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와 <포레스트 검프>로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톰 행크스는 1990년대는 물론 전 시대를 통틀어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아카데미 2년 연속 수상 경력이 말해주듯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포레스트 검프>부터 <캐치 미 이프 유 캔>까지 10편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억 달러를 돌파했을 정도로 흥행 파워 역시 매우 뛰어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984년 데릴 한나와 출연했던 <스플래쉬>를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한 톰 행크스는 1988년 페니 마샬 감독의 <빅>에서 주인공 조슈아를 연기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서른 살 어른이 되는 13세 소년 조슈아를 능청스럽게 연기한 톰 행크스는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젊은 배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데뷔 첫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는 아직 신예에 불과했던 톰 행크스가 넘보기엔 워낙 쟁쟁한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배리 레빈슨 감독의 <레인맨>에서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자폐성 장애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커리어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더스틴 호프먼이 그 주인공이다.
 
 <레인맨>은 1988년에 개봉한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레인맨>은 1988년에 개봉한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가 은퇴한 까닭

데뷔 초 연극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호프먼은 1967년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65cm의 작은 키에 평범한 외모였던 호프먼은 당시 할리우드를 양분하던 미남도, 터프가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호프먼은 출중한 연기를 바탕으로 할리우드에서 빠르게 주연배우로 자리 잡았다. 

<미드나잇 카우보이> <바람둥이 알프레도> <빠삐용> 등에 출연하며 연기 영역을 넓히던 호프먼은 1979년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에도 <투씨>를 통해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된 호프먼은 1988년 떠오르는 젊은 미남배우 톰 크루즈와 배리 레빈슨 감독의 <레인맨>에 출연해 형제 연기를 소화했다.

호프먼은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자폐성 장애인 레이몬드 배빗을 완벽하게 연기했고 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레인맨>은 세계적으로 3억 54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크게 성공했다. 이는 1988년에 개봉한 모든 영화 중에서 최고의 흥행성적이었다. 호프먼은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년 만에 다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현존하는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임을 재확인했다. 

1990년대에도 호프먼의 활약은 계속 이어졌다. 1991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후크>에서는 후크선장을 연기했고 1995년에는 재난영화 <아웃브레이크>에 출연해 열연을 펼쳤다. 물론 1990년대 후반에 출연했던 <스피어>와 <잔다르크> 등이 흥행 실패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2004년 <미트 페어런츠2>가 세계적으로 5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올리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그렇게 흥행 파워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군림하던 호프먼은 지난 2017년 작가로 활동 중인 안나 그레이엄 헌터의 폭로로 성추행 사실이 알려졌다. 헌터는 '할리우드 리포터'에 기고한 글을 통해 호프먼이 1985년 드라마 촬영 당시 17세에 불과하던 자신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호프먼은 그녀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후 2017년 넷플릭스 영화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를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베를린까지 휩쓴 명작
 
 찰리(오른쪽)는 레이먼드의 놀라운 기억력을 이용해 카지노에서 큰 돈을 번다.

찰리(오른쪽)는 레이먼드의 놀라운 기억력을 이용해 카지노에서 큰 돈을 번다. ⓒ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레인맨>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던 두 형제 레이먼드(더스틴 호트먼 분)와 찰리(톰 크루즈 분)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형제애를 쌓아가는 영화다. 사실 이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형의 이름으로 남긴 300만 달러의 유산을 받기 위해 동생이 자폐가 있는 형을 법적 보호자인 병원과 의사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납치(또는 유괴)하는 범죄물로 볼 수도 있다.

만약 레빈슨 감독이 <레인맨>을 영화적 판타지를 담은 엔딩으로 만들었다면 형제애를 깨달은 레이먼드와 찰리가 함께 살면서 훈훈하게 막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병원에서 살았던 레이먼드는 끝내 익숙한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찰리는 재산 때문이 아닌 진심을 담아 "난 형이 있는 게 기뻐요"라는 말을 레이먼드에게 전했고 레이먼드 역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나는 나쁘고 둘은 좋아"라는 <레인맨> 최고의 명대사를 날렸다.

<레인맨>은 커리어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더스틴 호프먼에게도 상당히 뜻깊은 작품이지만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젊은 미남 배우였던 톰 크루즈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당시 톰 크루즈는 고 토니 스콧 감독의 <탑건>에 출연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는데 차기작으로 잔잔한 드라마 장르였던 <레인맨>을 선택하면서 커리어 초기 활동범위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레인맨>은 미국의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은 물론이고 독일의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도 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물론 <레인맨>이 뛰어난 작품성의 영화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당시 독일 현지에서는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할리우드 상업영화에게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헌납(?)했다는 항의도 만만치 않았다. 베를린 현지에서 <레인맨>의 수상을 반대하는 독일 영화학도들의 시위가 있었을 정도.

<레인맨>은 훗날 국내에서도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두 편이나 만들어졌다. <신과 함께>를 만들었던 김용화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오! 브라더스>와 2018년에 개봉했던 이병헌, 박정민 주연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었다. 두 영화 모두 전국 관객 300만을 넘길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형과 동생만 바뀌었을 뿐 <레인맨>과 설정이 상당 부분 일치했다. 바꿔 말하면 <레인맨>이 그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는 영화였다는 뜻이다.

레이먼드와 키스를 나누는 찰리의 여자친구
 
 레이먼드는 카지노가 있는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찰리의 여자친구와 키스를 나눈다.

레이먼드는 카지노가 있는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찰리의 여자친구와 키스를 나눈다. ⓒ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독일 출신의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는 마이클 베이와 리들리 스콧, 론 하워드, 크리스토퍼 놀란 등의 영화에서 음악을 맡으며 좋은 콤비를 선보였다. <라이언 킹>과 <더 록>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쿵푸팬더> <캐리비안의 해적> <듄> 등 장르도 매우 다양하다. <레인맨>은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은 첫 번째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였는데 웅장한 느낌의 블록버스터 영화들과는 결이 다른 한스 짐머의 잔잔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다.

<레인맨>을 연출한 배리 레빈슨 감독은 1970년대 중반부터 각본가 겸 배우로 활동하다가 1984년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내츄럴>과 1987년 고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굿모닝 베트남>을 만들며 유명세를 탔다. <레인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달린 레빈슨 감독은 1990년대에도 <토이즈> <폭로> <슬리퍼스> <스피어> 등을 연출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1980, 1990년대 만큼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 배우 발레리아 골리노는 1988년 <레인맨>에서 찰리의 여자친구 수잔나를 연기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수잔나는 찰리가 카지노에서의 계속된 연승으로 호텔관계자들에게 의심을 받는 사이 레이먼드와 함께 있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레이먼드에게 키스를 가르친다. 골리노는 주로 잔잔한 드라마 장르에 출연했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찰리 신 주연의 패러디 영화 <못 말리는 비행사>와 <못 말리는 람보>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레인맨 배리 레빈슨 감독 더스틴 호프먼 톰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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