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의 동계체전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 전북도청 여자 컬링팀. 왼쪽부터 엄민지·신가영·송유진·이지영·신은진 선수·정다겸 감독.

8년만의 동계체전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 전북도청 여자 컬링팀. 왼쪽부터 엄민지·신가영·송유진·이지영·신은진 선수·정다겸 감독. ⓒ 박장식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이 어울리는 여자 컬링 판도에서 유독 겉돌았던 팀이 있다. 잦은 선수단 교체, 컬링장 부재로 인한 훈련 부족이 발목을 잡곤 했다. 한국 최초의 여자 컬링 실업팀, 여자 컬링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최초의 팀이라는 별칭도 무색했다. 

그런 팀이 다시 용틀임을 시작했다. 지난 달 열렸던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성인부에 배정된 금메달 세 개 중 두 개를 가져가는 쾌거를 거둔 것. 특히 한국 컬링대회에서 첫 번째 '2연패'를 거둔 선수가 배출되는 등 한국 컬링의 새로운 재목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전북도청 컬링팀 선수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열린 동계체전 믹스더블과 4인조에서 모두 우승하며 한국 컬링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특히 전북도청 이적 이전까지 성인무대에서 한 번도 스킵을 맡아본 적이 없었던 엄민지 선수는 2관왕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국가대표 경력 선수들 이긴 '팀 케미'

'스타플레이어' 송유진 선수도, 로컬보이 신가영 선수도 국가대표에 나섰던 경험은 없었다. 그나마 엄민지 선수가 소치 올림픽에도 출전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그마저도 스킵 대신 다른 포지션에서 출전했던 데다 믹스더블은 코로나19 탓에 해외 투어 경험마저도 없었다.

지금의 선수단 구성이 완성된 것도 2021년 초의 일이었다. 너무나도 짧았던 팀 구성 기간 때문인지 선수들은 지난해 있었던 한국선수권에서 고교팀에 패배를 거두며 4강 진출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우승을 전북도청 선수들이 해냈다.

많은 이들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우승을 전북도청 선수들이 해냈다. ⓒ 박장식

 
동계체전 여정도 쉽지 않았다. 전북도청 4인조 선수들의 경우 최근 창단한 경일대학교 여자팀, 경기도청, 그리고 지난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춘천시청을 연달아 상대해야만 했다. 믹스더블이야 유일한 실업팀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우승 가능성이 있더라도, 4인조는 전북도청의 우승을 예상했던 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체전이 끝난 후 엄민지 선수도 "사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누가 우리가 경기도청을 이기고, 춘천시청도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을까"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어려운 싸움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빛났던 것은 선수들의 팀 케미였다. 

물론 낭보도 있었다. 남윤호 선수와 엄민지 선수는 대회 첫 일정이었던 믹스더블 우승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준결승전에서 강원도 이예준 - 김은비 조를, 결승에서 박정화 - 최치원 조를 꺾은 두 선수는 첫 단추를 기분 좋게 끼울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4인조 레이스. 첫 경기에서 경일대 선수들을 잡아낸 전북도청은 서울컬링클럽 선수들을 잡아내며 4강에 올랐다. 4강 상대는 경기도청이었다. 엄민지 선수는 지난 2020년 경기도청 시절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던 선수들을 적으로 만나야 했다.

하지만 경기가 쉽지 않았다. 전반에서는 경기도청이 리드를 잡으며 전북을 몰아세웠다. 서로의 작전을 잘 아는 어려움 속에 10엔드까지 리드를 찾지 못했던 전북도청은 막판 역전극에 성공하며 극적으로 결승행에 성공했다. 스킵 엄민지의 드로우가 빛났던 경기였다.

이대로 선수들은 멈추지 않았다. 결승에서 지난 대회 '디펜딩 챔피언' 춘천시청을 만났다. 춘천시청은 후반 자신들의 후공 엔드에 두 점씩을 몰아치며 압박을 이어갔다. 하지만 연장전까지 끌고 간 승부 끝에 전북도청이 극적으로 승리했다. 2014년 이후 8년간 무관에 그쳤던 전북 컬링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한 명씩 한 명씩 스카우트... 정다겸 감독의 열정 빛났다
 
 국내 컬링대회에서 첫 2연패를 달성한 전북도청 엄민지 선수.

국내 컬링대회에서 첫 2연패를 달성한 전북도청 엄민지 선수. ⓒ 박장식

 
전북도청의 동계체전 우승은 8년 만의 일이다. 2014년 우승 이후 오랫동안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지역에 컬링장도 없었던 데다, 선수들도 너무 자주 바뀌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2017년 정다겸 감독이 부임했다.

2007년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로 금메달을 따기도 했던 정 감독은 5년이라는 긴 시행착오를 거쳐 전북도청의 부활을 이끌었다. 선수들 하나하나를 직접 데려왔다. 지금의 선수층은 그런 정 감독의 노력 덕분에 만들어졌다. 영입 당시 서울시립대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이지영 선수는 코리아컬링리그 당시 '실업팀에서 컬링을 이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바 있다. 그런 간절함에 손을 내민 것 역시 정 감독이었다. 현재 이지영 선수는 팀의 리드로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스타플레이어' 송유진 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 훈련 부족 등 어려움에 빠져있었지만 정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지금은 팀의 기둥이 된 엄민지 선수도, 그리고 믹스더블에서의 활약에 더해 '플레잉 코치'처럼 선수들을 돌보는 남윤호 선수도 정 감독이 직접 영입한 선수다.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정조준하는 선수들
 
 정식 종목이 된 믹스더블 컬링에서 초대 우승팀이 된 엄민지 - 남윤호 조.

정식 종목이 된 믹스더블 컬링에서 초대 우승팀이 된 엄민지 - 남윤호 조. ⓒ 박장식

 
선수들은 오는 6월 개최될 예정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이변을 써내려간다는 각오다. 

물론 뜻밖의 소식도 있었다. 정다겸 감독이 이번 동계체전을 마지막으로 용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 특히 용퇴 의사는 선수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탓에 우승 직후 선수들이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고. 하지만 선수들이 정 감독에게 팀에 계속해서 남아달라는 요청을 이어왔고 정 감독도 고민의 시간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편, 선수들은 계속해서 다음 도전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지영 선수는 "동계체전 이후에도 체력은 물론 실력을 보강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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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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