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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늘 꿈이 없다고 답하는 아이

토요일 오후, 첫째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서 함께 차에 탔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아내는 인근에 괜찮다는 과학 학원을 등록했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는 이내 핸드폰의 세계로 떠났다. 따스한 햇볕이 좋아 창문을 내리니 봄바람이 불어와 어깨를 간지럽혔다. 이제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이 활짝 기지개 켜는 시기가 도래했다.

봄기운에 취해서였을까. 불쑥 아이의 꿈이 궁금했다. 그래서 열심히 핸드폰 삼매경에 빠진 아이를 불러 눈을 맞추며 물었다. 생뚱맞은 질문에 살짝 당황하더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예측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물으면 항상 지금처럼 "모른다"였다.

그에 반해 초등학생인 둘째는 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른다. 경찰, 의사, 가수를 지나서 지금은 패션 디자이너이다. 남매임에도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끔 표현이 많고 활발한 둘째와 차분하면서 생각 깊은 첫째를 반반 섞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대로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는 첫째가 나에게 꿈이 있었냐고 묻는 바람에 이어졌다. 꿈이라… 꿈이라는 것을 처음 가져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학교에 공군사관학교 생도가 찾아와 일종의 입시 홍보를 했다. 멋들어진 제복과 조종사에 관한 이야기에 가슴이 설렜다. 시간이 지나도 그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고 활활 타올랐다.

고민 끝에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한창 수능에 집중할 시기에 다른 공부를 하겠다는 나를 처음에는 말렸지만 끝내 허락하셨다. 그렇게 1년을 준비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결국, 뒤늦게 수능준비를 다시 했지만,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시험도 망쳐버렸다.

찬찬히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첫째는 결국 나의 꿈은 실패였다면서 차라리 꿈이 없는 본인이 낫다는 궤변을 펼쳤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꿈을 꾸고 시도도 해보았기에 후회는 없고, 그때 도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미련이 남았을 것 같다고 답했다. 아들은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드라마를 보며 생각한 아이의 꿈
 
펜싱에 흥미를 잃어 그만두기로 결정한 펜싱부 신입생 이예지
▲ 펜싱을 포기하는 신입생 이예지 펜싱에 흥미를 잃어 그만두기로 결정한 펜싱부 신입생 이예지
ⓒ 출처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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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아내 따라 보기 시작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시청했다. 처음엔 고등학생 이야기라 거리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시대 배경이 내가 학교에 다녔던 바로 그 90년대라 옛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주인공들도 연기를 너무 잘해서 재미에 푹 빠졌다.

그날 방송은 재능이 없는 것 같아 펜싱을 그만두고 싶은 펜싱부 신입생 이예지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펜싱부 선배인 나희도와 고유림까지 합세해 이예지 편에 서서 훈련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코치는 이예지가 전국대회 8강에 들면 펜싱을 그만둘 수 있게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전국대회 8강에 오른 이예지는 4강에 도전해보라는 코치의 말에 주저 없이 포기한다. 그리고 본인의 또 다른 꿈을 위해서 미련 없이 펜싱부를 나갔다. 

다른 이야기는 전교 1등인 모범생 지승완이 학교에서 교사에게 폭력을 당하는 친구 문지웅을 대변하다 제대로 조치가 되지 않는 부당함을 겪고 자퇴를 결정하는 과정이 펼쳐졌다. 그 결심을 엄마에게 전하고, 처음에 격렬히 말렸지만, 딸을 믿고 함께 학교에 가서 폭력 교사를 혼내고 당당하게 자퇴하는 모습이 통쾌하게 그려졌다.
 
자퇴를 하겠다는 딸의 결정을 인정하고, 함께 자퇴원을 내러 온 엄마
▲ 딸과 함께 자퇴원을 내러 온 엄마 자퇴를 하겠다는 딸의 결정을 인정하고, 함께 자퇴원을 내러 온 엄마
ⓒ 출처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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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보고 넘길 수 있었지만, 아침에 첫째와 나눈 이야기때문인지 여러 생각이 스쳤다. 지금까지 나는 첫째가 꿈이 없는 것이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의 꿈이 생겼는데, 그 꿈이 만약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달랐을 때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아이에게 바라는 꿈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아이의 꿈이 아닌 나의 꿈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예측할 수 없다. 학교에 흥미를 잃고, 자퇴를 선언하고, 다른 것이 하고 싶어 대학을 포기하고, 어느 날 외국을 가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무조건 반대만 할 것 같다.

부모의 진정한 역할

혼자 심각해져서 옆에 있던 아내에게 아이가 갑자기 자퇴를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먼저 이유를 물어보겠다고 했다. 혹여나 순간적인 결정일 수도 있으니 한 달 정도 생각할 시간도 충분히 주고, 학교를 나온 뒤 어떻게 생활할지 구체적인 계획도 함께 나누겠다고 했다. 그리고 제도권을 벗어났으니 스스로 챙겨야 하는 점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상보다 담담한 반응에 놀랐다. 물론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제시한 답이 무척 공감되었다.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아이도 불안한 마음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아이의 꿈을 맹목적으로 바라기보다, 스스로 꿈꿀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는 든든한 지지자가 되고 싶다. 그런 부모의 굳건한 모습을 통해 아이도 미래의 씨앗을 마음껏 키워갈 수 있겠지. 쉽지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해봐야겠다. 아이의 꿈은 내 것이 아닌 본인 것이니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태그:##꿈, ##사춘기, ##스물다섯스물하나, ##부모역할, ##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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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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