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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m 가설덧집을 뒤집어쓴 진남관 모습. 필자가 서있는 길이 좌수영성 성벽을 허물어 만든 길로 일제강점기인 1916년 성벽을 허물어 해안매립 공사를 하고 민가를 조성하면서 좌수영성이 사라졌다.  현재 뜻있는 여수시민들이 좌수영성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5m 가설덧집을 뒤집어쓴 진남관 모습. 필자가 서있는 길이 좌수영성 성벽을 허물어 만든 길로 일제강점기인 1916년 성벽을 허물어 해안매립 공사를 하고 민가를 조성하면서 좌수영성이 사라졌다. 현재 뜻있는 여수시민들이 좌수영성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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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임진 정유 두 왜란 승리의 흔적을 찾아 여수를 방문하는 외지 관광객들이 찾는 첫 번째 방문지는 진남관이다. 그런데 현재 여수를 방문한 외지인들이 보게 되는 진남관의 현재 모습은 철제 가설 덧집을 뒤집어 쓴 건물의 형태다. 보수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현장 공개를 막은 건 아니다. 여수시 홈페이지를 보면 보수 공사 기간에도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사전 온라인예약을 한 사람에게는 1회 30명까지 관람을 허용했다. 하지만 2019년 3월부터는 현장 공개를 일시 중지했다. 여수시 문화예술과 공지에 의하면 진남관 기초하부 유물발굴 조사로 인해 공개 관람을 일시 중단했다고 한다. 

진남관은 어떤 곳?

여수시 군자동 472번지에 위치한 진남관은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진해루' 터에 세운 75칸의 대규모 객사이다.

진남관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748.39㎡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 중 가장 크다. 1963년 1월 보물 제324호로 지정된 이후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승격됐다.

남쪽의 왜구를 진압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鎭南館)'이라 칭한 이 건물은 171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 이제면 수사가 다시 지었고, 1718년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진남관 유물전시관에서 촬영한 좌수영성 디오라마이다. 종고산 아래 가장 큰 건물이 진남관으로 좌수영성의 핵심건축물이랄 수 있다.
 진남관 유물전시관에서 촬영한 좌수영성 디오라마이다. 종고산 아래 가장 큰 건물이 진남관으로 좌수영성의 핵심건축물이랄 수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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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 내에는 600여 칸으로 구성된 78동의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모두 사라지고 현재 진남관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진남관 보수·정비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안전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면서 추진하게 됐다.

총사업비 150억 원 규모의 보수공사는 지난 2015년 12월 착공됐다. 문화재 시굴조사 등으로 1년간 중지되기도 했으나 2017년 5월 재개됐고 여수시청 홈페이지에 기록된 완공 예정은 오는 2020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여전히 공사 중이다.

보수공사, 언제쯤 끝날까 

여수시민의 자랑거리이자 여수 역사문화 1번지를 찾은 외지인들은 가설덧집에 가려진 진남관 모습에 실망을 금하지 못하며 돌아선다. 7년간이나 보수 공사하는 모습을 바라본 시민 중에는 "도대체 뭐하는 거냐?"며 불만을 나타내는 분도 있다. 물론 보수 공사의 어려움도 인정한다. 
고소동 526번지 골목길과 민가 담장에는 크기 1m가 넘는 막돌들을 쌓아 만든 축대가 있어 좌좌영성 성체로 추정된다. 고소대 뒷쪽 높은 지대에 있어 여러명이 운반해야할 만큼 쿠고 무거운 돌을 쌓아 만든 축대이기 때문에 더욱 더 좌수영성 성체로 추정된다.
 고소동 526번지 골목길과 민가 담장에는 크기 1m가 넘는 막돌들을 쌓아 만든 축대가 있어 좌좌영성 성체로 추정된다. 고소대 뒷쪽 높은 지대에 있어 여러명이 운반해야할 만큼 쿠고 무거운 돌을 쌓아 만든 축대이기 때문에 더욱 더 좌수영성 성체로 추정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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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신식 기자재와 시설을 갖추고도 보수 공사가 길어지는 상황이 무척 아쉽다. 여수시에서는 원래 2020년까지는 보수 공사를 마치겠다고 공지했지만 진남관 앞 게시판에 적힌 공사기간을 보면 '2015.12~2022.05'이라고 수정해 다시 쓴 흔적이 보인다.

하여 여수시 문화예술과 공사담당자에게 7년 동안이나 보수 공사하는 이유를 들었다.

"2016년 5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시굴 조사하면서 가설덧집을 축조하고 2018년부터는 진남관 건물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2019년 2월부터 2020년 7월까지 공사 중지에 들어갔다. 이 기간 중 원형복원을 위해 용역을 실시하고 2020년 7월에 공사 중지를 해제한 후 연속공사를 했다. 2021년 4월부터 7월까지 또다시 3차 발굴 조사하면서 공사가 지연됐다."
  
진남관 야경 모습. 임진 정유 두 왜란 승리의 주역인 좌수영성의 핵심건축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 중 가장크다. 1963년 1월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 304호로 승격됐다.
 진남관 야경 모습. 임진 정유 두 왜란 승리의 주역인 좌수영성의 핵심건축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 중 가장크다. 1963년 1월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 304호로 승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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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절 진남관이 여수공립보통학교로 전용되어 전승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손상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진남관이 여수공립보통학교로 전용되어 전승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손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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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답변에 의하면 "원형복원을 위해 전문가의 자문을 수용하면서 공사하다 보니까 지연됐다"는 것이다. 늦어진 이유를 정리하자면 3번의 발굴조사 때문에 공사가 지연됐다는 설명이다. 처음부터 시굴 조사를 철저히 마친 후 공사에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진남관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진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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