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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테니스를 배운 지 두 달이 됐다. 재등록 시즌이다. 남편과 2:1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남편은 이제 혼자 레슨을 받겠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테니스를 배우고 싶다고 하자, 잘됐다며 딸과 함께 2:1 수업을 받으란다.

"그래, 나도 그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운동신경이 있는 남편과 몸치인 나는 레슨을 받을수록 점점 실력 차가 커졌다. 내가 수긍하니 남편은 몇 마디를 덧붙인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 실력은 첫 달보다 나아진 게 없어."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파트너가 딸로 바뀌었다
 
볼 머신을 하는 아이.
 볼 머신을 하는 아이.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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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쿨하게 인정했다. 헛스윙 비율이 너무 높다. 며칠 전에야 공이 가까이 오면 내가 눈을 감아 버린다는 걸 알았다. 어쩐지 공이 라켓에 맞는 게 안 보이더라.

"그리고 또 솔직히 말하면."

그냥 이어서 말해도 되는데 남편은 앞부분만 말하고 살짝 내 눈치를 본다.

"자긴 다리를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야. 그런데 왜 선생님들은 그 말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

그렇다. 내 발은 흡사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마냥 움직이지 않는다. 공이 오는 방향으로 다리가 착착 움직인 다음 스윙을 해야 하는데 왜 그게 안 될까. 같은 자리에 서서 냅다 팔만 휘두르니 공이 잘 맞을 턱이 없다. 난 대답했다.

"선생님들이 그 얘기를 안 하는 이유는 그 이유까지 가기 전에 지적할 다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 어깨도 안 돌아가고 손목도 틀어져 있고 그립도 잘 못 됐으니 말이야."

남편과의 대화 후 나는 딸과 2:1 레슨을 신청했다. 딸과 레슨을 받고 나서 생애 처음 느끼는 어색함을 경험했다. 남편과 배울 때는 "팔에 힘을 빼세요", "손목을 고정하세요" 등등 여러 조언을 들었는데 한순간에 입장이 바뀌었다.

선생님은 딸에게 "엄마처럼 공을 끝까지 봐"(엥? 내가 그랬다고?), "엄마처럼 힘껏 쳐야지"라고 말씀하신다. 운동하면서 이런 칭찬은 처음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냥 못 들은 척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래, 더 공을 끝까지 봐야지', '더 힘껏 백스윙을 해서 공을 휙 날려 버려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조언만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역동이다.

아이와 테니스장에 가는 시간에는 어린이들이 많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밖에서 대기하고 아이들만 레슨을 받는다. 엄마들은 아이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한다. 선생님은 그런 모습이 익숙하셔서일까, 나와 아이의 2:1 레슨에서 아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신다.

"엄마보다 네가 더 많이 쳐야지"라고 하시기도 하고 마지막에 아이만 더 많이 치고 레슨이 끝나기도 한다. 난 여기서도 누구의 엄마가 된 것 같아 조금 서운하다. 그런 날은 더 긴 시간, 더 열심히 볼머신으로 연습한다.

다른 기술을 특별히 더 배우지는 않고 예전에 배운 포핸드와 백핸드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첫 달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라켓을 휘두를 때 팔에 힘을 빼야 한다는 것, 손등이 몸쪽을 보게 해야 한다는 것, 발 앞에 공이 오는 타이밍에 쳐야 한다는 것. 그 말들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퐁퐁 튀어나온다.

'포기했으면 어쩔 뻔 했어. 아예 안 되는 게 아니라 조금 늦는 것뿐이야'라고 생각하며 눈에 힘을 주고 기운을 끌어 올린다. 골프에만 '굿샷'이 있는 게 아니다. 공이 라켓에 잘 맞으면 선생님은 '굿샷!'을 외치신다. 지친 상태에서도 '굿샷' 소리를 들으면 힘이 난다. '방금 어떻게 했더라' 되짚어 보게 된다. 아직 연속으로 '굿샷' 소리를 들은 적은 없지만 연습하고 또 하면 몸에 배게 되겠지.

목소리로 테니스를 치더라도

며칠 전,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내가 테니스 칠 때 소리를 크게 낸다는 것이다. 서브 연습을 하는데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오늘도 목소리로 테니스를 치시네요" 하고 웃으셨다. 갑자기 이상하단 생각이 든다.

어릴 적 태권도나 검도를 배울 때 기합 소리를 내지 못해 난감했다. 쥐어짜듯 나오는 목소리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테니스를 칠 때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난다. 공이 라켓에 닿을 때 내는 "으악!", "헛!", "얍!" 등의 소리는 내가 내려고 내는 게 아니라 저절로 나는 소리다. 그 소리가 또 어찌나 큰지.

하루 종일 입을 닫고 있다가 테니스 코트에 가서 그동안 못 냈던 소리를 낸다. 그렇게 소리를 내고 땀을 흘리고 나면 온몸이 개운하다. 테니스를 하는 시간은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결국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랬지. 버티고 버텨 나에게 오는 모든 공을 탕탕 쳐 내고야 말겠어' 하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 문장을 떠올린다.
 
"저질 체력에다 늦게 운동을 시작했다는 핸디캡이 내게는 오히려 약이 되었다. 처음부터 순식간에 잘할 거라고 마음먹었다면 제풀에 지쳐 시들해졌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빨리빨리 잘 해내고 싶지도 않다. 나의 희망사항은 그저 늘 현재형으로, 어제 한 것만큼 오늘도 빠뜨리지 말고, 그저 조금씩 단련하는 것이다. - <마녀체력> 130p

그래, 중요한 건 계속 하는 거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태그:#테니스 , #테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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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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