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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2014.8.14~18)을 맞아 1984년, 1989년 두차례 이뤄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 교황옆은 김수환 추기경.
▲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역대 교황 방한 사진 국가기록원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2014.8.14~18)을 맞아 1984년, 1989년 두차례 이뤄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 교황옆은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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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은 한국천주교 선교 200주년이고 정의구현사제단 출범 10주년이다. 또한 교황 바오로 2세가 5월 3일 방한하는 등 천주교는 큰 행사가 겹쳤다.

방한한 교황은 절두산 성지를 참배하고 김대건 신부 동상에 헌화한데 이어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거행된 성인입교 예식미사의 〈강론〉 그리고 103위의 순교복자들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행사를 주관하였다. 한국천주교회가 설립 2세기를 마감하고 선교 3세기를 향한 것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월 23일부터 이틀간 전주에서 모임을 갖고 정부에 블랙리스트 철폐를 위해 항의하다 구속된 사람들의 석방과 통일문제와 관련 강만길 교수 등을 연행ㆍ구속한 처사를 비판하는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 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 200주년을 맞는 금년이 국민과 민족 내부는 물론 세계의 인간가족 내부에 진정한 화해가 이룩되었으면 하는 우리의 소망을 함께 기도하면서 그것을 위하여 우리의 복음적 노력을 계속하기로" 다짐한다. 
 
국가기록원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2014.8.14~18)을 맞아 1984년, 1989년 두차례 이뤄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
▲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역대 교황 방한 사진 국가기록원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2014.8.14~18)을 맞아 1984년, 1989년 두차례 이뤄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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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정부의 민주화 조처가 단행되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특별사면 청원문제, 양심범 석방, 각종 악법 개폐, 노동자 수탈의 노동정책 시정문제 등을 정부당국에 제안했다. 주교단, 정평위, 가톨릭학생전국협의회,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노동사목연구소, 가톨릭농민회,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가톨릭야학학생연합회 등이 주제별로 또는 연대하여 추진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폭압통치를 멈추지 않았다. 

정의구현사제단은 6월 18~19일 서울 분도회관에서 '전국 성직자모임'을 갖고 선교 3세기를 맞이하는 한국천주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9월 4일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과 관련, 불투명한 일본 방문의 목적에 대해 그 진의를 솔직하게 밝힐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세간에는 미국의 압력으로 전두환이 한일간의 군사협력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방일한다고 알려졌다. 사제단은 이와 관련 과거 한국 침략의 당사자로서 다시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관계 구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히고, 아울러 300억 달러에 가까운 무역역조가 시정되어야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사제단은 9월 24일 명동성당에서 창립 10주년 기념감사 미사를 거행하고 창립 당시 이 민족, 이 사회, 이 역사에 봉헌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결의를 재확인하면서 장문의 〈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선언〉을 채택했다. 11개 항으로 구성된 〈선언문〉의 머리와 꼬리말을 소개한다.  

200년 전 이 땅에서의 천주교의 수용은 당시 민중 세계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여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사목헌장, 4항)에 대한 선구자들의 자발적이고도 거룩한 각성의 소산이었다. 이렇게 보편적 교회의 민족과의 만남은 선구자들의 예언자적 결단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교회사와 민족사에 있어서 다같이 획기적이며 역동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지배체제의 민중에 대한 억압과 수탈, 신분 제도 등 인간을 비인간적 상황으로 몰아넣는 요인들에 대한 인간화의 부르짖음이었고, 따라서 천주교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 이상의 것으로 사회의 인간화와 민족 복음화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가톨릭 신앙의 선택은 자신을 내던지는 결단이었고 순교에로의 도전이었다. 이러한 천주교의 수용 과정은 고난 위에 세워진 교회로 하여금 이 땅, 이 민중 속에서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진정한 모습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호소하고 있다.

사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인간이 사회를 위해 존재하지는 않으므로 정치, 경제ㆍ사회ㆍ문화, 교육, 노동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인간화를 우리는 거듭 호소하고 촉구한다. 또한 우리는 이 사회가 비인간화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자신이 그 속에 함몰되고 침윤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자고 호소한다.

우리들의 인간화를 위한 복음 선포는 정치적, 사회적 압력 단체가 될 뜻에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이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소모되어야 함을 다짐하는 행위로서 인식되어지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는 10년 전인 1974년 9월 26일, 우리가 이 민족, 이 사회, 이 역사에 봉헌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 우리들의 결의를 확인하고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가짐을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온 국민 앞에 다짐하면서 이 민족, 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실천에 구체적으로 솔선할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주석 1)


주석
1> <암흑속의 횃불(6)>, 146~15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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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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