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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에선 완도군청과 각 읍면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사라져 가는 완도군 246개 자연마을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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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읍 용암마을 취재 소식에 서울에 사는 용암마을 출신 김아무개씨는 "내 어릴 적 마을의 이름은 비석지였다. 비석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면서도 "그러나 마을 어디에도 비석은 볼 수 없었다. 비석이 주는 이미지만큼이나 마을의 분위기는 어두웠고 힘들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고 말했다

또 "여느 시골 마을처럼 주민들이 가족처럼 오순도순 정겨움을 나누는 마을이라기보다는 모두가 먹고사는 문제에 힘들어했다. 어른들은 바다로, 일일 노동 현장으로, 부녀자들은 미역 공장으로 생계를 위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에만 매달려온 우리네 가족들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세상의 온갖 고민을 다 가지고 계신 듯 늘어가는 어르신들의 술병과 한숨, 남편 복 없다고 한탄하며 성한 곳 없이 일만 한 어머니들의 모습은 어릴 적 흔히 볼 수 있는 우울한 일상이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했고, 바닷가에서 구리, 고철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다. 엄마를 도와 미역공장에서 미역줄기를 찢으며 나름 생계 현장에서 한몫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한바탕 뛰어놀며 의기투합한 놀이의 추억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도 앞바다는 동네 아이들의 수영장이었고, 마을 뒷산은 전쟁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동네 우물가는 아이들의 놀이 집결터였고, 부모들이 돌보지 못해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왔다.

과거를 회상한 주민 이아무개씨는 "먹고사는 문제에 힘들다고 마을 민심마저 척박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을 공동사업을 할 때면 집마다 한 사람씩 참여하는 울력을 통해 마을의 대소사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또 "언덕 위 수북이 쌓인 쓰레기나 잡초 제거, 골목길 시멘트 포장 공사 등은 마을주민 스스로의 몫이었다. 부모가 일 나가느라 참여할 수 없을 땐 어린아이들도 운력에 참가했는데, 운력하는 날이면 마을주민 전체가 하나 되는 날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일가친척 아무도 없어 향우로서 응원만 하지만, 낙후의 마을에서 웃음이 넘쳐나는 마을로 변화하길 소망해본다"고 희망했다. 

현재 비석거리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토박이들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새롭게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며 마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을책임자인 이장도 완도군 역사이래 가장 젊은 새내기 여성 이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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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부터 마을 이장을 맡은 김유솔 이장은 "청년단체 활동을 많이 하고 있을 당시, 광주로 나가 살다 고향으로 내려온 손순옥 전 이장을 만났다. 어느 날, 마을 회의 때 함께 나가게 됐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좋게 봤는지 추대해줬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경험과 연륜이 많고 무엇보다 마을에 대해 잘 아는 어르신들이 어린 자신을 추대해줬을 때 많이 놀랐다"며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요청에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손옥 이장 재임 시절, 주민들은 스스로 마을가꾸기를 통해 마을의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마을 아래 흉물처럼 방치됐던 언덕은 한편의 수채화처럼 정겨운 벽화로 물들고, 위험천만한 언덕 난간은 안전하고 예쁜 디자인으로 변했다. 울퉁불퉁한 도로는 말끔히 포장되고 마을의 상징인 팽나무는 주민 쉼터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은 새롭게 꾸며져 늦깎이 어르신들의 교육장으로, 마을의 대소사를 이야기하는 정담의 공간으로 변했다. 침침하고 어두운 골목길은 환하게 밝혀졌고, 언덕 위 마을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르신들의 불편함을 줄여줬다.

웃음을 새기는 안전한 비석거리, 도시재생을 통해 주민들이 꿈꾸고 그려나가는 현재의 용암마을이다. 

마을주민들에게는 '오손도손, 도란도란' 정겨움을 나누는 지역공동체로서,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는 옛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는 그런 희망마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마을 출신인 한희석 완도군청 총무과장은 "지금은 용암리에 살고 있지 않지만 인간은 방랑에 대한 동경과 고향에 대한 동경을 함께 가지고 있듯, 힘들고 지칠 때 눈을 감으면 고향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또 "인간의 삶을 보면 고향집으로 향하는 여행 같은데, 변모하고 있는 용암마을 보면 괜스레 응원해지고 싶다. 앞으로도 다양한 가치를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더욱 함께하는 공동체의 역동성을 증진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 구성원들이 갈등을 조화롭게 극복하여 서로 공감하고 사랑하는 용암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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