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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과로와 정신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로 노동량이 끝을 모른 채 늘어나는 노동 영역이 많아져 더욱 심각해졌다. 사진 출처: 정희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사진전 "오늘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과로와 정신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로 노동량이 끝을 모른 채 늘어나는 노동 영역이 많아져 더욱 심각해졌다. 사진 출처: 정희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사진전 "오늘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 정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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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하는 작업 특성상 연차 쓰기가 어려워 사실상 연차가 없다. 회사는 연차도 수당에 포함되는 포괄임금제로 계약했으니 연차로 쉬려면 월급에서 수당을 까고 급여를 받으라 한다. 아프거나 급한 일 생겨도 휴가를 못 간다."

"IT업체에 첫 입사해 1년 넘게 일하는 지금까지 포괄임금제란 명목 하에 야근·주말 근무 수당을 하나도 못 받았다. 평일은 밤 10시 넘어까지 일했고 퇴근 후엔 대표가 항상 전화로 업무 지시했다. 새벽 2, 3시에도 보이스톡으로 잠을 깨우기도 했다.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

"30분 만에 점심을 먹고 기계를 돌려야 하고, 52시간제도 지키지 않아 주 60시간씩 일한다. 그런데 회사는 연말에 쉬면 52시간제를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입사한 지 1년 넘었는데 근로계약서도 안 썼고 월급명세서도 받지 못했다."


지난 1~2월 동안 노동상담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내용이다. 제보자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총 366건 중 29.5%에 달하는 108건이 장시간 노동과 임금 관련한 제보였다. 대부분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억지로 1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했거나, 연차수당마저 포괄임금제에 묶여 휴가를 쓰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직장갑질119는 19일 제보 내용 분석 결과를 공개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해야 할 노동개혁 1호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법정 수당을 도둑질하고 휴식의 권리를 빼앗아가고 근로기준법을 무너뜨리고 일터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포괄임금제 폐지"라며 "포괄임금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월급도둑을 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 60~70시간 노동 판쳐... "포괄임금제 폐지해야"
 
직장갑질119가 지난 19일 공개한 2022년 1~2월 이메일 제보 366건 내용 분류 표.
 직장갑질119가 지난 19일 공개한 2022년 1~2월 이메일 제보 366건 내용 분류 표.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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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의 노동정책 기조는 유연성 확보다.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 공약집에서 "근로 시간 유연성을 확대하겠다"며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1년(현행 1개월)으로 연장 ▲1년 단위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되는 특례업종(현재 5개 업종) 확대를 공언했다.

윤 당선인도 지난해 7월 언론 인터뷰에서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해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제보를 분석한 직장갑질119는 "대한민국 직장 곳곳에서 당사자와 합의도 없이 주 60시간, 70시간 불법노동이 판치고 있다"며 "직장인들이 장시간 공짜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지고 있다. 이 모든 불법의 근원이 포괄임금제"라고 지적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 근무 등 초과 노동 시간과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기본급과 수당을 지급하는 임금제다.

특히 포괄임금제는 초과 노동 자체를 부추기는 효과를 내고 있다. '임금에 주 12시간 이내 시간외 근로를 포함한다'고 포괄임금제로 계약한 약속이 어느 새 '최소한 주 12시간은 초과 근로를 해야 한다'는 의무로 강제되는 것이다. 한 직장인은 직장갑질119에 "2주 간 주·야로 교대근무를 하는데 연장근무 주 12시간이 연봉에 포함돼 있다며 야간근무 때마다 매일 2시간씩 추가 근무를 하게 한다"고 하소연했다.

연봉 2600만원에 포괄임금제로 계약한 한 노동자도 "포괄임금제 계약서에 1주에 12시간 범위 내에서 시간외 근로를 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월 48시간의 연장근로수당이 포괄임금제에 포함된 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니냐. 연장근로만 월 60시간 넘게 한 적이 많다"고 토로했다.

직장갑질119의 박성우 노무사는 "여전히 불법 연장근로, 공짜노동 강요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 주 52시간 상한제가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 자체가 진짜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했다.

박 노무사는 이어 "(새 정부의 노동 정책 기조가)그나마 지난 몇 년간 진행된 노동시간 단축의 사회적 분위기를 훼손하고 완전히 역행시킬까 심각한 우려가 된다"며 "새 정부의 노동시간 관련 정책은 주 52시간 상한제 폐지나 완화가 아니라 장시간 불법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포괄임금제 폐지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태그:#포괄임금제 폐지, #윤석열 노동 시간 유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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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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