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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이삿짐을 한 트럭 싣고 서울에서 내려오던 날 이웃 이모들이 하신 말씀. "이 짐이 나가야 하는 짐인데 들어온다." 다른 이들은 떠나려 하는데 되돌아왔으니 갸우뚱할 만도 하다. 

방송작가로서의 커리어보다 '가족이 있는 완도'와 '일과 일상에 균형이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숱한 고민 끝에 마음을 확고히 했다. 저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이 다르듯 거창한 것보다는 잔잔하고 담백한 행복을 바랐고 그걸 완도에서 찾고 싶었다. 

고향이어도 16년만이었으니 처음에는 사람도 환경도 낯설고 더러 불편한 점도 있었으나 그걸 대신할 만큼 좋은 것들이 있어 지금은 '우리 동네'가 참 좋다. 

서울 살이가 팍팍할 때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완도에 왔고 날이 좋으면 엄마랑 꼭 한 번씩 편백숲에 들렀다. 그때도 좋았고 여전히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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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산림공원은 소가용지를 시작점으로 돌면 숲속교실과 전망쉼터로 가는 길을 마주하게 되는데, 숲속교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시원하게 뻗은 편백나무들로 울창해 숲 내음이 짙다. 

나무를 흔히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표현하는데 겉으론 움직임 하나 없이 고요하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행한다는 뜻이다. 

특히 편백나무는 부지런히 피톤치드를 내뿜고 그 덕에 우리는 숨을 한번만 들이쉬어도 상쾌함과 건강한 기운을 얻는다.

그뿐일까.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초록빛 바람을 맞고 있으면 숲이 지닌 힘이 무언지 알게 된다. 마음의 속도를 늦추게 해주거나 마음 속 소요를 사라지게 해주는 힘. 비워내야만 또 다른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고 알려준다. 

어쩌면 우리는 쫓기듯 돌아가는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행복해지는 법'을 자연에서 찾기 위해 숲으로 가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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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에게 산림휴양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됐다는 편백숲산림공원은 50ha 면적에 대경목 편백나무가 집단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고 홍가시나무, 황칠나무, 후박나무 등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잘 자라고 있다. 작은 텃밭을 가꿔 결실을 맺는 것도 정성을 쏟아야 허는데 숲이 일궈지기까지의 그 노력은 가늠할 수 없다. 

좋아하는 책 중 나무를 '지혜로운 철학자'라고 표현하는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가 지은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깊은 산중에 싹을 틔운 야생의 나무들은 언젠가 하늘을 향해 마음껏 줄기를 뻗을 날을 기다리며 캄캄한 땅속에서 뿌리의 힘을 다지고 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기꺼이 감수해야 더 높이 더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무심코 지나쳤던 길가의 손톱만한 들꽃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생각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 작은 씨앗이 척박한 땅에서 싹을 틔워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까지 얼마나 많은 힘을 들였을까. 결코 쉬운 생은 없구나.' 


사람 마음에도 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내 마음에 자라는 나무는 따스한 볕을 많이 받아 푸른 잎사귀가 무성하고 은은한 나무 향이 나며, 곧게 자라 단단하고 홀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으며 내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 쉼이 되어줄 수 있는 '결이 고운 나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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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 곁에서 시간을 한참 보내고 난 뒤 임도를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본다. 임도에는 잎 끄트머리가 단풍이 든 듯 붉은 홍가시나무가 줄줄이 서 있는데, 멀리서 처음 봤을 때 꽃나무인 줄 알았다. 그만큼 색이 곱다.

조금 더 날이 따뜻해지면 벚꽃, 철쭉, 수국이 차례로 피어 푸른색에 고운 색이 더해져 편백숲에서도 때마다 그 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언제든 찾아도 좋다. 

임도를 따라 쭉 걷다보면 소가용리 마을로 내려가도 되고 300미터 정도 완만하게 정비된 언덕을 따라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날이 좋으면 완도타워부터 신지풍력단지, 장보고대교까지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다 눈에 담을 수 있다. 

상왕봉, 수목원도 좋지만 가벼운 걸음으로 한 시간 남짓 여유롭게 걸으며 마음 충전을 할 수 있는 편백숲산림공원, '우리 동네'는 바다도 좋지만 숲도 좋다.

숲의 공익적 가치가 120조 원이 넘는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과연 숲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이 될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분명한 건 우린 숲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얻게 된다는 것이다.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졌고 푸른 잎들이 기지개를 켜는 계절, 마음을 식히고 싶다면 숨 가쁘지 않고 숨 고를 수 있는 편백숲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아무 생각 없이 불이나 물을 바라보며 '불멍', '물멍'하듯 '숲멍', '나무멍'하면서 숲이 주는 힘을 꼭 얻길 바라며.

- 박여진(완도군청 홍보팀 주무관, 전 방송작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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