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스틸컷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스틸컷 ⓒ (주)퍼스트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또다시 천재로 나오는 영화다. 그동안 의사, 과학자, 화가, 마법사, 탐정 등으로 분했던 전문직 실존 인물 전문 배우가 이번에는 '루이스 웨인'으로 돌아왔다. 어떤 역할을 해도 다른 캐릭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몰입하게 만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이번에는 천재적인 재능과 엉뚱한 성격의 고양이 그리는 화가로 메서드 연기를 펼친다.
 
<레커스> 이후 클레어 포이와 또 한 번 합을 맞추며 열연했다. 다양한 장르와 영화, 연극, 드라마 등 종횡무진 했지만 절절한 로맨스와는 인연이 없었던 게 이유였을까. 이번 영화를 통해 심연까지 그을린 가슴 절절한 로맨티시스트의 주인공으로 분해 맞춤옷을 입은 듯 맞아떨어지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총명하지만 어딘지 음울한,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전매특허 연기뿐만 아니라 조현병에 걸린 노년의 쓸쓸한 모습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뿐만 아닌 호화 출연진도 눈에 띈다. 올리비아 콜맨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첫째 동생 역에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에이미 루 우드,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의 샤론 루니,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헤일리 스콰이어, <님포매니악>의 스테이시 마틴, 그리고 감독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출연했다.
 
가장의 무게에 짓눌린 고달픈 천재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스틸컷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스틸컷 ⓒ (주)퍼스트런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루이스(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삶은 부친의 죽음 이후 기울기 시작했다. 6남매 중 유일한 아들인 탓에 가장이 되어야만 했던 루이스는 음악, 미술, 과학 등 다양한 재능을 겸비했다. 외톨이, 천덕꾸러기 등으로 불리며 별난 기질과 독특한 결점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가정 교사였던 에밀리(클레어 포이)에게 첫눈에 반해 전환점을 맞는다. 집안 반대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23세에 10살 연상의 에밀리와 신분을 초월한 결혼으로 사랑의 굳건함을 증명했다. 하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은 돌연 3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유방암을 극복하지 못한 에밀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루이스의 삶에 두 번째 위기를 불러낸다.
 
에밀리는 지적일뿐더러 루이스의 메마른 가슴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 넣어 준 사람이었다. 불안하고 어두웠던 심연을 염려해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산책 중 만난 길고양이에게 피터라는 이름을 붙여 반려묘로 삼은 것도 아내를 위한 일이었다.
 
아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피터를 그렸고 그렇게 고양이 그림의 틀이 만들어졌다. 피터를 예쁘게 그리면서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해 재기할 수 있었다. 에밀리는 병마와 싸우는 마지막까지 그림을 계속 그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름다운 세상을 최대한 많이 그리라던 아내의 말이 훗날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실제 에밀리가 떠난 후에도 보통 열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며 함께 지내며 슬픔을 이겨낼 정도로 고양이 사랑은 대단했다.
 
고양이에 꽂힌 불운한 행복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스틸컷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스틸컷 ⓒ (주)퍼스트런

 
그는 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동물 그림을 자주 그렸다. 마음속 괴로움을 예쁘고 귀여운 그림으로 승화했다고 할 수 있는데, 위트가 살아 있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인정받게 된다. 잡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정규 삽화가로 일하며 명성을 얻게 된다.

양손으로 빠르게 그리는 크로키 실력은 따라올 자가 없었고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고양이 그림이 실리며 큰 인기도 누린다. 1년에 600여 종 이상의 고양이 그림을 그렸으며 30년간 신문, 잡지, 그림엽서 등에 실려 유럽과 영어권 국가에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고양이는 요물이라며 멀리했던 사람도 의인화된 고양이를 보며 친근한 동물로 인식했다. 반려동물로서 호감의 대상이 아니었던 고양이를 재미있는 존재로 봐주어 애묘 문화를 이끌었다. 무섭고 음침해 꺼려 하던 고양이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망상은 성인이 되자 심해져 갔다. 동물권 향상에 앞장섰던 당찬 모습도 조금씩 빛을 잃어 갔다. 에밀리를 만나고부터는 탁월한 회복력을 보이며 극복되는 듯 보였으나 생계의 압박, 만연한 부채,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그리움은 다시 불안의 그늘로 이끌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었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린 비운의 천재가 되어갔다.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스틸컷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스틸컷 ⓒ (주)퍼스트런

 
영국의 국민화가, 캣 아티스트로 추앙받았던 천재는 저작권이 제대로 획득되지 않아 수익을 얻지 못해 가난함을 면치 못했다. 동생의 조현병은 차도를 보이지 않을뿐더러 재정도 악화되어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어서려 하면 할수록 옥죄어 오는 정신착란은 예술 및 사회 활동에 걸림돌이 되어간다.
 
아이러니한 것은 망상과 환청이 심해지며 병원에서 지내는 말년에서야 진정한 자유를 누렸다는 것이다. 모든 짐을 뒤로하고 마음껏 그리고 싶은 대로 고양이를 그렸다. 그가 정신분열에 시달리던 때 그린 그림은 추상화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공포스럽기 하다. 내면의 분투를 그대로 투영한 거칠고 복잡한 그림으로 변해갔다.
 
영화는 밝고 경쾌한 초반과는 다르게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어두워진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유명세와 달리 가족을 보살피느라 평생 힘들어한 고뇌가 아기자기한 화면과 대조적으로 펼쳐친다.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면 특히 애묘인이라면 잊지 말고 챙겨봐야 할 필관람무비라 하겠다.
 
그래서일까. 활기차고 우스꽝스러우면서 깜찍한 고양이 그림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마음에 성난 파도를 잠재우고 더 의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꿋꿋하게 행동했을 것을 생각하니 안쓰럽다. 100여 년 전 영국의 이야기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K- 맏이의 책임감이 공감되어 짠한 마음이 커진다.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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