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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볼 수 있는가

애플의 창업자이자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스티브 잡스는 비록 성격이나 사생활 논란이 있긴 하지만 기업가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창의적인 인물이다. 잡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기업가라기 보다는 오히려 예술가에 가깝게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 그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내어 놓은 그 해에 뉴욕 타임즈에서는 잡스가 아이폰과 픽사를 개발할 당시 18세기 영국의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에 사로잡혀 있었다면서 그의 창의력과 영감의 원천이 블레이크의 시에 있다는 기사를 낸 적 있다. 또, 잡스가 살아 생전 추천했던 선정 도서 리스트에 가장 먼저 소개되는 책 또한 영국 출신 시인인 '딜런 토마스'의 시 모음집이다. 

잡스를 매료시킨 블레이크의 대표적인 시는 132행으로 이루어진  '순수를 꿈꾸며(Auguries of Innocence)' 인데 이렇게 시작된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의 순간에서 영원을 보라'


잡스는 자신이 만든 아이폰이 마치 이 시의 표현처럼 사람들의 손에 놓인 순간 무한의 세계로 뻗어 나가길 꿈 꿨던 것 같다. 시를 좋아하는 경영자는 비단 잡스뿐만이 아니다. <시읽는 CEO>(고두현 저)에 따르면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디자인 천재인 필립 스탁의 독창성 또한 시적 영감에서 나왔다.

영국의 BBC는 "The super secret weapon of CEOs(CEO들의 초강력 비밀 무기)"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을 이끄는 수장들이 애송하는 시와 시를 읽는 이유를 밝혔고, 미국의 포브스에서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시를 읽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시는 더 이상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또 아니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창의적인 사람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미 시인이라고 이름할 수 있지 않을까. 

시를 읽는 이유, 과학으로 풀리는 세상

시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이 '어휘력 향상',  '타인에 대한 공감',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 발달', 창의력(Creativity) 개발' 등을 이유로 시 읽기와 시 쓰기를 강조한다. 그리고 반갑게도 뇌과학과 관측장비의 발달 덕분에 이러한 주장이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뇌가 시에 반응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는 영국의 데본(Davon) 대학 연구팀은 시가 '자기 성찰'에 관여하는 뇌 영역을 자극한다고 밝힌 바 있고, 또 다른 연구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가 일반적인 말이나 산문과 시를 구분하여 반응하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관찰한 바 있다.

특히 시를 읽을 때 시가 표현하는 이미지와 여러 겹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뇌의 특정영역을 활성화하는데 이 영역은 일상적인 현실을 해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연구로 밝혀냈다. 시를 해석하고 음미하는 것으로도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연구(영국, Bangor University)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에는 이미 시가 만들어져 있다. 이 말인 즉슨, 좋은 시를 읽고 난 후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에 피실험자들의 두뇌에 독특한 전기활동이 발생한 것. 이에 대하여 연구를 이끈 심리학 교수 Guillaume Thierry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의 뇌 속에 이미 시가 내재되어 있어서 '인간은 잠재적으로 모두 시인'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뇌 속에는 시가 숨겨져 있는 이유

시를 뜻하는 영어 단어 'Poetry'는 그리스어인 'Poesis'에서 온 것으로 'Creation(창작, 창의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시를 창작하는 일은 다른 글쓰기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시를 쓰려면 언어에 대한 정교하고도 예민한 감각과 세상을 다르게 보는 독특한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 쓰기의 능력이 파블로 네루다처럼 '시가 내게로 오는' 선천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시도 언어로 만드는 예술이므로 훌륭한 시를 많이 읽고, 어휘력을 늘리고, 단어를 다양하게 조합하고 배열하는 연습으로도 충분히 시 쓰는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 

인간을 만들 때 창조주는 왜 두뇌 속에 시를 숨겨 놓았을까. 깊고 검은 우주 공간에 점점이 박혀 있는 아름다운 별들을 바라보면 시가 저절로 떠오르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주를 만든 창조주(빅뱅처럼 우연의 산물일지라도) 입장에서 우주는 그가 만든 한편의 시가 아닐까.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주 혼자만 만끽하는 것이 너무 아까웠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창조주는 자신을 닮도록 빚어낸 인간 역시 그가 느끼는 아름다움과 진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우리의 뇌 속에 시를 인지하는 '보이지 않는 눈'을 담아 놓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세상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시도 많지만 쉬운 언어로 내면의 감정을 깊이 건드리는 시도 많다. 지금 소개하는 노르웨이 시인 울라브 하우게의 시가 그렇다. 
 

- 울라브 하우게

우리가 나르는 것은 꿈이라오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는 꿈
일어나야 한다는 꿈
시간이 열리고
문들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꿈
땅이 열려 물이 솟고
그런 꿈들을 싣고 어느 아침처럼
미지의 항구로 들어서는 꿈

시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당신을 바꿔놓을 뿐이다. 시를 읽기 바쁜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우게가 노래한 것처럼 '시간이 열리고, 문들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 예전처럼 시를 많이 읽는 시절이 다시 오기를 오늘도 꿈 꿔 본다. 

태그:#시, #뇌과학, #스티브잡스, #CEO들의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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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여행을 좋아하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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