌어요. 왜 여성은 야간에 근무를 할 수 없는지. 그래서 또 물었어요. 그러자 또 돌아오는 답변은 "범죄에 노출될 수 있잖아." 그러고 보니 야근 근무조가 남-여, 또는 남-남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범죄의 피해자도 여성, 일자리의 피해자도 여성이 되어버리는 것이 너무 부당했고 화가 났어요."
 
2019년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 3회 3시 STOP 조기퇴근시위>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피켔을 들고 있다. 직장에서 직접 듣고 겪었던 성차별적 언행을 드러내고 이를 문제제기 하는 발언을 하고있다.
 2019년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 3회 3시 STOP 조기퇴근시위>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피켔을 들고 있다. 직장에서 직접 듣고 겪었던 성차별적 언행을 드러내고 이를 문제제기 하는 발언을 하고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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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가 겪는 차별, '구조적 성차별'

- 현재 일하고 있는 서비스 직종의 경우 성차별이 더 심하다고 하잖아요. 실제로는 어떤 성차별이 있나요?
"서비스 업종에서 근무를 계속했는데, 이 계열만의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같은 부서 같은 업무를 하더라고 여성노동자에게는 과한 친절을 요구해요. 그리고 복장 규정 자체도 굉장히 성차별적이에요. 남성노동자에게 요구되는 규정은 '단정' 수준이에요. 검은색 구두, 면도, 단정한 헤어스타일 정도로 되어있어요. 남성노동자에 대한 내용이 1장이라면 여성노동자에 대한 내용은 3장이에요. 귀걸이 크기와 종류, 스타킹 색깔(살구색), 구두 굽 높이, 과도한 색조화장 금지, 코랄이나 핑크 계열의 립스틱 사용, 헤어스타일(쪽 머리, 머리 볼륨 등)에 대한 내용이 아주 세세하게 적혀있어요. 남성들도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를 할 수 있는 건데 그에 대한 규정은 없어요. 그리고 여성에게는 면도에 대한 규정이 없어요. 면도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이 할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제모를 한다는 인식때문에 그래요.

이 계열에서 복장 규정은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상대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지적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리고 지적하고 관리, 감독하는 고위직은 거의 남성노동자인데 이러한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성차별을 악화시키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업무를 하는 남자 사수가 제게 "너는 왜 쿠션어를 안 써?"라며 지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제게 지적한 그 남자 사수는 쿠션어(무언가를 부탁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해야 할 경우 좀더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을 가리킨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를 전혀 쓰고 있지 않았어요."

- 서비스 업종이 성차별이 더 많이, 쉽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잖아요. 계속 같은 계열에서 근무한다는 것에 두려움이나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이 일을 좋아하고 오래 하고 싶어요. 그런데 성차별 때문에 두려워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될까봐, 내 의지와 상관없이 퇴직하게 될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성차별이 일어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서 안 좋게 그만두게 된다면 이 계열에서 다시 취업하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부당한 일이 있어도 강하게 말하지 못하고 퇴사할 때도 좋게 마무리하려고 해요. 면접 과정 중에 서류 합격 후 이전 회사에 연락해서 지원자에 대해 확인하니까요."

- 모든 여성노동자들이 같은 고민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직업군에 따라, 노동환경에 따라 조금씩 상황만 다를 뿐 채용 성차별, 유리천장, 경력단절 등 성차별 상황에 계속 놓이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에서는 성차별은 이제 없다, 여성가족부도 폐지해야 한다, 성별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다, 등의 이야기들이 있어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단순히 우기고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세계적인 통계만 봐도 대한민국 성차별 문제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에요. 성차별 문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쭉 이어져오고 있어요. 데이트 폭력 사건만 봐도 대다수의 피해자가 여성이에요. 임원직의 여성 비율만 봐도 알 수 있고, 권고사직의 사유도 회사 측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결혼, 임신, 출산'이라고 실제로 듣고 있어요. 현실을, 사회를 제대로 보고 계신 분들의 발언인지 궁금하네요."

-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와 차별, 성차별 현실을 외면하는 사회와 정부에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그저 '평등'해지고 싶다는 주장을 비난하고 외면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사실, 지속해서 성평등을 외치고 요구해 왔지만 바뀌지 않는 사회를 보며 무력감이 들기도 해요. '여성 상위시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을 원하는 거잖아요? 너무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외면하고 나아지지 않는지... '페미니스트도 국민이다', '같이 사람답게 살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 같은 세대의 여성노동자, 친구,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내 권리는 내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권리와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유별난 게 아니에요. 당연한 일인 거지. 질타를 받을 일이 아니에요. 물론, 두려운 마음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혼자가 아닌 다 같이, 함께 할 때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고, 정말 당당하게 내 권리를 찾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부모님 세대는 우리보다 성차별적 상황들에 있어서 더 수용적이고, 익숙해져 있어요. 이제는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우리가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90년대생 D씨의 노동 경험은 입직 과정부터 부당하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채용 과정에서 하나의 스펙이 되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배치와 승진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현실은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갖게 한다. D씨는 2022 여성노동자가 제안하는 대선 의제 중 <성평등한 일터 :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우선 과제로 꼽는다. 성별임금격차는 D가 경험한 노동과정 전반의 차별의 결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고, D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이러한 차별이 사라진 성평등한 사회다. 여성노동자들이 평등하게 일하고 싶다는 목소리에 이제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할 때이다.
 
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동조합이 발표한 20대 대선의 카드뉴스 중. 이번 대선 의제에서는 채용과정부터 발생하는 성차별을 시작으로, 취업후에도 독박육아/가사, 승진에서의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을 없애고 성평등한 일터로 나아가야함을 주장하고 있다.
 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동조합이 발표한 20대 대선의 카드뉴스 중. 이번 대선 의제에서는 채용과정부터 발생하는 성차별을 시작으로, 취업후에도 독박육아/가사, 승진에서의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을 없애고 성평등한 일터로 나아가야함을 주장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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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안산여성노동자회 활동가입니다.


태그:#20대 대선,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채용성차별, #직장내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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