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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7개월간의 항암치료를 끝냈다.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난 이후로 10개월이라는 긴 시간,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지났다. 당사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힘들었고 가족들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가족 간의 사랑과 관심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깊은 연대를 느끼는 하나됨의 시간이기도 했다.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던 12회 차의 항암치료, 마지막 치료 후 진행한 CT촬영과 피검사 결과도 큰 이상이 없었다. 수술 부위를 확인하기 위한 내시경 검사도 진행했다. 내시경 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을 소화기내과의 의사로부터 들었다. 이제 조직검사 결과와 수술 담당 의사의 최종 진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남은 것 

치료의 과정은 끝난 듯 마음을 놓게 하면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것 같다. 남편의 경우, 손발 저림 증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증상이 심해 물었더니 짧게는 두어 달, 길게는 1년까지 이어질 거라고 말했다. 음식에 대한 울렁거림은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섭식을 위한 음식은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관건이다. 

이번 치료가 잘 되었어도 앞으로 5년 동안은 암의 예후를 지켜봐야 한다. 또 이상 반응이 있을 때마다 무시로 검사가 진행될 거라는 말이 있었다.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다면 6개월에 한 번씩의 검사가 남았지만, 앞으로 몸의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암의 완치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남은 에너지를 끌어모으며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애써왔다. 무엇보다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얼마간의 보험금과 건강보험의 혜택 덕분이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는 입퇴원을 반복할 때마다 보험금 청구를 위한 서류가 필요한지를 물었고 언제든 요청하면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챙겨주었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연장이었던 것 같다.

대장암은 건강보험 산정특례지원에 따라 진료비의 5%만 받는다. 5%라는 정확한 계산법은 잘 모르겠지만, 본인 부담 금액이 200만 원이 나오면 대략 2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청구되었다. 암수술 비용으로 300만 원가량의 큰 금액이 병원비로 청구되었고, 그 이후 12회 차의 항암치료에서는 3박 4일 입원할 때마다 10만 원이 조금 넘는 입원치료비를 정산하곤 했다.

건강보험 산정특례지원제도는 확진일 이후 5년간 적용을 받게 되니 앞으로도 병원비가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산정특례제도의 신청은 병원에서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대행해 주었던 것 같다. 산정특례제도로 인해 지금까지 수술비와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치료비로 들어간 비용은 총 500만 원 정도 된다. 남편의 경우는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 입원하고 치료했기 때문에 따로 간병을 위한 비용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아직 치료비 전체의 정산을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일단락된 것 같기는 하다. 건강보험에는 본인부담 상한제라는 것도 있어서 건강보험 가입자가 1년 동안 지불한 의료비 중 본인부담 총액이 개인별 상한금액을 초과할 경우, 건강보험공단에서 초과 금액을 돌려주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천천히 알아보아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암에 걸리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고 생계가 위협받을 거라는 공포는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직후 병원에 수시로 전화해서 영양사에게 물었던 섭식에 관한 것들을 지금은 묻지 않는다. 항암 치료의 과정에서는 가려야 할 음식에 신경 쓰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병원에서는 강조했고 환자가 잘 먹는 것에 가족 모두 집중했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제한적이었고 몇 안 되는 종류나마 기피하지 않고 먹도록 환자의 마음을 다독이는 데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수술에 이은 8개월의 치료가 끝났지만 입맛이 완벽히 돌아온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편은 중환자이고 아직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많다. 그럼에도 조금씩 생활의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외출이 길어졌다. 잠깐만 나갔다 와도 피곤해했는데 이제는 긴 시간 외출도 가능하다. 
 
흔들리는 다리가 몸의 균형감각을 빼앗고 어지럽게 했지만 그마저도 유쾌하게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었다.
▲ 양주 마장호수 출렁다리 흔들리는 다리가 몸의 균형감각을 빼앗고 어지럽게 했지만 그마저도 유쾌하게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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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치료가 끝난 기념으로 제주 3박 4일의 여행도 다녀왔다. 정말 몸만 단출하게 갔고 바닷가 해안도로를 3일간 나누어 천천히 돌았다. 때가 되면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피곤하면 차를 멈추고 바다를 봤다. 가늘게 산발적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차창을 내리고 제주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긴장을 풀고 특별한 목표가 없는 한가로운 여정도 썩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집 밖의 음식도 찾아다닌다. 이전에는 먹지 못하는 아쉬움을 먹방을 보며 한풀이하듯 같이 보곤 했는데, 이제는 맛집을 검색하고 멀지 않은 곳은 주말을 이용해 방문하기도 한다. 하루 종일 처지고 맥없이 쓰러지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느 정도는 일상을 회복한 듯하다.

이 화분처럼, 우리의 계절도 만발하길 

계절의 감각도 느낀다. 지난해 봄 이후로 잃어버린 계절과 시간이었는데, 올해의 봄과 다가올 여름은 하나하나의 현상을 예민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봄소풍도 다녀왔다. 양주의 마장 호수에 갔고 호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흔들리는 다리가 몸의 균형감각을 빼앗고 어지럽게 했지만 그마저도 유쾌하게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었다.

호수를 빌 둘러 조성된 산책길을 한 바퀴 걸으며 봄의 기운을 만끽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원하는 곳에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하고 신기했던 경험이었다.

돌아오는 길, 화원에 들러 화분도 하나 샀다. 1년 가까이 식물을 기르는데 열중하고 있다. 지난 1년은 식물들이 가족 모두에게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주었던 것 같다. 잘 자라는 모습, 싹이 올라오고 어느새 풍성한 잎으로 변하는 모습과 겨우내 따뜻한 실내에서 철 모를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며 물과 적당한 온도, 햇빛만 주면 무럭무럭 잘 자라는 생명의 신비를 가족 모두 남다르게 느꼈던 것 같다.

백합과의 '송 오브 인디아'라는 굵은 대에 입이 무성하고 제형이 멋진 화분이었다. 실내 조경에 자주 사용되고 공기를 정화한다는 매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꽃말이 번영과 영광이란다. 다른 어떤 조건보다 우울했던 지난해를 보내고 앞으로의 가정의 화목과 번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더 반가웠다면 내 생각이 지나친 걸까?
 
앞으로의 가정의 화목과 번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더 반가웠던 식물이었다.
▲ 얼마 전 사온 화분 "송 오브 인디아" 앞으로의 가정의 화목과 번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더 반가웠던 식물이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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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항암치료, #치료비, #봄맞이, #생명의 신비, #식물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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