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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로컬의 미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하 헬레나)의 책이다. 헬레나는 <오래된 미래>의 저자로서 세계화의 대규모 경제 체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바가 있다.

책 <로컬의 미래>는 로컬 중심의 경제 공동체 회복에 대한 핵심 메시지를 압축한 <LOCALIZATION>의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와 출판사가 공동기획한 칼럼과 새로운 인터뷰를 더해 발간한 도서다. 2018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쓰는 암호
 
로컬의 미래
 로컬의 미래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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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이 화두다.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부터 로컬 관련 대중서적까지. 로컬 관련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다.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은 한글로 번역하면 '지역화'다. 사실 로컬이라는 말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지역'이다. 그런데 왜 지역이란 말이 아닌 로컬을 사용하는 걸까? 

책 <로컬의 미래>에서 로컬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지역이라는 말의 원래 의미를 잃었다. 지역주의라는 말은 사실 지역 고유의 특성을 뜻하는 단어지만, 국내에서는 이미 그 의미를 잃었다. 
 
지역 고유의 특성을 살리고 자치성을 강화하는 지역주의의 본래적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지역주의는 지역의 이익을 주민의 이익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하며 지역살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막고 있다. … 또한 지역주의는 많은 경우 '지역이기주의'의 의미로 사용되며 특정 지역의 사람들을 속단하고 이기적인 속물로 만든다.  
- 18p

둘째, 세계화에 저항하는 실천과 운동으로서 '로컬'이다. 헬레나는 <로컬의 미래> 1부에서 세계화의 진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사용하는 암호이며 세련된 정복과 식민주의에 새로운 탈을 씌운 착취에 불과하다. 세계화라는 물결에 힘입어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하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은 로컬, 정확히 말하자면 로컬의 노동자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500년 전에 시작한 정복과 식민주의에 새로운 탈을 씌우고 계속 이어가는 착취에 불과하다. 세계화는 현재 전 세계로 더 깊숙이 침투해서 생태계, 지역과 지방 경제, 국가 경제를 빨아들여 중앙에서 관리하는 단일 글로벌 경제를 형성하고 있다. 단일 글로벌 경제의 발판은 영원한 성장과 무시무시한 소비지상주의, 즉 기업 지배다.
- 21p

초국적기업을 비롯한 대기업이 고용효과를 늘린다는 말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세계 곳곳에서 대기업이 로컬 중소기업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비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지방도시 살생부>의 '순창 고추장의 역설'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순창에 입지한 기업들이 빠르게 번창하면서 순창에서는 우리나라 고추장의 40% 정도를 생산한다. 1989년 20억 원 수준에서 2014년 2000억 원 수준으로 100배나 급증했지만 같은 기간 늘어난 일자리는 140명에서 150명으로 고작 10명 뿐이라고 한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의 경제적 이익은 누가 가져갔을까?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쓰는 암호명이다."  - 폴 헬러

기업이 지역 경제를 잠식하고 지역 자원으로부터 생산된 이득은 모두 기업이 가져가게 된다. 산업단지나 초국적기업이 유치되면 지역 경제 발전에 큰 이득이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로벌에서 로컬로

헬레나는 초국적 기업과 은행에 유리한 재정과 여타 지원을 끊고 수출 시장 의존도를 낮추는 '지역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기업이 독점하고 장악한 글로벌 시장과 로컬 시장의 균형을 잡아야 할 필요성을 말한다. 무턱대고 세계화를 비판하는 건 아니다. 세계화의 대표적인 예로 식량의 단일품종 대량 생산 체계를 근거로 든다. 
 
전 세계에서 발표하는 연구 결과를 보면 소규모 다품종 농지가 대규모 단일품종 농지보다 단위 면적당 총 생산량이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케냐에서 연구자들이 발견한 사실에 따르면, 케냐의 모든 농장이 전국에서 가장 작은 농장만큼만 생산해도 케냐의 농업 생산량은 두 배로 증가합니다. - 76p

우리 사회에는 '단일품종 농지가 생산력이 좋다'는 상식이 공기처럼 퍼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생산량뿐만이 아니다. 단일품종 대량생산은 멸종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기후나 환경의 변화에 따른 멸종 위험도가 높다.

현재 마트에 쌓인 캐번디시 바나나가 대표적인 예다. 캐번디시 바나나가 멸종된다면, 우리는 바나나를 맛보지 못할 수 있게 된다. 단일품종 생산은 식량 체계에 큰 위협이 된다. 로컬의 품종 다양성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단일품종 대량생산 체계는 경제학의 비교우위 이론과도 연관이 있다. 비교우위 이론은 두 지역 중 한 지역이 모든 재화에 관해 절대 우위를 지니고 있더라도 교환과 무역을 통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를 고려하여 두 지역은 서로 특정 상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비교우위론은 허울뿐인 이론이 된다. 비효율적인 무역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영국은 한 해에 우유, 빵, 돼지고기를 각각 10만 톤 넘게 수출하면서 똑같은 양을 수입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쇠고기는 거의 100만 톤을, 감자와 설탕과 커피는 수십만 톤을 수입하고 수출합니다. - 140p

말 그대로 똑같은 상품을 수출하고 수입한다. 이득은 기업이 가져가고 수출국의 노동자 혹은 수입국의 노동자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이런 비효율적인 착취 구조가 발생함에도 여전히 국가는 직간접 보조금을 통해 초국적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폰 한 대 가격에서 중국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2퍼센트 미만이고 애플은 58퍼센트를 수익으로 가져갑니다. - 143p

헬레나는 책 <로컬의 미래>를 통해 지역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역화는 불필요한 무역을 줄임으로써 에너지 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지역화를 통해 행동의 결과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소규모 경제에서 식량 생산에 화학비료를 썼는지, 노동자가 착취를 당했는지, 토지가 건강한지 등을 바로 알 수 있다.
 
인간은 거대한 생명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일부이다. 그 안에서 생명은 서로 돕고 의지한다. 우리가 속한 그 세계를 더욱 명확히 인식하고 경험할 때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로컬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 169p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사용하는 세련된 암호이며 지역화의 반대말이다. 지역화는 대기업으로 상징되는 거대 권력에 저항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대안이다. 로컬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로컬은 획일화하는 세계화에 대항하여 생명성을 확보하는 대안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로컬의 미래 - 헬레나와의 대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은이), 최요한 (옮긴이), 남해의봄날(2018)


태그:#로컬의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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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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